[기록보관소]
사서 한수진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지금 당장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셔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머뭇거림이 당연합니다. 당신은 이미 정의된 결과가 아닌, 쌓여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 속의 존재니까요. 자신을 확신하고 싶어 하며 불안한 밤을 보내는 청춘에게, 9호의 기사 <일인다색, 이진하를 말하다>를 소개합니다. 커피와 패션에 이어 연기까지, 우아하고 당찬 그녀의 도전을 엿보며 삶에 대한 인간 '이진하'의 생각을 함께 들어보아요.
_
인생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사람은 누구나 고민한다. 그 갈림길에서의 결정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사회의 기대는 제쳐둔 채, 색다른 선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다. 커피와 패션에 이어 연기까지, 1인 1직업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뒤집고 도전을 이어가는 ‘이진하’. 독보적인 반란의 길을 걷는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반란의 두 번째 의미까지 곱씹어 보았다. 안정적인 길과 매력적인 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들여다보기를. 당신의 앞날에 결코 잘못된 선택은 없을테니 말이다.
반란, 그 두 번째 의미_ 여러 빛깔이 섞여서 아름답게 빛남
_
진하 씨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_ 안녕하세요. 저는 커피도 내리고, 영상이나 사진의 피사체 역할도 하고 있는 이진하입니다.
카페 일과 카페라 앞에 서는 일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커피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_ 여태껏 다양한 일을 해왔어요. 저는 대부분의 일에 쉽게 질리는 편이라 무언가를 오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커피’만큼은 질리지 않더라고요.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햇수로만 4년을 카페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커피와 관련된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느꼈고, 서울 올라와서도 계속하게 되었어요. 원두도 콜롬비아처럼 구수하고 *너티한 것만 좋아했는데, 계속 커피 일을 하다 보니 입맛이 바뀌어서 이제는 에티오피아처럼 산미가 있는 것도 좋아요.
대학에서는 지금 하고 계신 일들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하셨다고 들은 것 같아요.
A_ 네, 저는 일어일본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평택에서 살았는데, 평택시랑 일본 아오모리 현이랑 자매결연을 해서 매년 한 명씩 장학생을 뽑는 제도가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3년 내내 그것만 준비해서 내신은 전부 8등급이고 그랬어요. 그렇다고 일본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 장학생은 뭐, 이미 물 건너간 상태였죠. 그런데 딱 고3 입시 시즌이 되니 까 제가 처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거예요. 아버지가 영어학원 강사셨는데, 저를 가르치시겠다고 일까지 그만두셨거든요. 집에 큰 화이트보드를 사 오셔서 저를 직접 가르치시다가 3일 만에 보드마카를 저한테 집어 던지시더라고요. “넌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 (웃음) 그래서 결국 한 달 넘게 면접 준비를 해서 면접 100%로 일본어 관련 학과에 갔어요.
그래도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해오신 건데, 지금은 일본어와는 연관성이 없는 분야들에 종사하고 계시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던 건가요?
A_ 대학 졸업 직전까지는 줄곧 안정적인 길만을 추구했어요. ‘반란’과는 거리가 멀었죠. 사진은 찍히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카메라 앞에 서겠다는 꿈에 처음으로 불을 지폈던 게 ‘아가씨’ 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마치 나사를 찌-익 조인 것처럼 변하더라고요. 난생처음으로 영화에 나오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겼고, ‘나도 누군가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겼어요. 제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나 봐요. 꼭 카메라 앞에 서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다른 일들은 제쳐둔 채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에 올라오신 후에는 순식간에 72호 TV와 가수 양다일 '미안해' MV, 유니클로 광고 등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셨어요.
A_ 저는 어디든 담기고 싶었고, 갑작스레 등장한 제가 콘텐츠를 만들고 계시던 기존의 분들께는 신선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거기에다가 추천에 추천으로 이어져서 새로운 작품을 찍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 쉽게 되는 게 아니었는데 운도 타이밍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진하 씨만의 촬영 전 연습법이 있나요?
A_ 저는 영화에 나오고 싶었던 터라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일종의 연습이 되었어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런 구도에서는 어떤 표정,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분석해요. 제가 몸치라서 몸을 자유롭게 쓰지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저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방 안에서 삼각대를 놓고 혼자 찍어 보면서 연습도 하고, 책도 많이 읽어요. 개인적으로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준비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SNS에 올리시는 사진들을 보면, 중성적인 패션에도 눈길이 가요. 패션모델 일도 하고 계시는데, 본인만의 스타일링 철학이 있나요?
A_ 어딘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옷은 아예 입지를 못해요. 그래서 무조건 제 몸에 편해야 해요. 그리고 옷에 제가 가려지는 건 싫더라고요. 옷보다는 사람을 보게끔 검은 티나 무지 티를 선호하고요. 때로는 옷이 예쁘다는 칭찬보다도 특이하게 입었을 때, “아, 쟤는 저렇게 입어도 멋있네!” 이런 얘기가 더 듣기 좋아요.
이렇게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다 보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생길 것 같아요.
A_ 그렇죠. 자아 성찰을 많이 해요. 지금 저를 둘러싼 현실들이 있잖아요. 연기를 하고자 서울로 올라왔는데 거기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도 하고. 예전에 어떤 개그맨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옛날에는 뭐가 될까 궁금했는데, 지금은 뭐가 된 것 같아서 슬프다.” 이 말이 요즘 자꾸 생각이 나요. 그래서 더 다양한 시도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후회하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A_ 속도인 것 같아요. 늘 천천히 앞으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지만, 정작 나아가지 않고 뒤에 멈추어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은 왜 뒤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멍청해서 뒤에 있었던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움츠린 채로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고 피어난 꽃이 가장 예쁜 건데, 저는 꽃잎을 한 장 한 장 뿌리면서 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굳이 서둘렀던 것에 대해 조금은 후회 해요. 많은 분께서 알아주시는 건 좋은데, 좀 더 멋진 사람으로 꼽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어요.
그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A_ 뭐가 없는데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는 싫어요. 저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저 자신 그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분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겉으로는 차갑게 보였는데 막상 얘기를 나누어 보니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저라면 그냥 그렇게 보이고 싶어요.
이러한 반란의 기반에 있는 버팀목은 뭘까요?
A_ 음…. 고향? 사람이 도망칠 구석이 있다는 것 은 약해지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이도 저도 안 되었을 때 저는 시골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평택 시골로 가면 내가 돈은 못 벌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뭐 집 앞에서 토마토 따 먹고. (웃음)
아, 일종의 도피처가 있는 기분이시겠어요.
A_ 네, 든든해요. 이게 ‘서울 병’의 일종인가 봐요. 저처럼 새로운 반란을 꿈꾸면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비슷한 절차를 많이 밟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반란 선배로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A_ “내 인생은 나만 책임질 수 있다.” 상투적인 말 이지만 이게 진짜인 것 같아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나만이 알잖아요.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한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고,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자신만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많이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똑똑한 것 같아요. 모를 때만 생기는 무모한 용기가 그 어떤 것보다 큰 추진력이 되더라고요. 모른다고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Bonus. 오늘 입으신 옷은 브랜드 제품인가요?
A_ 아뇨. 치마는 개인 작업할 때 MD 언니가 가져오셨는데 맘에 들어서 산 거고, 재킷은 엄마 친구 분이 이사하시면서 저한테 주셨어요. 이너는 사실 잠옷이에요. (웃음)
Vol.9 <일인다색, 이진하를 말하다> 中
Editor 권소연
Photographer 김영동, 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