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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Feb 09. 2022

Vol.14 <Playlist: 기억을 걷다>

[기록보관소]


사서 김세은입니다.

'안 가본 곳을 갔다 온 것 같다.', '전주만 들어도 타임 슬립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위로를 받거나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의 공간으로 잠시 초대 받는 것, 그 3분의 여행이 때로는 우리 일상에 파동을 일으키기도 하죠. 음악으로 하는 서울 여행을 담은 장윤하님의 뮤직에세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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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은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우린 어떤 음악을 들을 때 특정한 순간과 장소를 떠올리곤 한다. 아마 그것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들의 경험이 녹아든 음악을 들으며 마치 그들의 기억 속을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을 느껴보자.


Theme 1: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 속의 그 곳

이화동(Duet With 한희정) - 에피톤 프로젝트

좁은 이화동의 골목길은 너와 내가 함께였던, 푸른 오월 햇살 아래의 그때 그대로였다. 행복했던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모습, 나누던 사소한 대화들, 그리고 함께 들었던 음악까지 모든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모든 연인에게는 반짝이는 순간이 존재한다. 서로가 마치 나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드는 때 말이다. 하지만 특별해 보이던 인연도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 지나 빛나던 순간을 떠올리면, 돌아가고 싶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아무리 그때의 모습을 재현하려 하더라도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지나간 시간 앞에 서로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사진 촬영을 위해 홀로 이화동 벽화마을로 향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커플들이었다. 이어폰 속 노래의 가사처럼 이들에게도 오늘 이화동에서의 하루는 가슴 한 켠에 깊게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주변의 연인들이 몇 년이 흘러서도 여전히 함께일지, 오늘 이화동의 새파란 하늘을 함께 추억할지 문득 궁금함이 들었다.


Theme 2: 한 때 내게 일상이었던,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장소들

아현동 - 스윗소로우

이 곡은 데뷔 10주년에 발매된 4집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네 멤버의 첫 작업실이 위치한 아현동의 기억을 담은 노래이다.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스윗소로우 특유의 감미로운 아카펠라 하모니, 그리고 노래 중간에 등장하는 아코디언 연주가 곡에 아련한 분위기를 더한다. '622 다시 44의 안쪽 지하 달콤한 슬픔이 가득한 그 이름'이라는 가사에는 데뷔 전 현실적인 걱정들과 꿈을 향한 열정이 뒤섞인 청춘의 복잡한 감정이 묻어 있다.

인생을 돌아봤을 때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때는 언제일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꿈을 향해 분투하는 삶을 살았던 시절을 꼽는다. 삶의 안정기에 접어들어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살다 보면, 매사에 온 힘을 쏟던 어린 날의 열정에 향수를 느끼곤 하는 것이다. 어느덧 15년 차의 인기 가수가 된 스윗소로우를 대변하듯 현재 아현동 일대는 재개발되어 대형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그들이 꿈을 키웠던 지하 연습실은 이제 그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겠지만, 가장 순수하고 뜨거웠던 그 공간은 가슴에 남아 원동력이 될 것이다.


혜화동 그 곳에 - 이건율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너와 나, 함께라면 그저 좋았던 우리가 담긴 곳. 가사 속 화자는 홀로 혜화동을 찾았다. 매일 서로를 만났던 장소, 북적이는 사람들 속 함께 걷던 거리,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가게들.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결국엔 지나간 옛 연인을 떠올린다. 20대 초반이란 어떤 나이일까. 누군가에겐 그저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한 때로, 누군가에게는 실수투성이여서 후회가 남는 때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에디터에게 20대 초반이란 이제 막 사회에 나와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 시기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의 우리가 모든 일에 진심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절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첫사랑에 느껴지는 아련함은 사실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공휴일의 대학로 거리는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침내 서로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그들에게 오늘은 지극히 평범한 데이트 중 하나인 듯하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오늘을 떠올린다면 평범하던 이 일상이 결국 삶의 가장 행복한 페이지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노래의 밝은 멜로디가 그들의 순수한 감정과 닮았다.


Theme 3: 지난날의 한숨이 스며든, 말하자면 삶의 귀퉁이들

2411 - crush

연습생 혹은 수험생 시절의 귀가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허락된 휴식 시간이다. 버스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언젠가 분명 힘들었던 오늘을 보상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크러쉬에게도 그런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아무도 내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때를 기억한다는 가사 속에서, 우려와 외면을 견디며 꿈을 키우던 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2411번 버스 안에서 동호대교의 야경을 보았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슴푸레한 하늘 속 오렌지빛의 동호대교는 무언가 낭만적인 감정을 갖게 하고, 이내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지면 한강 변의 수많은 불빛들이 잠들지 않는 서울의 밤을 알린다. 이렇듯 서울의 밤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나를 더욱 초라하게 비추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건물의 불빛들 속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나의 모습 간의 대조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연습생 시절이 없던 가수는 없고, 수험생 시절이 없던 합격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 역시 불완전했던 시절 끝에 지금의 자리를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공감 가는 음악과 함께 나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마련해보자. 그리고 미래의 성공에 대한 달콤한 상상을 하며 수고한 자신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잠수교(Sing the Road #02) - 박진영, 정승환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현실은 왜 이런지. 나 자신이 한 없이 작아 보일 때가 있다. 늘 승승장구하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내 길만 작고 낮아 보일 때가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유난히 많은 것은 같은 나의 인생이 버거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것 또한 나의 삶이다. 매일이 화려하고 평탄할 수만은 없다. 세상은 피상적인 기준들로 성공을 정의해버린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지난날의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무시한 채 말이다. 누가 뭐래도 나만의 걸음을 걸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충분하다.

퇴근 차량을 혼잡한 잠수교의 한 켠에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은 혼잡한 도로지만 매년 여름이면 이곳은 가장 먼저 물에 잠겨 장마철의 시작을 알린다. 늘 먼저 잠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 누군가는 물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지면 침체에 빠진다고,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물에 잠기는 것은 곧 휴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조용히 물속에 잠겨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 수면 위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뜻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그 인구수만큼 다양한 삶의 방식과 속도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당신에게 맞는 속도로, 당신만의 삶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당신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담긴 장소가 있는가?

행복한 기억이든, 익숙한 기억이든, 혹은 떠올리기 싫을 만큼 힘든 기억이든, 언젠가 분명 머물렀던 장소들을 추억할 날이 올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때 들었던 노래와 함께 기억 속 장소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Vol.14 <Playlist: 기억을 걷다>中

Editor 장윤하

Photographer 함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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