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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May 12. 2022

Vol.16 <비 오는 날의 윤지영>

[기록보관소]

사서 안지유입니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곤 합니다.

힘이 부치는 날엔 윤지영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괜스레 윤지영의 음악을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풀어낸 찰나의 감정들이 진한 먹먹함을 불러와서겠지요. 과잉 없이 진솔한 마음을 노래하는 윤지영과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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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어두운 방 안, 윤지영의 음악을 들으면 불안과 외로움, 열등감을 애써 가뒀던 마음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날 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덤덤한 목소리가 그 열쇠일 것이다. 구름 하나 없이 화창했던 월요일 오후, 비에 젖은 마음을 노래하는 윤지영을 만났다.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노래를 만들고 나누는 윤지영입니다.



수많은 직업 중 싱어송라이터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직업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싱어송라이터가 된 건 아니에요. 저의 평소 감정을 말하듯이 표현하는 수단이 음악이었고, 자연스럽게 곡을 만드는 사람이 된 거죠. 원래는 작곡만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노래까지 부르게 됐어요.



본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저 스스로한테 솔직할 수 있는 용기인 것 같아요. 사실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직도 익숙하진 않아요. 자아 성찰의 시간이잖아요. 그 과정이 괴롭기도 한데 끝에닿아 저의 진심을 마주했을 때 불안감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요. 해소되는 기분을 알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을계속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단지 제 얘기를 할 뿐인데 음악을 듣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신기하고 힘이 나기도 해요.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대신 말하는 듯한 창법이 인상적이에요.


사실 노래 부르는 걸 정말 부끄러워했거든요. 처음에 곡을 만들기만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오랜 시간 부끄러워만 했는데 노래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잘하는 척하지 않기’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듯한 창법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특유의 창법이 지영 님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제 노래를 들으면서 ‘이 사람 노래 잘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거예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창법보다는 가사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 그럴 때 가사가 주는 힘도 더 클 거라고 생각해요.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전달될 테니까.



노래를 만들 때와 부를 때의 감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노래를 쓸 때는 어떤 영감을 받아서 쓴다기보다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듯이 쓰기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한 자각이 없어요. 쓰고 난 직후의 노래는 날 것의 감정인데 이걸 완성하고 부르면 많이 차분해져요. 옷장 정리에 비유하자면 정리가 안 된 옷들을 옷장에 풀어 헤쳐 놓은 게 곡을 쓰고 있을 때의 모습이고, 다시 접어서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가 완성 이후의 모습이에요.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걸 망설이는 내용의 ‘언젠가 너와 나’처럼 사람의 현실적인 모습이 가사에 묻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 가치관도 낭만적인 것과 거리가 먼 편인가요?


가사의 모든 상황이 제 경험인 건 아니에요. 상상해서 쓰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지만 곡 안에서 인물이 하는 행동이나 말에는 어쩔 수 없이 평소 제 생각이 반영돼요. 저도 로맨틱한 게 좋을 때가 있지만 어떤 상황은 유독 공감이 잘 안 돼요. 상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화 속 인물들 같은 거요. 이 노래는 그런 영화들을 보다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난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만들었죠.





윤지영 님의 노래 중 유독 ‘문득’의 가사 뜻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가사가 이해 안 된다는 피드백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곡들은 특정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에 대한 얘기만 담았다면 ‘문득’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거든요. 내용은 단순해요. 아침에 분리수거를 하다가 좋아했던 물건을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렸는데, 그때 제 모습에서 남한텐 영원한 마음을 바라면서 정작 자기는 그렇지 못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면을 느꼈어요. 그 모순을 담은 노래라고 보시면 돼요.



‘바다로 걸어 들어가자’라는 가사가 노래의 밝은 멜로디와 특히 대비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 가사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영원하지 못한 모순된 마음이 비에 젖은 것처럼 온전하지 못하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바다에 들어가서 젖은 티를 내지 않고 살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런 삶의 방식을 나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가사에 비해서 노래가 밝게 느껴졌나 봐요.





‘다 지나간 일들을’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노래의 가사 중 기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완전히 다 잊고 훌훌 털어버린다는 건 아니에요. 언젠가 절 힘들게 하는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더 큰 자유를 느낀 적이 있어요. 오히려 벗어나려고 할수록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더라고요.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로 받아들이는 게 해결책이 될 때도 있어요.



‘ 다 지나간 일들을’은 특별히 뮤직비디오가 중요하다고 언급하셨어요.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노래였는데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마침 제가 원한 감정을 아는 분이셨어요. 제가 생각했던 바가 너무 잘 표현된 뮤직비디오라 애착이 가더라고요. 저를 포함해서 그리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이 애써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대신, 힘든 만큼 다 힘들어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언젠가는 이 슬픔에서 나와야지.’라는 마음만 잊지 않기를 바라요.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노래가 끝난 뒤에도 남자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장면이 길게 묘사되어 있어요.


터널에서 남자는 뭔가를 찾는 표정으로 자꾸 뒤를 돌아봐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소중한 걸 떠나보낼 때 생기는 미련은 쉽게 지울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서 결국은 터널을 빠져나오죠. 힘든 만큼 힘들어하고 언젠가는 나오려고 하는 남자의 모습이 제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에요.






최근 해방감을 선사했던 음악은 무엇인가요?


Simon &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요. 듣고 있으면 뭐든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무리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도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그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후련해져요.



꼭 한번 들어볼게요. 윤지영 님에게 ‘해방’은 어떤 의미인가요?


불안하지 않은 상태, 의심이 없는 상태에요. 전 의심이 일상이에요. ‘이게 내 진심인가?’,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 이런 식으로 남이 아니라 저 자신을 많이 의심해요. 결국 생각의 끝에 다다라서 확실한 판단이 섰을 때 해방감을 느껴요. 노래의 가사나 편곡에서 그 확신이 드러나죠. 좋고 싫은 게 자꾸 변하는 편이라 노래에 드러나는 확신도 그 순간에만 내릴 수 있는 거지 백 퍼센트 확고한 건 아니에요.



백 퍼센트 확신하지 않는 태도도 또 다른 해방처럼 느껴지네요. 음악 외에 어떤 것에서 자유를 느끼나요?


낯선 곳으로 갑자기 떠나는 것에서요.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연고도 없는 곳에 있는 기분, 온전히 저만 느껴지는 시간이 좋아요. 최근에는 즉흥적으로 산에 간 적이 있어요. 카페에 갈 생각으로 단화를 신고 나왔는데 정신 차리니까 산 정상에 있더라고요. 좋아서라기보다 무서워서 기억에 남네요.



현재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나요?


스위치 끄듯이 끄고 싶은데 꺼지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만 생각해야지.’ 다짐하면 오히려 그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를 다 보내요. 생각 때문에 잠도 못 자는 날엔 머리가 물에 잠긴 듯이 무거워요. 사실 모두 큰 고민은 아니에요. 별거 아닌 잡생각에 불과할 때가 많아요. 생각하는 걸 그만두려면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게 곧 저의 전부라 함부로 그럴 수도 없어요. 주로 이런 생각들이 가사에 담기곤 하죠.





타인과의 비교, 자기 연민에 갇힌 대한민국 20대 청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많은 사람이 “너는 왜 쟤처럼 못 해?” 같은 말을 듣잖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쟤가 아닌데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이 떠올라요. 남이 아닌 자신만의 목표가 삶의 기준이라면 자신한테 연민을 느끼기보다 만족하는 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남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민수 언니와 함께한 ‘그녀’ 라는 노래에도 그 마음을 담았어요. 물론 가사는 그렇게 썼지만, 저도 그런 생각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게 틀렸다는 건 알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6월에 나올 싱글 작업을 열심히 하는 중이에요. 그동안 주로 싱글로만 발표했는데 시기가 정확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언젠가 노래를 묶어서 앨범으로 낼 계획이에요. 이젠 슬슬 공연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이것도 아직은 막연할 뿐이에요.



윤지영 님의 음악을 듣는, 그리고 언젠가 들을 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요.


제 노래를 듣고 많은 분이 메시지를 보내주시는데 밝은 내용은 별로 없어요.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좋아해 주신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을 듣는, 듣게 될 모든 분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괜찮아지셨으면 좋겠어요.




Instagram ㅣ @bye_xoxo_


Vol.16 <비 오는 나라의 윤지영>

Editor 진금미

Photographer 최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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