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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 Sep 16. 2023

독자에게 치킨 먹고 가자는 작가라니 쿨하고 멋있잖아

수원 독립서점 '여름서가'에서 진행한 <궁금한 건 당신> 북토크

서점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북토크에 초대를 받았다. 작가와 소통하는 북토크 자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마침 궁금하던 차였다. 평일 저녁 10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 모여 서점에서 도란도란 책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자 대번에 가고 싶어졌다. 북토크가 진행될 책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정성은 작가의 <궁금한 건 당신>이라는 책이었다. 표지가 귀여웠고 내가 인스타 팔로우를 하고 있는 요조가 추천사를 썼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장르는 대화 산문집이었다.


나는 브이로그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브이로그 콘텐츠는 넘쳐나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는 이런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타인의 평범한 일상이나 인생사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엮어낸 산문집이 과연 나에게 재밌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책 소개를 보게 됐는데 첫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궁금한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찔렸다. 나는 사랑에 인색한 편이었다. 때때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던가. 심지어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는 것이 귀찮을 때도 많았다. 내 무심함으로 상처받았을 얼굴들을 떠올리자 마음이 조금 저릿해지면서, 잘 궁금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책은 재밌어 보였다. 북토크도 가보고 싶고 시간도 맞았다. 안 읽을 이유가 없었다. 잽싸게 북토크를 신청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정성스럽게 사인해 주시는 정성은 작가님


북토크를 듣기 위해 서점에서 작가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렜다. 상상했던 바로 그 분위기였다. 기분 좋음을 한껏 느끼면서 서점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사전 질문도 세 개나 작성했다. 북토크도 즐거웠다. <궁금한 건 당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북토크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북토크 끝나고 작가님이 (배고프시다며) 치킨 먹고 가자고 해서 다 같이 치킨도 먹었다. 독자들에게 먼저 치킨 먹고 가자고 말하는 작가라니. 너무 쿨하고 멋있잖아!


북토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신이 했던 말대로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그때 당시' 생각이니까.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자주 남을 판단한다.
누구는 선인이고, 누구는 악인이고,
누구는 어리석은 사람,
또 누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사람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다.
날마다 똑같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해지고 악한 사람이 선해지며
또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판단한 순간에도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


맞다. 사람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다. 내가 변해왔듯이,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니까. 이 사실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내가 이전에 이랬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삶을 궁금해해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자리였다. 부디 앞으로도 누군가 나를 궁금해해 주었으면. 나도 계속 궁금해하며 살아갔으면.




P.6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봤지만 대부분 교수나 화이트칼라 직종이었다. 은퇴 생활자나 가사도우미 같은 직업은 없었다. 그러한 타이틀로는 발언권을 획득할 수 없는 걸까? 다양한 사람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 운 좋게 발언권을 얻은 백수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79 그런데 슬픔에 잠겨 있느라 지금을 제대로 못 살아내면 나중에 또 후회할 거 같은 거예요. 중요한 걸 자꾸 놓치면 안 되잖아. 현재 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지? 그걸 하는 거야. 뭘 해도 상관없어. 왜 정해진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내가 음악을 했으니 음악만 해야 하나? 내가 찻집을 열었지만, 음악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연주회도 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보니 새로운 인연도 만들었죠. 이런 생각 어떻게 받아들일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기만큼의 사람을 만나요. 그래서 내가 갖춰지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중략) 근데 그 손님들도 사실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손님들은 자기가 가게를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죠. 만약 제가 선술집을 차렸으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왔겠죠. 하지만 저는 찻집을 차렸고, 클래식 음악을 틀다 보니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더라고. (베를린 식당 주인 김선혜)


P.80 몇 달 전에도 아는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상처를 주더라고요. 언니는 이제 음식점을 하니까, 이거 하는 사람이 된 거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죠. 이걸 할 수도 있고, 그만두고 음악 관련 일을 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아니래요. 이미 이 길로 왔으니 못 한대요. 그건 네 생각이라 했어요. 이 일이 다른 걸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사람이 뭔가를 하는 게 왜 중요하냐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와서 계속 새로운 걸 던져주기 때문이에요. 저한테도 그래요. 이거 해보라고, 저거 해보라고. 만약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만 있으면 누가 나한테 와서 그러겠어요. 내 어디를 믿고. (베를린 식당 주인 김선혜)


P.92 저는 제 좋은 점을 잘 알거든요. 웃기는 걸 좋아해서 어딜 가나 분위기를 풀어주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누군가는 자신의 단점만 보잖아요.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데 사실 그런다고 잘 고쳐지지 않거든요. 차라리 나의 장점에 집중해서 극대화하면 단점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요. (유튜버 헤어몬)


P.104 지금 슬프고 외롭다고 쳐요. 거기에 매몰되어 있지 말고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내가 왜 하필 지금 신체적으로 유독 힘들까. 아닐 때도 있으니까요. 그게 나의 기호가 될 수도 있겠구나. 지금까지 저는 그런 순간마다 내가 나약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체력적으로 모자라서, 내가 심리적으로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고 예민해서 생긴 문제라 생각해 많이 자책했거든요.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그게 일종의 기호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단편영화 감독 이윤선)


P.118 내가 대단한 예술가는 못 돼도 내 이야기 정도는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사는 행운을 얻었으니, 살면서 배운 걸 다음에 올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가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더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이야기의 기준은 간단해요. 이 이야기가 과거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나? 혹은 미래의 내가 기억하길 바라나? 둘 중 하나만 통과하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여행자 굿수진)


P.137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가끔 해줘야 인생이 재미있죠. (뮤지션 최윤식(가명))


P.164 왜냐면 우리는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가끔 성공하는 삶을 살 테니까. (지연과 민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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