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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 Sep 17. 2023

솔직함에 대하여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통해 보는 솔직함

좀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도 재미있게 시청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중에서도 시즌1 7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간담췌외과 조교수 익준은 약도 입원도 거부하는 환자를 만난다. 남편이 외도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간 이식을 해줬다고 생각하는 환자는 남편의 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듭 거부한다. 그건 아닐 거라고 위로하는 의료진에게 환자는 말한다. 세상이 다 아름답고 착해 보이냐고,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이런 환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익준은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저도 와이프 바람나서 이혼했어요. 밤새 병원 일하고 혼자 애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와이프가 자기 친구 남편이랑 바람이 났어요.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남들 보기도 너무 창피하고 인생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서 죽겠더라구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어요.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구.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어요. 어떻게 다시 찾은 건강인데 남편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약 드시고 악착같이 건강 회복하세요. 어머니 인생이잖아요."


이번 화를 보며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가 떠올랐다. 아직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듣똑라 팟캐스트에서 일부 내용이 소개되어 주의 깊게 들었기 때문이다. 요조가 생각하는 '솔직함'에 대한 내용이었고 나 또한 깊이 공감했다.


누군가의 솔직한 모습을 볼 때 늘 그 솔직함의 기저를 더 눈여겨보게 돼요. 무슨 마음을 먹고 저렇게 솔직하게 구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죠.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언니도 아시죠. 타인이 민망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솔직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요. 반면 누군가는 반대로 타인의 상처를 희석시켜 주려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내면서 솔직을 사용하죠.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끝끝내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요.


익준은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냈다. 그 솔직함의 기저에는 환자의 상처를 희석시키고 환자를 지켜주기 위한 마음이 있었다. 나 역시 타인의 솔직함의 기저에 상처받고 상처가 희석되는 많은 날이 있었다. 나는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가. 또 나는 솔직함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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