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1984년, 엄마의 낭랑 18세

by 박미륵



내 살던 곳에도

봄이면 언제나 화려한 옷을 입은 들판이 많았지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리


내 살던 곳에도

여름이면 언제나 시끄러웠지


차가운 겨울이 와도 겨울바다는 쓸쓸하지 않았지

찾아주는 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리

내 살던 곳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 시 아래 순이가 적어둔 글을 읽다 보면, 순이가 살던 ‘제주도’의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순이는 어릴 적 봄이면 들판에서 활짝 핀 진달래를 꺾어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산에서는 고사리를 꺾어 가족들의 반찬으로 올렸다고 한다. 봄은 아낌없이 나눔을 주는 계절이었다.

지금은 제주 고사리가 귀해, 이모가 보내준 고사리를 아껴 제사 때에만 사용하게 된다. ‘제주도’라는 이름이 주는 심리적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시중 마트에서 사는 고사리와는 확실히 다른 고소함이 있다.


여름이면 순이는 산으로 지네를 잡으러 다녔고, 그걸 팔아 소소하게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우리가 살던 집은 주택이라 벌레가 자주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순이를 불렀다. 순이는 “옛날에는 이거 팔면 비싸게 받았어”라며 아무렇지 않게 벌레를 잡아주곤 했다. 지네에 정말 약효가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염증과 통증을 완화하는 데 쓰였으나, 지금은 지네 채취가 거의 없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고 한다.


또한 집 앞에는 당시 유명한 영화배우의 펜션이 들어서 있었고, 여름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순이는 한때 서울로 올라가 오디션을 보자는 권유도 받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며 “경험이라도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털어놓곤 했다.

TV에서 순이와 닮은 배우가 나오면 “순이가 배우가 되었으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며 지금도 가끔 농담을 나눈다.


겨울이면 귤나무에서 떨어진 멍든 귤을 주워 먹으며, 마치 술에 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집 입구에는 귤 박스가 가득 쌓이는데, 멍든 귤은 금세 상해서 주변 귤까지 오염을 시킨다. 우리는 멀쩡한 귤을 먹으라고 하지만, 순이는 “어릴 때 이런 귤을 더 많이 먹었지” 하며 아까워하며 꼭 껍질을 까먹는다.

지금은 귤 농사를 이모가 이어서 하고 있지만 오래된 귤나무는 여전히 변함없는 맛으로 매년 모두가 다른 기억으로 ‘제주도’를 떠올리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