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블리 가족, 미국에 오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나는 한창 엄마표영어에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던 시기였다. 엄마표영어를 코칭하던 센터가 원장님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원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이왕 TESOL도 취득했고, 엄마표영어를 꽤 진지하게 파고 있던 터라 ‘이제는 혼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큰 아이가 곧 중학생이 될 시점이었고, 슬슬 영문법을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교보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나를 브런치북으로 이끌었다.
나름대로 브런치북 한 권 분량, 중1 정도를 커버할 수 있는 뼈대는 만들었다고 생각하던 8월 말, 난데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홈아, 우리 미국 가게될 것 같아."
(*남편은 나를 '홈'이라고 부른다)
더헛, 갑자기 미국이라니. 나라는 개인은 새로운 환경을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는 중1, 초4가 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또 다른 자아가 자동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큰일이다. 그동안 설렁설렁(?) 해오던 영어 공부에 이제는 진짜 박차를 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식 영문법에라도 미리 익숙해지게 해주려고 그렇게 공을 들였건만, 전략 수정이 필요해졌다.
"그럼 우린 언제쯤 가게될 것 같아?"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쯤. 지역은 텍사스"
와우. 텍사스라니. 터프하고 인간미 넘친다는 찐 미국 갬성, 그 텍사스. 텍사스 바베큐의 그 텍사스. 남편 직업 특성상 언젠가 또 해외로 나가게 될 거라는 생각은 늘 있었고, 행선지는 베트남이나 필리핀쯤을 막연히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미국이라니. 어떻냐는 남편의 질문에 내 대답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Of course!”였다.
시간은 약 4개월. 아이들 영어, 한국 집 정리, 각종 행정 처리까지 생각하면 빠듯했지만 불가능한 일정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필리핀 화상영어를 하루 한 시간씩 하고, 영어 영상 보기와 영어책 읽기를 매일 병행하며 기초를 다졌다. 남편은 11월부터 먼저 미국으로 가 집과 차를 알아보고, 은행 계좌를 만들며 이미 미국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하필 그 시기에 AI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많아 국비 전문가 교육을 수료한 직후였다. 강사로 나갈지, 회사로 재취업을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미국행이 결정되었고, 내 커리어는 또 한 번 고이 접혔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다. 텍사스는 테슬라, 삼성, 명문 공대까지 모여 있는 신흥 테크의 중심지 아닌가. 언젠가는 내 커리어를 필요로 하는 타이밍도 오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적어도 초반 6개월에서 1년은 ‘우리 가족 매니저’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미국에서 몇 년 먼저 살고 있는 지인 언니에게 슬쩍 물어봤다. 그곳에서 엄마로 사는 건 어떠냐고. 돌아온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엄청 바빠.” 아이들 학교는 당연히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고, 도시락은 매일 싸야 하며, 장 보고 끼니를 고민하고 숙제를 봐준다. 특별활동이 있다면 또 운전해서 왔다 갔다. 요약하면 매니저 겸 드라이버 겸 살림 담당자다. 개인의 시간을 지키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쪼개서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라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엄마들이 파트타임이나 원격 근무를 많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와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운전하던 경험이라곤 둘째 어린이집 다닐 때 동네만 겨우 다니던 게 전부였는데. 아이들 학교 스케줄을 챙기려면 운전 실력, 영어 실력, 바지런한 살림 실력까지 필수라는 미준모 카페의 후기들이 갑자기 다 현실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출발선 앞이다. 잘할 수 있을지 아이들이 적응을 잘할지 막연한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부딪히고, 헤매고, 잘한 날은 기록하고 실수한 날도 그냥 적어보면서.
친하게 지내자. 텍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