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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Oct 19. 2023

날마다 여행 중입니다

내 사치가 주는 설레임은...

어는 순간,

내게 여행은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어디로라도 그냥 떠나는 것.

일상이라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어디로라도 마냥 떠나는 것.

그 떠남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 순간의 해방감.

그 순간의 포만감.

그 순간의 설레임을 맘껏 포식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오롯이 해방감, 설레임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소 경솔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 불시에 떠나자고 하면 적어도

한 시간 안에 보름정도는 머물 수 있는 여행가방을 꾸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다.

해외여행 시에만 사용하는 물건들은 따로 보관해두고 있어서 당장 여행지의 날씨에 맞는 옷만 챙겨 넣으면 OK다.



그리고 부풀 대로 부푼 마음만 챙기면 되는데,

언제부터인지 불편한  그 무엇인가가 별책부록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확하지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메모장에 체크리스크를 적어두고

하나하나 체크하며 가방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감은 도착지의 입국심사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는 계속된다.



나이듬이 주는 유쾌하지 못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불안의 대부분은 기우다.

설사 무엇인가를 빠뜨렸다고 해도 그것의 대부분은 없어도 되는 사소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컵라면은 챙겼는데

일회용 젓가락은 챙기지 못한 그런...


그러면서도 나는 감히 호언장담한다.

여권과 항공권만 있으면 나머지는 신용카드와 돈이 다 해결해 준다고.

그렇다고 결코 물질만능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

사실,

이 얼마나 내 불안감과 상충되는 오만함인가.




어둠 속에 갇혀버린 하늘 높은 곳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실은 지금은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안 선다.

소등하고 나니 비행기 안은 어둠의 품 안에 안겨버렸지만 작은 창  틈새로 들어오는 빛은 서늘하도록 눈부시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

9시간 정도를 날아왔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하늘 아래는 태평양의 망망대해일 것이고,

많은 나라들은 밤과 낮의 어느 경계쯤에 서 있을 거다.


과연 나는 이렇게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구름 속에 있어야 하는 이런 여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화두 하나를 붙잡고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내 몸과 마음 중 어느 것이 먼저  '그만'이라고 백기를 들게 될까?

나이 든 열정?

나이 든 신체?

아, 백기를 들게 될 또 하나의 강력한 변수가 있음을 잠시 잊었다.

경제력...

사실은 그것이 가장 절대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누군가가 계층의 정의를 내려놓은 글을 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부자의 정의를 한순간에 KO 시켜 버린 명쾌하고도 참으로 영리한 글이었다.


안 해도 재산이 불어나면 부자.

안 해도 재산이 그대로면 중산층.

안 할 때 재산이 줄어들면 서민.

일 해도 재산이 줄어들면 빈곤층.




일을 안 한다는 전제하에서 본다면 나는 분명 서민이다.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다 합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 공적, 사적연금만으로는 결코 지금의 나를 충당할 수 없을 것이고,

부족분은 또한 얼마 되지 않는 내 재산을 야금야금 잠식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일하지 않아도 내게 매월 따박따박 용돈을 줄 수익로봇을 지금껏 만들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누릴 수 있었던

내 나름의 사치라 칭할 수 있는

이런 여행들은 결국은 나의 경제력 문제로

머지않아 스톱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열정은 아직 방방 뛰는데

그에 걸맞게 컨디션 또한 거뜬한데

다만 나의 경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 나의 사치를 외면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플 일이다.

그 사치가 주는

그 설레임을 외면해야만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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