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 이야기(봄)
사실 저는 아침마다 여행을 떠납니다.
늘상 다니는 길이지만 늘 조금씩 변하고 있는 길섶을 보는 그런.....
제가 길섶을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이른 봄이랍니다.
여름에 꽃을 피울 식물들은 아직 게으름을 피우며 이불속에 몸을 파묻고 있을 때
부지런한 봄꽃들은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지를 뚫고서 봄 볕 마중을 나오지요.
그 녀석들이 어디 겨우내 편한 잠만 자다 나왔겠어요.
행여 자신들의 몸이 얼어 따스한 봄을 맞지 못할까 봐 겨우내 어둡고 추운 땅속에서 모둠발을 하고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을 테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바지런하게 봄 볕맞이를 할 수 있겠나요.
봄이 오는가 싶으면 먼지 가득한 이 길섶엔 늘 작은 소동이 있지요.
민들레가 싹을 틔우며 먼저 자리 잡은 쑥, 냉이, 쑥부쟁이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게으름 피우다 민들레보다
조금 늦어진 꿩의비름이 멋쩍은 듯 뒤퉁수를 긁적이고,
제비꽃과 노루귀, 양지꽃, 별꽃, 까치밥, 개별꽃, 토끼풀, 며느리밥풀꽃이 헐레벌떡 뛰어와 거친 숨을
고르느라 길섶이 그렇듯 소란스러운 것이지요.
어찌 이 많은 것들이 그 좁은 길섶에서 싹을 틔우냐고요?
지금 저더러 뻥쟁이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죠?
웬걸요. 제가 사실 좀 뻥쟁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것으론 뻥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시나 봐요.
사실 봄의 길섶엔 더 많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텐데
다만 제가 그 녀석들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이름은 알지만 지금 당장은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풀들도 많은걸요.
근데 어찌 그 길섶엔 그 흔한 개나리나 매화, 동백꽃도 없냐고요?
하물며 봄이면 어디서고 꽃잎을 꽃비처럼 나풀대며 꽃멀미를 일으키고 다니는
벚꽃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렇지만 어떡해요.
사실 그네들은 이 길섶 어디에도 없는걸요.
이 길섶에서 유일하게 키가 큰 녀석이라곤 아직 이불속에 발을 묻고 옷도 걸치지 않는 제 몸동아리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을 배롱나무뿐이에요.
녀석이 아직 나서지 않는 것은 결코 게을러서가 아니랍니다.
키 작은 봄풀꽃들에 비해 키가 훌쩍 큰 자기가 부지런을 떨게 되면
키 작은 봄풀꽃들에게 나눠 줄 봄볕이 행여 부족하게 될까 봐서죠.
어디서나, 언제나 늘 옷을 벗고 있어서 좀 발랑 까져 보이는 배롱나무지만 심성은 그토록 착하답니다.
그리고 봄풀꽃들이 그토록 부지런을 떠는 것은 키 큰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나올 때쯤이면 자신들에게 나눠질 봄볕의 몫이 아주 작아져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어디 그뿐만이겠어요.
대개 봄풀꽃들은 그 꽃이 아주아주 작고 색깔들도 너무 소박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지 못하거든요.
물론 자운영처럼 다홍의 화려함으로 피는 풀꽃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백의 흰 빛도 아닌 소박한 흰 빛으로
피잖아요.
불타는 영산홍이나 먼셀의 색환을 옮겨놓은 듯한 진홍의 철쭉.
너무도 선정적이어서 화냥끼마저 느껴지는 도화가 필 때 제 분수 모르고 그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꽃을 피운다면 누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겠어요.
아름다운 꽃잎도, 화려한 향기도 지니지 못한 풀꽃들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제가 말한 이름들 중에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몇 개나 있는지.
겨우 서너 개죠?
행여 한 번도 보지 못한 꽃들도 있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제가 말한 꽃들은 자신의 뿌리를 묻을 한 움큼의 흙만 있어도 당차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말이 주변에 흔하디 흔한 녀석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작은 풀꽃들에게도 미처 우리가 깨닫지 못한 삶의 지혜가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나요.
이 녀석들은 서로 봄볕을 많이 갖겠다고 절대 다투지 않는답니다.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 주며 오손도손 꽃을 피우지요.
특히 자운영 같은 녀석은 보세요.
식물과 식물들이 싸우지 않게 서로 화해를 시키는 그런 기특한 풀이예요.
어떻게 화해를 시키냐고요?
자운영에 대해선 제가 다음에 얘기해 드릴게요.
해 드릴 얘기가 많으니깐요.
이렇게 말하니깐 제가 풀꽃들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 같은가요.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누구든지 풀꽃들에 대해 작은 관심이라도 주게 된다면,
항상 수평 이상으로 두었던 눈길을 발아래로 주고 얼마간 걷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에요.
우린 사실 발밑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지나치게 무심하잖아요.
아니라고요? 그럼 참으로 다행이네요.
아무튼 겨우내 잠들어 있던 길섶이 풀꽃들로 부산스러워지고 사람들은 그제야 겨우내 몸을 감쌌던 두꺼운 옷들을 벗어버리죠.
사람들은 항상 식물들보다 더디죠.
아직 비우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식물들은 때가 되면 버릴 줄도 아는데 우린 그렇지 못하잖아요.
저만해도 그런 걸요.
쓸데라곤 쉰 밥풀 한 톨만큼도 없는(쉰 밥풀은 편지봉투라도 붙이잖아요)
아집과 위선과 이기를 주머니 속에 꼭꼭 담아두고, 밥주머니 속엔 위장이 힘겨울 만큼의 음식물들을 꾸역꾸역 담아둬야만 직성이 풀리는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설될 것을 말이에요.
하긴 요즘은 배설하는 것도 아까운지 뱃속에 차곡차곡 쟁여둬서 똥배만 만삭을 향해 힘찬 계주를 하고 있다니깐요.
행여 제 만삭 가까운 똥배 보고 곧 몸 푸나보다는 지레짐작으로 산모용 미역 같은 것은 절대 선물하지 마세요.
봐요. 식물들...
하물며 작은 풀꽃들도 꽃을 버리면서 열매를 맺고 그 풀씨들을 대지와 바람에 나눠주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을 적실 물을 적게 준다고 비를 탓하지도 않고 제 온몸에 골고루 볕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햇볕을 탓하지도 않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주지 않고, 제 여린 꽃잎을 찢겨놓는다고 바람을 탓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끔은 제 몸뚱이를 사정없이 뽑아다 펄펄 끓는 솥에 넣고 목욕을 시켜 된장과 밀가루 범벅을 시켜버려도 원망하는 법이 없잖아요.
그저 묵묵히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거 봐요.
얼마나 기특해요.
난 봄이면 이 길섶을 지날 수 있어 참 행복해요.
이 작은 길섶이 내게 가져다준 여유와 작은 기쁨들 때문에.....
우리 천천히 가보자고요.
지금껏 바쁘게, 숨 가쁘게 뛰었잖아요.
그래서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잖아요.
좀 더디게 가보자고요.
나이 들어 어쩔 수 없구나 놀림받으면 좀 어때요.
여러분들도 늘 지나는 길목에서 여러분의 길섶을 찾길 바래요.
먼지가 풀풀 날리면 좀 어때요?
양심 불량한 건축업자들이 버리고 간 폐자재나,
양심에 털 난 녀석들이 휙 던지고 간 캔이나 과자봉지가 좀 뒹굴면 어때요.
내가 관심을 갖게 되면 어느 순간 그 길섶은 내게서 아름답게 피어나는걸요.
(어느 이른 봄날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