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류 Jun 13. 2023

그리움이라는 성장통을 앓는 중입니다.

엄마 찾아 십리.......

문득 시골 오일장에 가고 싶어졌다.

양 선생님께 완두콩 얘기를 들어서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콩을 싫어하던 것이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서 나는 콩이 들어간 음식은 무조건 외면하는 다소 소심한 편식쟁이다.

콩을 싫어하니 두부 또한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다.

건강검진 때마다 문진결과를 놓고 담당 선생님께서 내게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대신 콩이나 두부로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그리고 달걀도......

모두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콩이나 두부, 그리고 달걀이 싫은 이유는 한결같다. 비릿함이다.

그 비릿함이 왜 그렇게 싫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한 비린내가 나는 생선종류는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내게 양 선생님이 일요일에 재래시장에 가서 일 년 내내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완두콩을 일곱 자루나 사서 하루종일 깠더니 손가락 끝이 얼얼하다고 푸념을 하면서 완두콩 애찬을 끝없이 펼친다.

"저는..... 콩을 안 먹어요"

"왜요?"

"저는..... 콩의 비린내가 싫어요"

"애도 아니고..... 완두콩은 비리지 않으니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밥에 조금씩 넣어 먹어봐요. 추운 겨울을 이겨낸 녀석이라 몸에 좋고, 무엇보다도 냉동실에 보관하면 기특하게도 처음의 그 맛을 유지하고 있어요."


밤새 완두콩을 사냐 마냐로 혼자 말바꾸기 시합을 했다.

결론은 사자. 마침 내일이 휴일이니 가까운 오일장으로 여행하듯 마실을 가보자.

먹기 싫으면 내 밥에 든 완두콩은 골라내서 남편 밥그릇에 담아주면 되는 걸....



 

오일장은 통상 그 지역에서 오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이니 기왕이면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에서 가까운 곳으로 오늘 날짜를 검색하니 몇 곳이 검색되었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다.

그곳은 내 고향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내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만한 어린 시절의 요란스러운 추억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시절의 내겐 서럽디 서러운  '엄마 찾아 리'의 대서사였다.


나는 팔 남매의 막내다. 큰 오빠와의 나이차가 스물이니 내 어머니가 얼마나 긴 시간을 임신과 출산으로 고단 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내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내게는 할머니였다.


노산도 노산이지만 어머니는 외가 쪽의 유전으로 젊은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어머니는 한약을 잘못 먹어서라고 하셨지만) 그 흰머리를 곱게 낭자해서 은비녀를 꽂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사일을 할 때가 아니고는 늘 한복을 입으셨다.

친구들의 엄마와는 많이 달랐다.

친구들의 엄마는 내 어머니보다 훨씬 더 젊었으며 한복도 입지 않았고 대부분 낭자머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까맣고 양장을 입은 친구들의 젊은 엄마가 부러워서 어쩌다 내가 언니에게 왜 우리 엄마는 할머니처럼 늙었냐고 물으면 언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너는 우리 엄마가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니까 그래. 몰랐어?" 였다.


역시 그랬구나.

친구 엄마들은 다 젊은데 내 엄마만 늙은 것은 다리밑에 버려진  데려와 키웠기 때문이구나.

'난 버려진 아이였어...'

아직 여섯 살이 채 안 된 나는 그때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언니는  나를 놀려주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우는 나를 달랬지만 언니들의  장난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어쩌다 내가 아버지에게 정말 나를 다리밑에서 주워왔냐고 물으면 아버지 역시 고개를 장난스럽게 끄덕이며 ***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하셨다.

나를 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니까...




그 시절 우리 마을에는 생선을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는 생선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유독 우리 집에 자주 오셨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이런저런 생선들을 사고 점심을 거른 아주머니에게 요기를 할만한 것들을 챙겨주시곤 했다.

아주머니는 햇볕에 그을려서인지 유독 얼굴이 까맸는데 그 까만 얼굴에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큰 눈에 따스한 웃음을 가득 담고 어머니가 내주신 음식들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어느 날 빨래를 하는 어머니를 따라가 마을샘에서 놀고 있는데 마침 그 아주머니께서 생선을 담은 머릿짐을 이고 샘에 오셔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시는데 아주머니의 목젖이 심하게 꿀렁거리는 것을 보면서 문득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글고봉께 **님 막내가 생선아줌니하고 많이 닮았어라. 눈이 부리부리하고 꺼무잡잡한게 누가 보면 둘이 모녀간이라고 하것소 잉?"

아주머니들이 오메, 정말 그러네... 하며 요란스레  웃으셨다.

문득 어머니가 그 분을 ***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생각났다.

***라면 내가 버려졌다는 다리 이름과 같았다.

순간 어린 내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쩐지 어머니가 생선아줌마에게 유독 친절하셨어.

저렇게 깡마르고, 까맣고 지저분한 옷에 늘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생선아주머니가 내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쏟아져내렸다.

생선아주머니 싫은데......

그렇게 몇 날이 흘렀다. 생선아주머니가 친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게 끔찍하게 싫었음에도 나는 언제인가부터 골목에 나가 아주머니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몇 날을 기다렸는데도 생선아주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께 여쭤보니 내 속내를 모르는 어머니는 "우리 막내가 비린 것이 먹고 싶나 보네. 아줌마는 장날에는 장에서 장사하니까 오지 않고, 장이 아닌 날만 생선을 동네에 팔러 다닌단다."

그렇구나. 장날 ***에 가면 생선아주머니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을볕이 유난히 눈부신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곳간에서 콩이며 깨 같은 곡식들을 보따리에 담아 머릿짐을 이고 동네 아줌마들과 장에 가신다고 분주하게 집을 나섰다.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눈앞이 환해지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뒤따라가면 나를 주웠다는 그 다리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쩌면 나를 버린 야속한 친엄마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몰래 어머니를 뒤따라 나섰다.

행여 어머니에게 들킬세라 조심조심하며 멀찍이 떨어져서 뛰다시피 뒤따라갔지만 어린 내게 십리길은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내 여섯 살 인생 최초의 머나먼 여정인 엄마 찾아 십리길이었다.

어른들의 걸음을 따라가기 위해선 나는 뛸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장에 도착했으나 막상 장에 도착하고 보니 어린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그리고 배도 몹시 고팠다.

시장의 좌판에 산처럼 쌓여있는 색색의 사탕이며 하얀 돌사탕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으나 그것을 사 먹을 돈이  내게는 없었다.


친엄마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울음과 배고픔을 꾹 참고 물어물어 다리밑으로 가니 그늘이 진 다리밑에서는 아저씨들이 벌개진 얼굴로 장기를 두고 있었다. 막걸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내 엄마만큼이나 늙어서 나를 버린 엄마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 앞으로 가서 쭈빗거리니 아주머니가 걸쭉한 목소리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띄엄띄엄 말하고는 그만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내  울음에 놀란 아주머니가 장기를 두는 아저씨들에게로 가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손짓을 따라가 아저씨가 내미는 허연 물과 검은색의 퍽퍽한 고기 같은 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비위가 약해서 집에서라면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을 배가 고파서......


나중에 그것이 막걸리와 선지였다는 것을 알고는 뒤늦은 헛구역질을 했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난 지금도 막걸리와 선지를 못 먹는다. 못 먹는 것인지 안 먹는 것인지 그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이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금세라도 쓰러질 듯 지치고 배고파 보이는 내게 주신 어른들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그리고 난 곧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워 눈을 떠보니 아.... 생선아주머니였다.

아저씨 한 분이 생선아주머니의 노점으로 찾아가 상황을 얘기했고, 아직 생선을 다 팔지 못한 아주머니는 누군가에게 대야에 남은 생선을 떨이로 넘기고서야 부랴부랴 나에게로 와서 "오메 **어르신 막내딸이네" 하며 나를 와락 품에 안으셨다.

온몸에서 나는 비린내와 땀냄새에 숨이 턱 막혔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엄마일지도 모르니까......

"내 엄마예요?" 내가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아주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오늘은 날이 곧 저무니까 내일 그 엄니한테 데려다줄게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자고 내일 일찍 니그 집으로 가자. 오메 근데 어짤끄나 니그 엄니 아부지가 막내 없어졌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디......."


아주머니가 나를 등에 업고, 등에 업힌 나는 아주머니의 빈 대야를 대롱대롱 작은 손에 붙들고 아주머니의 집으로 갔다.

아주머니의 작은 집에는 팔꿈치 아래쪽으로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있었다.

온 가족이 하나같이 삐쩍 마르고 시커맸는데, 거기에 그만큼이나 삐쩍 마른 내가 함께 있으니 아귀를 맞춰놓은 것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아주머니가 해 준 저녁밥은 삶아서  퍼진 보리밥에 반찬이라곤 희멀건한 열무김치뿐이었다.

생선장사인데 생선을 다 팔아버려서 생선도 없이 밥을 먹는구나.


 아주머니가 가족들에게 나에 관한 얘기를 하자 그들이 방바닥을 치며 깔깔거렸다.

"야! 너 우리 식구 아니야. 바보같이 너 놀려주려고 하는 말을 진짜로 알아듣다니.."라며.

좁은 방에서 다섯이 함께 잤다. 어쩌면 너무 가난해서 나를 다리밑에 버린 것처럼 이제는 내가 오는 게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조용히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아주머니가 비린내 나는 품으로 끌어당기며 조용조용 말을 시작했다.

"애야, 나는 네 엄니가 아니여. 저기 자는 머스매 둘이가 내가 낳은 자식 전부여. 너는 **어르신 딸이 맞아. 니그 엄니가 너를 배서 배가 불룩 나온 것도 내가 지켜봤고, 너 낳고 먹을 미역도 부탁해서 내가 좋은 걸로 구해드렸는디 먼 니를 다리밑에서 주워와야...잉? 니그 성들이 장난친거제. 니그 엄니가 너를 나이 들어 낳아서 다른 아그들 엄니보다 더 늙었지만  느그 엄니가 너를 막내라고 얼마나 애지중지하는데 니가 그런 생각하믄 안되제. 글고 어른들은 애들이 말 안 들으면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소리 많이 해야. 그런다고 그걸 참말로 알아듣고 집 나오면 절대 안 돼야.  헛 생각 하지 말고 얼른 자고 내일 집에 가믄 무조건 엄니한테 잘못했다고 싹싹 빌그라 잉?"




그랬다.

한편으로는 좋았고,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그러다 문득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야단맞을 생각을 하니 내내 참고 있던 울음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이른 아침 아저씨는 뭉떵 잘려나간 팔뚝 끝을 어루만지며 내게로 다가와서 다정하게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잘 가그라. 꼬맹아....." 라는 두 오빠들의 배웅을 받으며 머리에 무거운 머릿짐을 인 아주머니의 손을 꼭 쥐고 집으로 오는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아주머니는 생선 때문에 어제처럼 업어줄 수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눈물 콧물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나를 어머니는 밤새 잠 못 자고 우신 듯 벌게진 눈으로 나를 와락 안으시며

"오메 내 새끼............"

땀냄새나는 내 머리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오랫동안 흘리셨다.

나는 우리 어머니의 귀한 새끼인 게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생선아주머니는 우리의 상봉을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요기라도 하라는 어머니의 청을 조용히 거절하고 떠나셨다.

그 이후로 난 생선아주머니의 생선사라는 외침이 들리면 뒤꼍의 장독대 사이에 숨어 나오질 않았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반세기가 넘게 지나버린 나이 든 기억이지만 오일장에 들어서니 생선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시끌시끌한 시장길을 걸어가던 내 어린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눈물을 주렁주렁 달고서.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그 말이 여섯 살이 채 안 된 나를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처럼 나를 휘청이게 했던가를........

지금 찾아와 보니 의외로 다리가 여러 곳에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그중 어떤 다리였는지를 모르겠다.

다리밑은 깔끔하게 단장되어서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 꽃들이 바람의 간지럽힘에 허리를 휘청이고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시장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북적거리던 사람들도,

노점에 앉아 길손들을 큰 소리로 부르던 상인들도..

그리고 생선아주머니와 그 집도.....


사고자 했던 완두콩자루는 보이질 않아서 사는 걸 포기하고 다소 헛헛해진 시장길을 오래오래 느리게 걸어봤다.

그 느린 걸음걸음마다 여섯 살 기억 속의 사람들을 한 명씩 소환하면서......

남은 이들보다는 내 그리움의 상자속에 영원토록 진공 되어 있는 이름들을...

때로는 아프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대부분이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되어 그 아픔마저도 그리움으로 풍화되어 나는 그것들을 불러내며 그것들과 함께 늙어갈것이다.

때로는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겠지.



작가의 이전글 날마다 여행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