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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문일식 Feb 06. 2022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행 이야기] 단양 사인암

우탁 선생의 탄로가를 느껴보는 사인암

사인암의 겨울 풍경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기도 하더라. 봄은 푸릇푸릇한 청춘을, 여름은 격동적으로 살아야 하는 젊음을, 가을은 완숙된 삶을 이어가는 중년을, 그리고 겨울은 회한과 뒤돌아보는 삶이 있는 노년을 말이야.

오랜만에 사진을 들춰보다 문득 겨울과 어울리는 곳을 마주했어. 바로 충북 단양에 있는 사인암이야.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남조천 가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절벽이지.

남조천 주변의 하얀 풍경과 붉은 기운 맴도는 사인암의 칼날 같은 모습, 사인암 꼭대기에 뿌리를 박고 여전히 푸르름을 과시하는 소나무들... 마치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도 하고, 나이를 먹지 않는 동안의 모습이란 생각도 들어. 개인적으로 단양팔경 가운데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고 싶어.

사인암이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비단 설경 속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서만은 아니야. 이 공간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지은 시가 유독 겨울에 어울리기 때문이야.

사인암을 사랑했던 사람, 바로 고려 말의 역동 우탁 선생이야. 역동 우탁 선생은 고려 말의 문신이고, 단양 출신으로 사인암을 자주 다녀 갔다고 해. 이후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임제광이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벼슬 이름을 붙인 것이 지금의 사인암이래.

사인암의 여름 풍경

우탁 선생은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의 제자였고, 퇴계 이황도 존경했던 인물이래. 그가 사인암을 자주 다녔던 것은 고향인 단양으로 낙향했기 때문이라는데, 이런 일이 있었대.

충선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부왕 즉 아버지의 후궁을 겁탈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우탁 선생은 상소를 올렸지. 그런데 그냥 글만 올리는 상소가 아니었어. 지부상소(持斧上疏), 지닐지(持), 도끼 부(斧) 자를 써서 도끼를 짊어지고 임금에게 나아가 올리는 상소야. 섬뜩하지? 지부상소는 내 말이 틀리거든 도끼로 나를 죽여도 좋다는 뜻이야. 이 상소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우탁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단양으로 낙향하게 돼.

우탁 선생이 낙향해 지은 시가 하나 있어. 이 시야말로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계절 겨울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줘.
우탁 선생이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며 지은 시, 바로 탄로가야. ​

우뚝 솟은 사인암, 지금은 저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아마도 학창 시절에 한 번쯤 배웠던 기억이 있을 거야. 탄로가는 인간이 세월을 거역하려는 것에 대한 익살스러움을 표현한 시이자,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우탁 선생의 또 한 편의 시 역시 한참 가버린 자신의 세월을 이야기하는데 한 번 읽어 볼래?​

“봄의 산에 눈 녹인 바람 잠깐 불고 간 곳이 없다.
잠시 빌려다가 머리 위에다 불게 하고 싶구나.
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고, 더해질 세월은 없고, 남은 세월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나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될 때의 탄식 어린 안타까움. 인생의 가을이 짙어지는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조금씩이나마 든다면 너무 이른 생각일까?

칼날처럼 날카롭고, 우탁 선생의 꼿꼿한 기개처럼 단단한 국가지정 명승  사인암, 언제 봐도 아름다운 절벽이고, 요즘 같은 겨울에 설경과 함께 꼭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

수리수리봉봉의 상차림


여행 팁 하나!!​
사인암 바로 옆에 농가맛집이 하나 있어.. 농가맛집은 지역의 로컬푸드를 이용해 조미료 없는 건강한 음식을 내는 집이야. 수리수리봉봉이라는 집인데 펜션도 같이 하더군. 이 집은 산채와 오리로 낸 정식을 내는 집인데 식사뿐 아니라 모임이나 접대할 때도 괜찮은 집이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사 후 천천히 걸어서 사인암을 둘러보는 건 어때?

주변으로 사인암을 봤으니 가까운 단양팔경 몇 곳도 함께 보면 좋겠지. 사인암이 남조천을 끼고 있다면 상·중·하선암은 단양천을 끼고 하천의 흐름을 따라 만날 수 있어. 하선암에서 더 내려오면 소선암자연휴양림(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2030041)과 소선암 오토캠핑장(https://soseonamcamp.dytc.or.kr:455/)

옛 단양군의 읍내였던 곳은 단성면이야. 바로 마을 위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단양휴게소(상행)가 있지. 마을을 끼고 죽 올라가면 바로 휴게소 뒤편으로 이어지는데 조금 더 올라가면 국보로 지정된 단양 적성비도 보고, 사적으로 지정된 단양적성까지 만날 수 있어. 함께 꼭 만나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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