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회사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갑'의 편안함과 Work & Life Balance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 부사장입니다."
"…네?"
"예전에 Wharton School 프로그램에 참가하셨던 000 대표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컨설팅펌 시절, Wharton의 Executive Education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원. 세계적인 명문이었다.
"그때 하셨던 모델의 교육 사업을 저희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번 뵙고 상의하고 싶은데,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단순히 자문 요청인 줄 알았다.
"네, 좋습니다."
"강남에서 뵙겠습니다."
그곳은 고급 일식집이었다. 부사장님은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온화한 인상이었다.
"오셨습니까. 류 과장님."
"안녕하세요."
주문을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 때. 부사장님이 본론을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조언만 받으려는 건 아닙니다."
"…?"
"저희가 그 사업에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데요."
"사실 저희 쪽에서 이걸 맡아 줄 적임자가 없습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희가 투자할 테니, 같이 사업하십시다."
"…!"
당혹스러웠다.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갑자기 맞은 느낌이었다.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일주일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집에 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내 대학 동기들도 대리~과장이었고 챗바퀴 같은 삶이었다. 나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Go.'
방향은 정했다. 이제 조건을 정리해야 했다. 연봉을 현재 수준의 200% 라고 불러볼까? 아니야 너무 과한데? 너무 아마추어 같지 않을까? 고민 끝에 170%로 정했다.
부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 정리되셨습니까?"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조건이 있으시다고요?"
나는 심호흡을 했다.
"네. 두 가지입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첫째, 현재 처우의 170% 정도 반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사장님이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
"현재 어느 수준이십니까?"
나는 액수를 말했다.
"…네. 좋습니다."
'어라? 이게 이렇게 쉽게?' 속으로 놀랐다.
"또 있습니까?"
"Squad 구성은 제가 하겠습니다. 인력 운용은 제게 맡겨주시고 개입하지 말아주십시오."
부사장님이 웃었다.
"하하하. 뭐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사업에 대해서는 저희는 전혀 모릅니다."
"법인을 내고 류 선생께 일임합니다."
"저희에게는 Monthly로 Cash Flow만 보고해주십시오."
나중에 알았지만, 부사장님은 공인회계사였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그냥 200%를 부를 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 원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교훈 1: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가치를 결정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Columbia Business School과 계약을 맺고, 첫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참가비는 1인당 3천만 원. 한 프로그램에 20명을 모집했다. 대부분이 대기업 CEO나 임원들이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중에 Outing 이야기가 나왔다.
"학습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네트워킹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제안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발전기금 형태로 모금하면 어떨까요?"
나는 그렇게 제안했다. 대부분 찬성했다. 그런데 한 분이 손을 들었다. 중견 그룹의 CEO였다. 50대 후반, 카리스마 있는 분이었다.
"저는 반대합니다."
"…네?"
"나는 공부하러 왔습니다. 골프 치러 온 게 아닙니다."
"내가 왜 돈을 내야 합니까? 천 원도 낼 필요를 못 느낍니다."
나는 당황했다. '수십억 재산가가 고작 돈 몇 푼에…'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분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창업자 겸 오너였다.
며칠 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 CEO가 어떤 심장병 재단에 5억 원을 기부했다는 기사였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그분은 짠 게 아니었다. 가치가 있는 일이면 수억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면, 단 돈 천 원도 내지 않는다.
'부자의 마인드구나.' '돈은 버는 것도 어렵지만, 쓰는 것은 더 어렵다.'
그날 나는 배웠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교훈 2: 돈은 유기체다. 자기를 담을 그릇으로 간다
사업은 잘 풀렸다. 연봉이 170% 올랐다. 당시 내 대학 동기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했다. 그런데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펀딩을 받은 전문경영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팀원들과 공유할 수 없었다. 자본금 관리, 투자자와의 관계, 사업 방향성. 이런 고민들은 오롯이 나 혼자 해야 했다. 친구들과도 논의할 수 없었다. 예전 직장 동료들과도, 대학 동기들과도. 그렇게 나는 코로나도 오기 훨씬 전에 '혼술' 버릇이 생겼다.
강남 어느 선술집. 나는 혼자 소주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는 20대 직장인들이 떠들며 웃고 있었다. 부러웠다.
'저 친구들은 단순하겠지.' '월급 받아서 쓰고, 퇴근하고, 주말 즐기고.'
나는 혼자 잔을 비웠다. 그날도, 그 다음 날도. 돈은 많이 벌었다. 쓰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비트코인은 아직 없었지만, 그때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주식을 샀다면 큰 부자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지금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TV에서 본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 - 로또 1등 당첨자들의 그 후'
대부분이 불행했다. 당첨 후 5년 안에 파산하거나, 관계가 깨지거나, 불행해졌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 그릇이 그 돈을 담을 수 없었구나.'
돈은 유기체다. 자기를 담을 수 있는 사이즈의 사람을 찾아가는 생명체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들어오는 돈의 사이즈를 키우는 것보다 먼저, 내 그릇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남역 근처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는 사업계획서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두 친구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생각해봐. Columbia University 프로그램이야. 한국 CEO들이 얼마나 미국 아이비리그에 목말라하는데."
나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Columbia Business School의 Executive Education 웹사이트였다. 민수(IT 개발자)가 물었다.
"형, 그런데 이게 정말 될까? 경쟁사도 많잖아."
"그게 바로 우리의 기회야. 경쟁사들은 다 중개만 해. 우리는 직접 Columbia와 파트너십을 맺는 거야."
"그게 가능해?"
"이미 미국 측이랑 논의했어. 관심 있대."
재훈(마케팅 전문가)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1인당 수강료가 3천만 원이면… 한 프로그램에 20명만 모아도 6억이네."
"정확해. 1년에 4-5회만 돌려도…"
"미쳤다. 이거 대박 아니야?"
우리는 흥분했다. 숫자는 매력적이었다. 민수는 삼성SDS에서 5년 차 개발자였다. 안정적이었다. 재훈은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잘나가는 마케터였다. 하지만 그날 밤, 둘 다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형 믿고 한번 가볼게."
"나도.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잖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보자."
그날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2008년 1월 법인 설립을 목표로. 그때는 몰랐다. 1년 후,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말을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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