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예찬
『WEDMUSICQ』- 창간호에 발표
발레 예찬
내가 취미 발레를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두 딸들이 중학생, 초등고학년이던 때였다. 내가 매일 아이들에게 “어깨 좀 펴!”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때였다. 딸들이 학교와 학원에 치여 축 쳐진 어깨를 보면 너무 안타까웠다. 그즈음 집 근처 대형교회 문화센터에 취미 발레교실이 개설되었다. 발레를 하면 우리 딸들 어깨도 펴질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반듯한 자세를 갖는 일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문화센터 팸플릿을 보면서 “우리 취미 발레 같이 해볼까?” 했더니 딸들이 모두 찬성을 했다.
나는 발레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운동도 안하고 기질적으로 몸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나는 그럴지라도 내 자식들은 어깨 펴고 당당한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주길 바라는 어미 마음. 내가 발레를 시작할 때는 이런 소박한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발레교실을 다니게 되었다. 수강생은 젊은 주부 한 명과 우리 세 모녀가 전부였다. 주부 한 명이 결석이라도 하면 발레교실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개인교습 시간이 되었다. 딸들과 함께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하고 뻣뻣한 몸을 찢고 늘리며 웃고 뒹굴던 그때가 그립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스마트 폰이 없던 때라 사진을 남겨두지 못해 아쉽다.
나는 지금도 발레를 하고 있다. 그동안 발레는 대중에게 사랑받아 취미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다니는 백화점 문화센터 발레교실은 등록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동안 나의 두 딸들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큰 아이는 발레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무용음악 전문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이제 우리 모녀에게 발레는 취미가 아닌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딸과 함께 발레를 배우면서 전혀 몰랐던 발레공연뿐 아니라 발레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흥미유발 콘테스트>에 응모하여 2년 연속 수상을 했다. 그 덕분에 딸과 함께 발레단에 초청되어 수석무용수들과 함께 뜻 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발레로 인하여 나의 평범한 일상들이 풍성해지는 경험이었다.
언젠가 해외 동영상에서 9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발레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노인은 70세에 발레를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이지만 허리가 꼿꼿하고 몸의 근육들이 살아있었다. 칠십부터 노인은 매일 발레를 했다. 그 동영상을 보면서 십년이 넘도록 초급반에 머물고 있는 나는 부러워졌다. 나도 매일 더 열심히 발레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욕심을 애초에 갖지 않으려 한다. 한때는 나도 유행하던 에어로빅과 요가도 해보고 헬스장에도 다녔었다. 그러나 곧 싫증을 내고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레는 한 번도 싫증난 적이 없다. 실력은 늘지 않고 자세도 못 잡고 언제나 제자리이지만 그래서 발레는 더 재미있다. 너무 어려워서 내가 할 수 없어서 매력이 있다. ‘발레예술’이야말로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예술이다. 나는 발레를 하면서 더 잘하고자 하는 스트레스를 갖지 않는다. 욕심없이 무심하게 그저 내 것이 아닌 연인을 바라보듯 가만히 좋아하는 마음. 내가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발레를 하고 있는 비결이다.
발레를 하면서 고질병처럼 아프던 발목도 건강해졌다. 일찍 망가져 고생 많이 한 어깨 통증도 치유되었다. 나는 내 친구들이 겪고 있는 갱년기도 불면증도 겪지 않았다. 피아노 음악에 맞춰 숨 고르며 스트레칭 하는 그 자체만으로 발레는 갱년기 극복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지인들이 어딘가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하면 이제라도 발레교실을 가라고 한다. 나는 발레 예찬론자가 되었다.
발레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언제나 다시 처음부터 올라야 한다. 어제 중턱에 까지 올랐다고 해서 오늘 중턱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어제 걷던 길을 오늘 다시 가야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걸음 더 오르기 위해 매일 처음부터 시작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어디 발레뿐이랴, 우리 살아내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 모든 역경을 이기고 높은 경지에 오른 무용수들을 나는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음악을 만드는 우리 딸이 가는 길도 사랑하고 응원한다.
코로나로 인해 발레수업을 못간지 1년이 되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봄은 오듯”이 다시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는다. 오늘도 나는 거실에서 발레 스트레칭을 하면서 찬란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
- 무용음악 매거진 『WEDMUSICQ』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