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ANOTHER YEARNOTHER YEAR
원제는 Another year,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상의 계절이 아닌 다른 계절. 세상의 모든 계절과는 오히려 반대의 의미가 아닐까. 그렇지만 이 세상에 없는 계절 또한 존재함으로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죠?”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여자가 병원에 와 진단받는 것으로 영화의 ‘Spring'은 시작된다. 봄은 인트로이며 이 여자 또한 봄처럼 이 영화의 인트로다. 그러나 중년 여자는 영화 처음에 잠깐 등장하고 마지막까지 나타나지 않지만 강렬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대부분 연기가 아닌 것처럼 녹아들지만 이 분은(이멜다 스턴톤) 더욱 그렇다. “ I don't know”라고 꼭 다문 입술, 그 입술의 주름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눈빛.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말하는 그 부정은 강렬한 긍정임을 누구나 다 안다.
내가 왜 이 모르는 여자에게 (상담사) 내 이야기를 해야 되나. 카운슬러가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질문에 솔직한 답을 한다 해도 자신의 불면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말할 수 없음, 말하기 싫음의 고통스러운 표정의 이 여인을 이해한다.
톰과 제리 부부가 계절을 이끌어가고 거기 이방인처럼 이 계절에 속하지 않는 직장 동료 메리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 배역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메리는 이곳에 주인공으로 남지만 톰과 제리의 계절 속에서 벗어난 여자다. 그러나 메리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계절이고 톰과 제리가 다른 계절 사람들이 아닐까.
마이크 리 감독의 또 다른 작품 < 비밀과 거짓말>이 있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 비밀과 거짓말>은 미움과 갈등 속에 지내던 가족들이 비밀을 알게 되면서 화해하고 용서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작도 끝도 없는 계절의 순환과도 같은 삶을 치장 없이 보여주는. Another year에 나는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같이...
소설이든 영화든 탄탄한 구성, 기승전결이 확실한 영화나 소설들은 별 매력이 없다. 한번 보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끝도 시작도 없는 서클 구조는 뫼비우스 띠처럼 언제나 제 자리이며 동시에 무한이다. 보고 또 봐도 볼 때마다 새롭다. 그러나 이런 영화나 문학은 대중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시대를 넘어 오래 사랑받는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톰과 제리 집에서 모임이 던 날 밤에 메리의 술주정을 보면서 그녀가 어떻게 나이 먹어 왔는지 다 알게 된다. 메리는 제리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메리는 자기감정대로 살아온 여자다. 메리와 제리부부와 사는 과정이 다르니 삶의 결과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 나는 왜 잘못된 선택만 하는 것일까” 자조 섞인 메리의 울부짖음은 측은하지만 누굴 원망할까. “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해” 제리는 메리에게 상담사답게 충고한다.
메리는 남자들을 잘못 선택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초라한 삶이라는 대가. 누구나 자신의 결정에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나이 들어도 사람은 변하기 쉬운 것이 아니어서 메리는 젊어서의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메리의 남성편력은 바뀌지 않았다
퇴근 후 메리는 제리와 함께 바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혼자 있는 한 남자에게 꽂힌다. 제리가 먼저 일어서고
“ 난 좀 더 있다 가야지” 남은 와인을 잔에 따르며 메리는 남자에게 바로 추파를 던진다.
남자도 메리의 눈길을 분명 눈치챘다. 그러나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을 기대하고 있던 그 찰나에 남자에게 젊은 애인이 나타난 것이다. 메리의 실망하는 표정은 측은함을 넘어 지질해 보인다.
자신이 지금도 젊고 예쁘다고 믿는 (착각하는) 메리는 정작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톰의 친구 켄에게는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드러낸다. 켄이 아무리 착한 남자일지라도 뚱뚱한 남자는 질색이기 때문이다.
“ 살만 쫌 빼고 관리만 잘하면 저 남자도 괜찮긴 한데.....” 잠시 생각은 해보지만 절대 메리는 켄을 받아줄 수가 없다. 메리는 곧 죽어도 남자의 외양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겉만 번드르르한 남자만 선택한 자신의 현재 처지를 알면서도 취향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제리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이 된다.
못된 남자를 만나 위자료도 못 받고 이 나이 되도록 집도 없이 살면서 “나는 왜 항상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걸까” 후회하지만 그나마 모아둔 돈으로 중고차를 산다.( 속아산 것이 분명한) 새 출발을 하려 새로 차를 샀으나 오히려 스트레스받고 돈은 돈대로 버리고 폐차시킨다.
평소 남의 말을 여과 없이 믿고 겉만 번지르한 남자만 쫒다가 실속 없이 나이 듦이 분명한 이 여자. 그런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톰과 제리의 아들 조에게 사심을 품고 있다.( 끼 불릴 때가 따로 있지 친구 아들에게... )
조카 같은 제리의 아들 조가 애인을 데리고 집에 왔을 때 메리는 눈치 없이 질투심을 다 드러낸다. ( 메리와 조의 정원에서의 대화를 보면 분명 젊어서 조가 사춘기 소년일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아무튼 조의 여자 친구를 향한 노골적인 메리의 질투심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제리에게 실망감을 주고 제리는 메리에게 냉정해진다. 메리는 제리에게 외면당한 채 겨울을 맞이한다.
톰과 제리 부부는 (앙숙끼리 만났지만) 제리 입으로도 “우리는 행운이야” 말하듯이 천생연분,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부부다. 일하는 아내를 위해 톰은 함께 요리하고, 휴일이면 함께 농장에서 일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마누라의 눈빛 하나에도 바로 알아차리고 멈출 줄 알고 배려한다.
톰이 언성을 높이거나 함부로 말할 때마다 상담사이며 좀 더 이성적인 제리가 “ 톰!” 한번 부르면 톰은 금세 알아듣고 행동을 멈춘다. “그만하라”는 제리의 눈짓과 말귀를 다 알아듣는 톰. 제리가 현명한 것인지 톰이 마누라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지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할 수 없이 이 부부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상적인 부부임이 틀림없다.
이들의 평범한 삶은 로또당첨 확률처럼 어려운, 이들이야말로 세상의 계절이 아닌 이 세상에 없는 계절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부부의 평범함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어려운가.
지질학자인 톰이 지층을 관찰하며 웃는 장면에서 우리의 삶이 저 지층들처럼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톰과 제리 부부의 모습이야말로 저 조상의 조상 그 조상의 조상 때부터 피를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평생 노력하고 지켜온 세월의 결들이 굳어 온 지층 같은 것이리라.
삶의 결이란 콘크리트를 발라 뚝딱뚝딱 외관을 다듬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된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리에게 외면당한 메리가 추운 겨울 아침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봄날 입었던 멋진 외투는 어디 가고 외투도 없이 버려진 강아지 같은 메리를 톰의 형 로니가 문을 열어준다. 로니는 아내의 장례식을치루고 동생인 톰의 집에 와 있는 것이다.
톰의 형 로니는 축구광에다가 평생 직업이 없이 마누라가 벌어오는 돈으로 술만 퍼먹고 살았다.( 형제라도 이렇게 다르다) 형 로니의 아들이 엄마의 장례식에 나타나 아버지 로니에게 보여주는 무뢰한 행동은 폐륜에 가깝다. 그러나 그 아들을 통해 로니가 얼마나 아들과 아내에게 소홀했는지, 아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로니도 노년에 카르마를 아들에게 받는 것이다.
삶의 대가라는 것이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의 인과관계가 아니다. 자기 삶에 대한 선택 자기 삶의 여정에 대한 대가다. 그것은 자신이 데리고 온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왜 안 그러겠나. 그러나 아내는 참고 살아왔다. 죽는 순간까지 공장에 다니면 일만 하다 죽었다. 마치 처음 그 불면 때문에 찾아왔던 여인이 이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로니의 아내 린다를 대변하는 것 같다.
중년여인(이멜다 스턴톤)이 제리에게 상담을 받던 영화 처음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본다.
제리가 물었다. “ 술을 하세요? “
" 난 술을 안 해요 남편이 술을 마시지”
”문제가 될 정도인가요? “
”아뇨 “ 여자는 단호히 No라고 대답하지만 그 노가 노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술주정뱅이 남편, 아들은 남편 일을 돕고 딸년은 아쉬울 때만 찾아오죠.
“ 원하는 것이 있나요”
“ 다른 삶” 그러곤 여자는 말한다. “ Nothing change”
내 남편이 술에 찌들어 살아도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나는 불면증 약이 필요할 뿐이다. 여인이 왜 불면증을 앓겠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을,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른 삶을 살 방법이 없음 때문이다.
메리는 무능한 그러나 인물은 켄보다 나은 톰의 형 로니에게 관심을 보인다. 차라리 뚱뚱한 켄은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퇴직금도 연금도 있다. 남자가 필요하면 켄을 운동시켜 살을 빼게 해서 사는 편이 훨씬 현명한 것 같은데, 메리는 현명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아, 이 답답한 여자. 그러나 영화 속 제리처럼 지혜로운 여자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대부분 메리를 갖고 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기에 알면서도 그 길로 가는 것이 인간이다. 아니 요즘 여자들은 더 계산을 잘한다. 메리는 영화속에 메리일 뿐?일까.
내 삶이 초라해질 것을 각오하고 나를 당기는 길로 가는 .... 우리는 그것을 팔자라고 하지 않나. 지팔자 지가 꼬는 여자 메리.
아들 조와 여자 친구가 오기로 한 날 불청객인 메리가 찾아왔지만 톰과 제리는 냉정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메리와 함께 식사를 한다. 톰과 제리는 이성을 잃지 않고 메리에게 끝까지 우정과 배려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친절함에는 이미 경계가 선명하다. 정지선 그 이상을 넘보면 안 된다. “ 여긴 우리 가정이야” 이 말속에는 “네가 끼어들면 안 돼”’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와 함께 식사는 얼마든 할 수 있지 파티도 함께 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지 다만 거기까지.’
메리는 이들과 가까운 친구요 가족과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메리의 착각일 뿐이다. 얼마나 언제까지 우리는 타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이 가족의 대화에 메리는 낄 수 없다. 영화는 따듯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서리 내린 들판처럼 서늘함이 남을 뿐이다. 수십 번을 보고 또 봐도 좋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