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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Apr 27. 2023

여자, 정혜

세상 모든 정혜에게  

여자, 정혜.     


2005년 처음 보았을 때는 담담하게 봤었다.

10년이 지나 다시 보면서는 깊은 눈물이 고인다.

(이 글은 2015년 블로그에 쓴 글이다)



혼자 남아 엄마를 그리워하는 정혜

정혜의 그 말없음 안에서 외로움이, 슬픔이 들려왔다.     

       

 

화분에 물을 주고 화초를 정성껏 닦아주는 일.

엄마가 생전에 하던 일을 정혜도 하고 있다.

엄마가 하던 집안일을 하면서 엄마는 잊혀지는 게 아니라 더 집안 깊숙이 스며든다.

이런 일상들, 정혜의 삶은 이렇게 엄마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이어진다.

정혜는 화분 밑에 깔아 둔 엄마의 책을 발견한다.


                  

정혜는 퇴근길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려고 하지만 사지 못한다.

(엄마와 해 먹던 음식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정혜는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른다.

정혜는 곰취나물을 산다.

아마 생전에 엄마가 해준 나물이었을 것이다.   

정혜는 집에 와서 곰취나물을 삶아 무친다. 그러나 맛을 보자마자 뱉어버린다.

쓰디쓰기만 한 나물. 엄마가 해준 맛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 인분의 음식을 하는 일의 어려움과 쓸쓸함이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집안은 늘 정적 속에 있다.

영화는 배경음악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정혜의 쓸쓸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상의 고요와 소음을 그대로 담았다.      


정혜는 늘 TV를 틀어둔다. 그중에서도 홈쇼핑 채널을.

왜 드라마나 다른 방송이 아닌 하필 홈쇼핑일까? 하다가

정혜가 구두를 사러 신발가게 갔을 때 알아차렸다.

정혜는 남자 점원의 친절에 과잉반응을 하며 소름 끼쳐했다.

정혜가 홈쇼핑채널 외에 다른 채널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뉴스나 드라마나 영화나 오락프로 어디에서든 정혜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일이

무방비 속에 불시에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는 이 사회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는 정혜.

정혜가 갖는 세상에 대한 역겨움은 무엇일까.

         


    

정혜는 퇴근 후에 서점에 들러 엄마의 책을 찾는다.

그러나 그 책은 이미 절판되었다는 점원의 말을 듣는다.

" 혹시 다른 지점에 재고가 있을지 모르니 주문하실래요?"

엄마 자신도 하찮게 생각해서 화분밑에 깔아 둔 엄마의 새책을 정혜는 주문한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모으고. (혹시 엄마의 머리카락이 남아있을까?)

단단히 현관문을 잠그고 또 잠그는 정혜

어떤 불안이 정혜를 잠식하고 있을 것일까. 단지 혼자라는 공포만은 아닌 공포 속에 정혜는 살고 있다.    

    

아침 출근길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자를 무심히 보던 정혜.

아마 반려견이라도 키울까 잠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아기 고양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정혜는 아기고양이를 잠시 보았지만 그냥 지나쳐 간다.

그러나 정혜는 근무 중에도 그 아기 고양이가 신경 쓰였다.

정혜는 아기 고양이가 있던 곳으로 간다. 거 아직 아기고양이가 있었다.

정혜는 아기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아기고양이는 정혜를 경계하고 소파밑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아기고양이를 이해한다. 엄마도 없이 무섭겠지. 내가 누군지 몰라 두렵겠지. 불안하겠지.

정혜는 알고 있다. 아기고양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안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기고양이 밥을 소파밑에 넣어주고 정혜는 출근한다.



 정혜가 근무하는 우체국에 가끔 오는 이 남자

황정민이 연기한 작가분이다.

마감에 쫓겨 원고를 보내는 이 남자에게 정혜는 마음이 간다.

그러나 정혜는 어디에도 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혜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이 남자가 작가여서 일지 모른다. 작가였던 엄마와도 통하는 사람.

그러나 이 남자가 정혜에게 "아가씨 맘에 들어요 예뻐요" 이런 말로 접근한다면 정혜는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 저기요 저기 눈썹 떨어졌는데요?” 그 순간이었다.

정혜는 그때 마음의 빗장을 조심히 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열지 않은 채.

 

   

     

기대하지 않은 엄마의 새책이 배달되었다.

정혜가 책장을 넘기며 엄마의 그림을 펼쳐볼 때, 그 그림 작업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정성껏 연필을 깎고 , 한 손에 담배를 끼고 그림을 그리다가 정혜를 보며 웃는 엄마의 환한 모습.

엄마의 책을 책장에 꽃아 두고 바라보던 정혜의 처연한 눈빛.     

    

    

퇴근 후에 동료들과 함께한 맥주집에서

정혜는 담배를 처음 배우는 동료에게

" 연기를 내 쪽으로 뿜어봐" 하던 이유를 알았다.

정혜는 " 난 이상하게 옆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좋더라"라고 했다.

그 담배 냄새는 바로 엄마의 냄새였다. 엄마를 항시 그리워하는 정혜의 마음이 드러나서 뭉클하던 장면이다.

정혜의 그 말에 동료는 " 진짜 특이해!"라고 한다.

이처럼 정혜는 동료들이 보기에 특이한 알 수 없는 여자다.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심지어 엄마에게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정혜.    

슬프다고 말하지 않고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울지 않고 우는 정혜를 거기서 보았다.  




정혜의 이 쓸쓸함과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음이 무엇이었는지

한 남자가 정혜를 찾아오면서 드러난다.

한 남자가 정혜를 찾아와 " 나 결혼해" 한다.

그 남자는 정혜의 전 남편이었다.

정혜는 결혼했던 여자였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정혜는 새벽에 홀로 돌아온다.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전남편이 정혜에게 말했다.

" 솔직히 난 이해 못 하겠어. 네가 나한테 왜 그랬는지 뭐 변명이라도 만들어서 해야 되는 거 아냐?"

전남편은 사실 정혜에게 첫날밤 소박맞을?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헤어진 마당에 낡은 정혜의 구두를 보고서 " 신발이 그게 뭐냐 내가 사줄까? " 말하는 남편에게서 따뜻함도 보였다.


   


신혼여행에서의 정혜, 밝아오는 푸른 새벽 여명 속에 정혜의 차디찬 얼굴

홀로 가방을 끌고 잠든 새신랑을 두고 돌아오는 정혜.


날 떠난 이유가 뭔지 답답해하던 남자가 알 수 없어했던 그 이유를 우리는 여기서 알게 된다.

그러나 정혜는 그 이유를 남자에게 말할 수 없다.

신혼여행에서 "남자와의 첫 경험이 어땠냐"는 남편의 쿨한 질문에

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정혜는 이렇게 무표정으로 말한다.

" 그냥 아팠어요"

 그 아픔은 그 아픔의 기억은 오래도록 평생 트라우마로 정혜를 지배하고 있었다.  

 신발가게 남자 점원의 친절에 정혜가 과잉반응하고 소름 끼쳐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정혜를 비로소 이해한다.

 

신혼여행에서 홀로 돌아온 정혜에게 엄마는 그 이유를 캐묻지 않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고모가 찾아와 " 쟤가 문제가 있다"라고 해도

엄마는 " 쟤도 생각이 있겠지"라고 한다.

항상 자신의 편이었던 엄마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과 상처

정혜는 어렸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입을 열면 자신뿐 아니라 엄마도 고모네 가족도 모두 불행해진다는 것을

우리가 진실을 은폐하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유가 이러할 것이다.

상처 입은 피해자는 그렇게 홀로 그 아픔을 감내하려 하지만

평생 그 트라우마는 치유되기 힘들다.

     

소파밑에 숨어 나오지 않던 고양이가

소파 위에서 잠든 정혜의 발을 핥아줄 때

정혜의 눈빛이 떨린다.

핥아준다는 것, 어루만져준다는 것, 정혜에게는 이 행위가 끔찍한 일이었다. 엄마 외에는 터치는 다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고양이의 이 부드러운 애무, 정혜의 눈에 흐르지 않는 눈물이 고인다. 아 정혜도 이 부드러운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다. 인간이 나무토막이 아닌데 얼마나 여자. 정혜도 부드럽게 만지며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었을까. 그렇게 기대했을 결혼 첫날밤 남편은 정혜를 다소 거칠게 대했다. 정혜는 그러면 안 되는 여자였다.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따뜻하게 다가왔어야 했다. 정혜는 그런 여자다.

봄은 고양이다. 따뜻한 햇빛 속에 누워있을 때 발톱을 깎아주던 엄마의 손길. 거기에 엄마가 있었다.

다 이해하고 받아준 아빠 없이 외롭게 살아온 외로운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

" 원래 기억하기 싫은 것들만 더 기억하는 거야" 하던 엄마의 말.

정혜에게 엄마는 이렇게 하염없이 상처를 치유하는 햇빛 같은 따사로운 존재로 폭력의 상처와 대비된다.

사실 이제껏 정혜가 버텨온 힘도 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도일 찍 남편을 여읜  외로운 여자였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정혜는  엄마가 있어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혜는 아니 그 어린 정혜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어서,  내가 무너지면 반드시 도미노처럼 내 곁에 사람들이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이 영화에 내가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조용한 움직임 속에 정혜가 엄마의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잠깐 정혜가 엄마 곁을 비운 사이 고모가 와서 과일을 대접하기 위해 과일을 씻으러 간 사이

정혜는 복도에 울리는 고모의 울음을 듣고 엄마의 임종을 안다.

그때 정혜, 그 하늘이 무너지는 그 순간,

언제나 그렇듯 정혜는 밖으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혜는 복도에 기대어 서서 있다.

정혜는 속으로 깊이 울고,  나는 밖으로 슬피 울었다.

    


그럼에도 정혜에게 사랑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온다.

우체국에 왔다가는 작가를 뒤쫓아가서 용기 내어 " 저기요!" 부르는 정혜

정혜는 남자에게 말한다.

" 오늘 우리 집에 오셔서 저녁 하실래요?"

느닷없는 이 초대에 어리둥절해하며 대답을 못하는 남자에게 정혜는 말한다.

" 그냥 우리 집에 고양이를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봄 햇살처럼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런 사랑.

고양이가 발바닥을 핥는 그런 어루만짐.

고양이는 정혜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신혼여행의 과격한 첫날밤은 정혜에게는 사랑이 아닌 상처의 덧쑤심이었다.

폭력이었다.


그러나 오겠다던 남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모처럼 들뜬 마음으로 장을 보고 정성껏 차린 성찬을 정혜 혼자 먹게 된다.

접시에 랩을 벗겨내며 홀로 밥을 먹는 정혜의 상처는 그렇게 또 열리고 열리고 있었다.



이제 자신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고 다가온 고양이와의 행복한 낮잠.

그러나 정혜는 고양이를 다시 데려온 그 자리에 두고 온다. 고양이를 버린다.

어렵게 먼저 말을 건넨 남자에게서 거절당한 후 정혜는 다시 마음의 문이 닫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정혜는 우연히 술집에서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술주정하는 남자와 모텔에 묵게 된다.

술 취해 우는 남자의 상처를 말없이 쓰다듬어 주는 정혜.

" 괜찮다 괜찮다"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지만 자신을 향한 손길임을 알기에 아프다.

그날 정혜는 잠든 남자의 가방에서 칼을 들고 나온다.

  


정혜가 마지막 고모의 집으로 가기 전 이 의식은 무엇이었을까.

생전 엄마의 머리를 빗겨주는 정혜의 모습이 나오고 그 빗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잡아 빼내는 정혜의 그 행위는

엄마에게 이제야 고백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엄마 곁으로 가겠다는 결의 일지도 모른다.



고모가 해외여행을 떠난 것을 알고 혼자 있는 고모부를 찾아간 정혜. 둘은 말없이 앉아 있다.

그러나

정혜는 차마 가방 속에 칼을 꺼내지 못한다. 그날 이후 수없이 저 칼을 들고 결심하고 결심했을 것이다.

정혜는 허둥지둥 그 자리를 피해 뛰어가다가 넘어져 오히려 칼에 손을 베인다.

공원 공중화장실에서 손에 피를 씻어내며

비로소 정혜는 운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정혜가 비로소 눈물을 쏟는다.



피흘림

정혜의 눈물은 피눈물이다. 정혜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이유는 이 피흘림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 상처의 피가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안에 고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목놓아 울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피 흘리지 못하면 상처도 슬픔도 내면에 고여버린다.

정혜의 이 울음은 그러므로 상처를 스스로 씻어내는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상달애커만 감독의 <잔느딜망>이 생각났다.

여자. 정혜도 잔느딜망도 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의 고귀함, 성스러움.

  

         

 양치질하며 스타킹이 잘 말랐는지 한 손으로 만져보는 이 무심한 행동에서 감독과 배우의 섬세함을 엿본다.


정혜는 버린 고양이를 다시 찾으러 간다.

그때 뒤에서 “ 저기요” 그 남자가 정혜를 부른다.

그때 정혜의 흔들리는 눈빛.

종소리가 들릴듯한 눈의 깜박임.

 용기 내어 남자에게 저녁 초대를 했을 때,

그 남자가 " 갈게요" 했을 때 작은 종소리가 들렸던가.


그 종소리가 다시 정혜의 귓가에 울렸다 분명 정혜의 눈떨림, 무표정한 얼굴이 밝아지는 듯 아닌 듯

정혜의 속눈썹의 흔들림은 타종이 되어 10년이 지나고 그 종소리 아직 울린다.

부디 상처 입은 세상의 여자, 정혜들이여. 당당히 피 흘리자. 지지 말자.  

아프고 아픈 영화.

내가 여자라서 엄마라서 더 가슴 저리고 저린 여자 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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