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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Aug 21. 2023

러브 액츄얼리

그 사랑의 쓸쓸함에 대하여


러브 액츄얼리



이 영화가 2003년에 개봉되었으니 벌써 20년 전 영화다. 몇 년 전 영화 같은데 이렇게  오래된 영화라니

2013년에는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포르노배우 에피소드를 무삭제 버전으로 재 상영했다. 이 또한 10년 전이다. (지금은 극장 상영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다운로드하여서 어떤 영화도 신선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포르노 배우 커플은 넣어도 안 넣어도 이 영화의 흐름이나 예술성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재현 배우들의 직업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 특이한 경험이었다. 참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많구나 하는......


이영화의 캐스팅은 화려하다. 휴 그랜트, 콜린퍼스, 특히 뒤늦게 액션배우로 부상한 리암니슨, 해리포터에 스네이프 교수 알란 릭먼은 엠마톰슨의 남편 해리이다 ( 아, 이분도 돌아가셨다)

솔직히 이 영화가 내 인생 영화에 속하지는 않지만, 다시 볼 때마다 새롭고 다시 보면서 몰랐던 배우들을 확인하는 작업도 재미있다







 <어바웃 타임>의 아버지 ‘빌나이’는 이 영화에서 그 능청스러운 원로가수로 등장했다.


긴 세월 동안  여기저기 너무 많이 패러디해서 식상할 줄 알았는데,  마크가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에게 했던 스케치북 고백은  다시 봐도 여전히 뭉클하다.

당시 얼마나 많은 연인들을 설레게 했던가. 그 촉촉한 마크의 눈빛에 떨리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인생에서 저런 눈빛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상 어디에나 놀랄만한 사랑이 존재한다.”


리처드 감독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행복한 로맨스 영화 속에서 정작 가장 불행한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사라(로라리니)와 칼이다.

행복한 에피소들 가운데 가장 바보 같은 여자 사라 때문에 이 영화는 슬픈 영화가 되었다.


#사라 (로라리니)


사장인 해리가 여직원인 사라를 불러 묻는 장면이 있다.

“우리 회사에 근무한 지 얼마나 됐지?” 사라가 대답한다.

“Two year, seven months, three days and I suppose what two hours?”

“그런 우리 수석 디자이너 칼을 사랑하게 된 지는?”

“Two years seven months three days and I suppose an hour and 30 minutes"

똑같은 대답을 두 번째 할 때 미세하게 떨리는 로라리니의 목소리는 그녀가 얼마나 칼을 홀로 사랑해 왔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앞에 펼쳐진 피터와 줄리엣의 결혼식에서 사라는 마크에게 다가가 물었다.

 “ 너 피터를 사랑하니? 사랑하는데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있는 것 아냐?”

 이렇게 마크의 심장을 아슬아슬 쿵 때려놓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크는 알아채면서 (번지수를 잘못 때렸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의 가슴앓이를 홀로 해왔던 것이다.


사라는 입사한 지 2년 7개월 3일 두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칼을 사랑하게 된 지는 2년 7개월 3일 한 시간 반쯤 되었다.

그러니까 입사해서 삼십 분 지나 칼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다. 즉 첫눈에 반했다.

사장인 해리는 오죽 답답했으면 (오죽 안타까웠으면) 그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칼에게 고백하라고 충고한다.

사장실을 나서는 사라 뒤에 바로 칼이 들어온다. 아마 해리는 칼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했을 것이다. 사라의 사랑을 받아주라고 말했을 것이다.

드디어 시작된 크리스마스파티 저녁.


이 영화는 에피소드들이 이동을 할 때 자연스러운 장면전환 연결을 음악이 하고 있다.


 이 음악들은 서로 다른 인물의 심정을 공통으로 대변하고 있다. 치밀한 미장센. 괜히 흥행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티에서 칼은 사라에게 춤추자는 제안을 하고 그 순간 이 커플과 딱 맞는

노라 존스의 “ Turn me on" 이 흐른다.


바싹 긴장한 사라


Like a flower waiting to bloom -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꽃처럼

Like a light bulb is in a dark room 어두운 방 전등처럼

I'm just sitting here waiting for you 여기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to come on home and turn me on 집으로 와서 나를 켜주세요

사라의 손을 잡은 손끝으로 칼이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사라는 칼의 마음을 확인하며 행복해한다.

이렇게 애절할 수가 있을까. 언제 한번 나도 이 노래를 배워서 흐늘흐늘 불러보고 싶다.

사라의 마음 그대로인 ' Turn me on'노래는 함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흐르고

드디어 사라는 칼을 자신의 침대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이 여자가 중요한 순간에 그만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른다. “ 그 전화가 문제야” 하던 해리의 예언대로

 절묘한 타임에 울리는 전화벨. 사라는 그 전화를 받는다.

그래도 한 번까지는 좋았다. 칼도 “ 인생은 원래 복잡한 거야” 말하며 그동안 몰랐던 정신병원에 입원한 오빠를 돌보는 사라를 이해한다.

 그러나 다시 감정을 모아 시작한 키스 타임...... 이게 현실이라면 첫 전화 후에 얼른 폰을 끄면 될 것을 이렇게 답답한 여자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을 못하는, 다시 되돌린다 해도 영원히 못할 것 같은 이 가련한 사라를 어찌한단 말인가.

 “지금 전화를 받는다고 오빠가 나아질까?” “ 아니” 하면서도 사라는 오빠의 전화를 기어이 받는다.

이렇게 간절했던 칼과의 뜨거운 순간은 찬물 한 동이 들이부으며 바로 꺼져버렸다.



찬물 뒤집어쓴 두 사람의 뻘쭘한 광경을 비추는 프레임은 이 영화에서 내게는 번째 슬픈 장면이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고 했던가. 상황은 이해하지만 너무 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평생 혼자 쓸쓸히 늙어가는 여자들... 을  현실에서도 많이 보아왔기에 너무 가슴 아프다.


유능하고 섹시한, 그토록 사랑하는 칼을 놓치고 그 밤으로 오빠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 사라.

 헛소리하며 자신을 때리려는 오빠에게 “Don't do that..." 말한다.

 이때의 사라(로라리니)의 표정에서 자신도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다.

자신을 자신의 처지를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어 절망하는 사라


#캐런 (엠마 톰슨)


여배우들의 명연기를 보는 것은 행복하다. 이 영화에 엠마톰슨이 없었다면. (뭐 이 아줌마 연기 잘하는 거야 익히 알지만) 나는 이영화에 큰 점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나는 엠마톰슨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남편 해리에게 “사장님은 모든 직원들과 춤을 춰야 한다” 말하는 마음 넉넉한 캐런.

그러나 남편과 여직원 미아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바로 위험을 감지한다. 엠마톰슨의 그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배인 표정....  아 그 마음 알 거 같다.


 파티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미아를 조심하라” 충고하고 잠 못 들고 있는 캐런( 엠마 톰슨) 여자의 직감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남편 옷을 걸다가 주머니에 든 상자에서 금목걸이를 확인하고 두 번 눈을 깜박인다. 천진한 어린아이 같은 행복한 캐런. 그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지고 자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목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막상 선물 개봉 했을 때  그 목걸이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예감이 맞았음을.  목이 메는 것을 이겨내는 캐런의 모습이 내겐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핑계를 둘러대며 방으로 와 남편이 선물한 조니 미첼(Joni Michel)의 <Both sides now>를 들으면 홀로 눈물 참던, 조니 미첼은 너무 애절하게 온 집안에 흐른다.  주체할 수 없이 목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는 엠마 톰슨. 눈물을 닦으며  잘 정돈된 침대를 한번 괜히 만지는 그 몸짓은 사라와 칼의 침실장면보다 더 슬프다. 이영화에서 캐런이 침대를 만지는 이 장면을 나는 이 영화의 가장 명장면으로 뽑고 싶다.


Tears and fears and feeling proud

To say ' I love you' right out loud

Dreams and schemes and circus crowds

I've looked at life that way


울지 않으려고 해도 수도꼭지처럼 툭툭 턱밑에 흐르는 눈물.

손바닥으로 얼른 눈물을 훔쳐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애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캐런.

엠마톰슨은 이 영화에서 격이 다른 맑은 눈물을 보여주었다.





러브 액츄얼리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믿으라’ 말하는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임이 틀림없다.

내게도 ‘러브 액츄얼리’는 행복한 영화였다.  

그러나 다시 본 영화는 사라와 캐런을 통해 사랑에 대한 해피엔딩의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여인에게 여전히 사랑은 높고 외롭고 쓸쓸하다. 한순간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며 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그 사랑 또한 외로울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외로운 존재이므로 강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래도 언제나 우리는 늘 사랑의 해피엔딩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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