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래된 연애편지1981 01 07
주소불명 편지 1
oo 씨 미안합니다
두 번씩이나 편지하게 만들어서요
지난 80년을 보내면서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왜냐하면 oo 씨 같은 착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말입니다
oo 씨 그동안 공부 열심히 했는지요?
저는 매일 놀기만 해요. 하지만 oo 씨는 저를 본받지 말고
다른 곳에 한눈팔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도록 두 손 모아 기도드리겠어요.
oo 씨 (으하하레레 찐아래) 미안합니다 - 이건 원소리인지 모르겠다. 둘만이 아는 장소 놀이?-
방학 동안 oo 씨 댁을 방문하고 싶지만 집에서 허락을 하지 않네요.
어떡하죠 방문은 하고 싶은데.......
지난 여름 방학처럼 저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봄방학 때 가면 안 될까요?
그럼 저는 글을 길게 못쓰는지라 이만 펜을 놓아야겠군요
밀린 얘기는 다음과 개학때 하도록 하지요
안녕히 계세요
1981. 1. 7
PS 시간 있으면 답장 좀 하세요.
놀러 올 수 있으면 연락하고 놀러 오세요.
.............
누가 보냈는지 주소도 이름도 없는 편지다
다만 “평택에서”라고 만 봉투에 쓰여 있다.
81년이면 남편이 고 3 때이다.
1월이니 고3을 앞둔 고2 겨울 방학일 것이다.
남편은 당시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방학이니 본가에 갔을 테고
아마 하숙하던 곳 근처에 여학생일지 모른다. 교회 여학생인가?
그런데 평택에서라고 한 걸 보면 (남편의 학교는 평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그녀는 평택에 본가가 있는 근처에서 하숙하는 여학생이었을지 모른다.
필체도 내용도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절 여학생치고는 졸필에 속한다.
(나중에 내 편지도 등장하겠지만 이 편지에 비하면 내 편지는 예술이다 ㅎㅎ)
밑줄 그은 부분은 뭔 소리인지 둘만의 썸씽이 있었나 보다.
곰팡이 핀 상자에 담긴 빛바랜 오랜 편지들...그 속에서 첫 번째로 꺼낸 편지.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이 편지를 기억하려나, 지금 잘살고 있으려나.
남편은 기억하려나.. 그러나 묻지 않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