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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Aug 25. 2023

스케이트 탈 수 있을 때 만나요

인천에서 SY 이가  3



J 오빠에게     

요즘은 굉장히 계절에 비해 따뜻한 것 같아요.

곧 개나리가 깨어날 것만 같아요.

얼음이 녹아서 스케이트도 못 타고 가끔 엄마 병문안 정도나 가고 있어요.

오빠!

나 좀 혼내 주세요

방학하고 방학 숙제에 손도 안 댔어요.

참!

나 화내고 싶어요

왜냐고요?

몰라서 물어요?

치, 다음에 만나서 보자.

사실은 나도 주안역에 안 나갔어요.

오빠가 당분간 00를 떠나 있다고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안 나갔거든요, 하지만 제 친구 2명이 12:00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제집에 와서 놀았어요.

오빠 편지 받아보니까, 기분이 많이 전환된 것

같아서 기뻤어요.


내일은 친구 O진. O연 이와 롤러스케이트장에 가기로

했어요. 우리들만이 ( 즉 우리 9조) 가는 롤러스케이트장이에요.

조그맣고 한적하고 좋아요. 하지만 주말엔 별로 좋지

않아요. 공원 근처이기 때문에 시끄러워요. 지금 TV에서

팜。스프링의 weekend가 끝났어요.

굉장히 유머 있고 재미있는 청춘영화였어요.

오빠도 봤어요?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 가요

대강 달아보니까 1kg이에요.

이제는 이불을 친구로 삼아야 될 시간이에요.

그런, 안녕!

오빠! 소근(!)     

                                              1981도 저물어가는 12월 27일 밤 12:10

                                              인천에서  SY 이가


P.S 스케이트 탈 수 있을 때

    만나요.

    아니, 몰라 스케이트도........

    내 실력은 보나 마나, 서자마자

    꽈당!이지만.

    보고 싶어요  오빠!


인천에서 온 SY의 편지( 81년 12월 27일) 오른쪽 푸쉬킨의 시는 83년 9월 3일 - 둘이 꽤 오래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인가 보다. 앞으로 편지가 더 있을 듯...  ( 시 보낸 것은 대필 의혹이 보인다. 친구 중 누군가에게 부탁한 듯싶은 완전히 다른 필체다. ( 그 시절 유행한 필체 )




편지지가 너무 예쁘다.

요즘 청첩장 분위기, 인천에서 온 여학생 편지다.

이런 예쁜 편지에 밤 12시가 넘어 편지를 쓰고 있는 소녀.

그 시절 소녀들은 그랬다.

1981년 12월 27일에 보낸 편지

둘이는 주안역에서 만나기로 하고서 서로 펑크를 냈나보다.

그 후 83년 9월에는 푸쉬킨의 시를 적어 보냈다.

짧은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편지는 여학생이 남편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

무거운 눈꺼풀이 1kg이 될 거라는 말이 유치하고 웃기다( 어쩌면 중학생일지도)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남편에게는 이 여학생 말고도

편지를 주고받는 다른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학생이 시 적어보낸 거에 " 어린 나는 오빠의 고뇌를 알 수없고 도움을 줄수 없다" 라고

적은 걸 보면 나쁜남자의 전형적인 이별수법 같은 느낌이 짙다. 분명 남편은 편지에 오빠는 힘들고 어쩌구저쩌구 서서히 고뇌에 찬듯?고상한 척하며 이별암시를 했을듯 싶다.


한마디로 이 남자는 바람기 있는 나쁜 남자였다

끼 있는 나쁜 남자들이 그렇듯이 매력은 있었을 것이다.

    

<스프링팜스의 위켄드>라는 영화를 찾아보았다.

이태리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로마의 휴일>처럼 로마를 배경으로... 위켄드 (주말?)라고 한 걸 보니 < 로마의 휴일> 패러디영화였을 것이다. 당시 이런 영화는 얼마나 낭만적이었을까.

아, 그 시절 그 나라는 우리 모두 꿈꾸던 곳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오빠를 생각하는 그 여학생의 마음이 보인다.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서 얼음이 녹기 전에 보고 싶은 마음. 조용한 스케이트장에서 데이트하고 싶은 마음. 아 그러나 이 오빠는 양다리 문어 다리를 펼치고 계셔서 많이 바쁘셨다. 이 여학생은 나중에라도 알았으려나, 알고 헤어졌으려나.

나는 여학생이 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 주제곡은 너무 유명해서 알고 있는 곡이다.

오랜만에 나도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어본다.

Al Di La – Emilio Pericoli-

노래 제목 <알디라>는 '저 너머' 라는 뚯이란다.

(오빠는 언제나 저 너머에 있었다) 

 참 올드하다. 노래도 추억도.......  ■     



https://youtu.be/qRtnUHXVSeQ?si=RbuMQVxL786nmm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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