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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Aug 24. 2023

먼저 떠난 친구  H의 편지

HS 2




To   J ㅇㅇ      

그동안 잘 있었니?

부모님께서도 안녕하시고?

맑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진누런 넓은 논을

상상해 볼 때마다 너의 곱고 귀여운 얼굴에

책상 앞이나 또는 무심코 길을 걷노라면 정말 。。。,

우선 편지가 늦은 것을 진심코 미안하게 생각한다.

편지가 늦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요즘은 (고입선발고사)에

열중하고 또한 학교에서 내주는 모의고사나 월말고사에서

점수를 좀 더 올리려고 쟁탈전이 심해, 그래서 늦은 것이니

이해해 주겠지?

그리고 너를 만나려고 시간 좀 내려 했지만 좀처럼 나지질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은 많은 학창 시절이 있으니 염려 마라.

나는 너의 그 편지를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정말 너와 나의 우정은 죽어도 또한 천당에 살더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을 것이다.

너와 나! 얼마 남지 않은 고입 선발 고사에 열심히, 열심히,

잠을 청하지 말더라도 공부에 전념하자 응!

펜을 들기 전은 쓸 이야기 거리가 많았는데 막상 펜을 드니 영 반대인데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몸 건강히 。。。,     

* (시간 있으면 찾아가 볼) (부모님께도 안부 전하고)     


78. 10 13. 금     HS  씀    

       


    

남편의 절친이었던 H의 편지다.

고입선발고사를 준비할 때라니...

H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나 보다 그런데 중학교를 같은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나 보다.

( 같은 고향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H는 서울에서 유학했나 보다.)


H는 남편 친구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나의 여고 후배였는데 참 착한 후배였다. 후배는 H를 참 많이 사랑했다.

신혼 때 그들은 우리 부부를 초대했었다. H부부의 신혼 집들이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작은 빌라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미지트가구를 들여놓아서 내가 부러워했었다.

그렇게 신혼집이 예뻤는데 후배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H의 술버릇 때문이다.

     

H의 편지를 보니 글씨도 여학생처럼 정갈하고 예쁘다

거의 키가 190이 다 되는 큰 덩치에 이 필체는 안 어울린다.

은행원이었던 H와 잘 어울리는 필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남편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을 신혼 초에 몇 번 했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 부부동반 모임은 지금까지 나간 적이 없다. 그동안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 모두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어서 부부동반 모여도 술 마시다 끝나는 게 너무 싫었다. 특히 아이에게 그런 아빠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남편의 친구들을 내가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부류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러니 H도 후배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지난봄 카페에 앉아있다가 그 H와 후배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물었다 “ 그 H 씨랑 후배(이름도 잊었다) 잘 지내고 있어? 갑자기 그 사람들 생각나네...”

남편이 말했다 “ 내가 말 안 했나? H가 죽었다고...”

“ 아니 말 안 했는데? 왜?”

“ 지난봄에 죽었어. 간암으로”

“ 아니 근데 나한테 왜 말 안 했어? 그럴 땐 가 봐야지 ”

“ 나도 못 가봤어.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고  나중에 장례 치르고 연락했더라고”

“ 아니 그러면 내 후배는 어찌 지내?”

“ 잘 지내겠지 처가가 원래 부자잖아. H도 아프기 전부터 방 얻어서 혼자 지냈는데 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혼 때부터 술 때문에 속 섞이더니, 결국 나이 들어도 그 버릇 못 고치고 혼자 지내다가 간암에 걸려 죽은 친구 H.... 어쩐지 언젠가부터 남편도 간 영양제를 열심히 먹더라니 그 이유를 알았다.      

착하고 성실했던 H 씨, 가족들도 친구들도 면회도 못 오는 병실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일찍 가려고 젊어서부터 술을 당겨 마셨나,

이 편지를 통해 안 것은 중학교 때 남편은 곱고 귀여운 얼굴이었다는 것

한때는 순수하고 푸르던 소년들이 술에 절어 늙어가고 있다.

안타깝지만 타인의 삶에 누구도 관여할 수가 없다. 부부라도 자식이라도... 어찌할 수가 없다. 인간이 하얗고 깨끗하게 늙어가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이미 세상에 없는 H의 어린 시절 풋풋하고 단정한 편지

그 시절 나도 좋아했던 스누피가  있는 남학생의 편지를 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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