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로 부터
00에게
오늘은 비가 왔고 오후엔 개었다.
아직은 개이지 않은 먹구름 속 깊이에서 조그마한 진주알 하나,
눈이 시리도록 내뿜는 그 하얀 빛에
나를 반성해 보고 너에게 펜을 들었어.
00, 작은 시간 동안이지만 잘 있었는지?
너의 편지 받아보고 정말이지 너무 놀라고..... 이상하기마저 했어.
너와 나와의 편지가 너에게 부담이 되었을 줄은 정말 몰랐어.
난 그렇지 않았거든.
너에게 편지가 오면 언제고 나는 즐거웠어,
난 공부가 안되거나 휴식시간을 통해 너에게 편지를 했고
네가 생활하는데 부담이 되었고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우리들의 편지는 이대로 계속 진행시킬 게 못되지 않아.
내가 너와의 편지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히 우정만으로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편지를 하게 된 이유는 우리 오빠를 보와 왔기 때문이야.
오빠는 1학년 말에 여자 친구가 생기었거든
그 후 오빠는 모든 것에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어.
그래서 내가 너와 편지를 한다고 했을 때도 오빤 찬성 편에 섰던 거야.
오빤 나에게 적극적인 사람이 되길 원했으니까( 난 무척 소극적이래)
그리고 내 딴에 생각하길 너도 모든 일에 열심일지 모른다는...
“ 일거양득” 같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결과가 그렇지 못한 것 같으니 한편으론 슬픈감마저 드는구나.
0아, 우리가 편지를 함으로써 앞으로는 계속 너에게 부담감이 들거나
시간을 빼앗긴다던가 할 땐 언제든지 말해.
읽자니까( 너의 편지) 미안감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중략)
***
너에게 또 미안하구나
넌 나에 대해 너무 알지 못하지.
알고 있다면 이름뿐. 오직 이름뿐 이야.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야.
“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아.
그리고 이 사진은 네가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되도록 너의 마음에 꼭 들었음 나도 기쁘겠다.
이 편지가 너의 여행 후가 될 것 같아하는 말인데. 여행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 같은 것 하나만 가르쳐 줘.
나도 한 번 시도해 볼 게 (도와줘)
그럼 오늘 저녁 멋있는 꿈 꾸도록 해 잘-자.
1980년 4월 30일 HK이가
HK와 편지를 계속하는 것이 뭔가 부담이 된다고
편지를 보냈나 보다.
HK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아쉬워하고 있다.
잡고 싶지만 매달리기는 싫은 마음...
너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차차 나를 알게 되면 너는 나를 좋아할 거라는....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예쁘게 나온 사진도 보냈나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끝내기는 싫다고 고백하고 있다.
누군가를 많이 안다고 그 사람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 더 애가 타는 것인데...
이 편지를 없애기 위해 읽고 있는 나는
그래도 HK의 마음을 알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