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한 잔의 기억
생각났다, 내 남사친이었던 정 ** 14
항상 멋을 추구하는 친구의 삶이 허영된 꿈이 아니라 현실로써
꼭 실현되기를 빌면서 Pen을 든다.
친구.
신경질 날 정도의 적막함을 소유한 채 하루를 보내려는 마지막 종착역에서
다시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날이 밝으면 항상 반성하고 나름대로의 멋있는 계획을 세우고
누구인가를 깊이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남의 빈곳에서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공허와 허탄속에서 벗어나고픈 마음
은은하게 그리고 살포시 감싸준 그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친구.
난, 내가 슬프거나 기쁠 때 눈과 비가 오는 것을 참 좋아하고 사랑한다
물론 우리의 만남의 비는 기쁨은 안겨다 주는 거겠지
먼저 우리 집 소개하기
엄마 아빠 오빠 1분 언니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야
그러나 큰 언니는 작년 11월에 결혼했어. 지금은 애기 엄마가 되고
난 막내 이모가 되었고, 4식구의 단란한 가족이다.
집에서는 막내라 어리광도 부리지만 나가면 언니도 될 수 있다고
우리 부모님은 완고하신 편이고 오빠는 보수적이고 나한테 제일
잘 해주면서도 제일 엄격하지.
아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야. 엄마는 기쁠 때나 슬플 때 함께
나누시고 그날 하루의 일과를 의논드리고 경고해주시는 좋은 분이야
작은 언니는 서울에 회사다니고 있어
나의 취미 : 영화감상, 음악감상
좋아하는 운동은 야구
그리고 나의 꿈은 간호원이 되는 꿈이었지
부모님의 반대와 지금의 나로서 변했지만
종교, 우리식구 모두가 천주교야
참 건축가가 된다고... 남자로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미술을 잘 그린다니 참 부럽구나
오빠가 그림을 잘 그리시지만 난 영 무 재주야
나중에 시간 있으면 선생님이 되어주겠지
친구,
낡고 지루했던 악몽의 시간을 지워가며 양말을 갈아신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진실 된 삶을 위해 노력해보자
슬픈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새파란 눈동자로서 먼 미래를 바라보자
친구,
지금의 이 시간에는 외로운 방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겠지.
부디 친구의 앞길에 밝은 희망과 내일이 있기를
하느님께 두 손 모아 빌어
이만 안녕
1981 8 27 목
낡고 지루했던 악몽.... 이런 어디서 주워들은 낡은 표현들이 우습고 정감 간다.
펜팔 여학생 편지인가?
편지에 자기소개, 가족소개를 하고 있다.
아니 펜팔까지 한 거야? ( 물론 나도 제주 친구랑 펜팔은 했었지만ㅎㅎ)
“우리 부모님은 완고하신 편이고 오빠는 보수적이고 나한테 제일
잘 해주면서도 제일 엄격하지.”
그 시절 부모님이 완고하신 것은 이해하는데, 오빠가 보수적이고 엄격하단 말이 왠지 슬프다.
여동생에게 보수적이고 완고한 오빠라면 결혼해서 아내에게는 잘했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내가 보수적인 오빠라는 말에 왠지 슬픔을 느낀 이유를 바로 알아냈다
여고 시절 내게도 남사친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만났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도 잊었다.
초등학교 때는 존재감 없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만나니 그 친구는 키가 훤칠한 잘생긴 청년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남학교에서 전교 1,2등 한다고 했다.
5학년 때는 지질해 보였는데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만나서 공부하다가 가끔 밖에 나와 산책도 하고
도서관 근처였던 그 친구 집에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곤 했다.(진짜라면ㅎㅎ)
내가 그 친구에게 실망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성문종합영어>>에 있는 영어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내게 물어왔다.
「 빛과 소금이 되어라」
그 친구가 말했다
“ 왜 소금이야? 소금이 왜?”
“ 왜라니? 빛과 소금, 세상에 빛과 소금 같은 존재 소금을 몰라?”
“ 그러니까 빛은 알겠는데 소금은 왜 소금이냐고”
“ 아니 소금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방부제 역할도 하고..... 유익한 그런 의미 몰라?”
그 친구는 끝까지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아니 바보 아님? 저렇게 이해력이 딸리는데 어떻게 전교 1,2 등을 한다는 거지?
그친구에 대한 나의 신뢰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 그 친구 이름이 생각났다.정00 )
두 번째 실망한 일도 기억난다.
그 친구가 밤새 너무 재밌게 읽었다며 내게 책을 주었을 때였다
제목도 기억난다. 『흔들릴 때마다 한잔 』이었다.
책 표지부터 제목부터 3류같은 그 책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았다.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후 세 번째 그에게 실망하여 아예 친구 목록에서도 지워버린 사건이 있었다.
조금 어둑해지던 저녁 우린 도서실을 나와 걷고 있었다.
그의 집 쪽으로 가다가 그 친구 여동생을 만난 것이었다.
여동생은 중학생이었다
그런데 그가 여동생을 보더니 욕을 하는 것이었다.
“ 야 너 이 지집애야! 이 시간에 집에 안 있고 어딜 돌아다녀!”
나는 너무 놀랐다.
나도 오빠가 있지만 나는 오빠에게 한 번도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집애라는 말, 그 외 어떤 욕도,
게다가 자기도 이 시간에 돌아다니면서 여동생에게
돌아다닌다고 뭐라 하는 오빠라니 .....
아, 새삼 나의 오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지금도 우리 오빠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그러고 보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오빠에게도 남동생에게도
평생동안 어떤 남자도 나에게 소리치고 함부로 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남자 남편 빼고,
남편에게 보낸 여학생의 편지에서
“보수적인 오빠”라는 말에 생각난 정** 야
어떤 동창회도 어떤 모임도 가지 않아 너의 소식은 모르지만
네가 명문대 갔다는 소식은 그때 알고 있었다 .
내 동창 정 ** , 남편에게 편지 쓴 이 여학생,
우리 모두 잘 살아가고 있기를....... ■
1980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