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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Oct 22. 2023

오빠 편지

착한 우리 오빠  16


ㅇㅇ     

오늘은 토요일이다. 저녁을 일찍 배식하고

취사장 정리를 빨리 끝내고

휴식을 좀 취하기 위해서 담배를 한 대 물고

식당 밖 창문 쪽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명상에 잠겨본다

어제는 몇 일간에 걸쳐서 야전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목욕도 좀 하고 면도도 하고

그동안 밀렸던 빨래도 다 해놓았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아직 밖은 환하다

날씨는 완전히 풀려서 따뜻한 봄바람의

향긋한 냄새로

매년 매 학기가 시작되던 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학교 다니던 생각으로서

설레임을 느끼기도 한다

그늘진 산에는 아직도 눈이 군데군데 있지만

이곳 전방에는 봄은 완전히 찾아온 것 같다

중대 사정으로 12월부터 취사임을 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계속할 것 같다

요즈음의 생활은 어려움은 거의 없고

재미있고 보람된 시간이 많다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수많은 시간을 공부를 계속했으면 하지만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만은 없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시간을 틈틈이 내어서

공부도 하고 있다

2년이 좀 더 되는 군 생활이 그렇게 길고

지루하기만 하지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훈련소에 입대한 것 같았는데

벌써 병장 제대가 몇 개월 밖에 안 남았으니

매우 빠른 것 같다.

oo(나) 도 직장도 얻었고 DJ 생활도 그만두고 이제 공부에도 열중한다고

하니 참 잘된 것 같다.

더욱이 어려운 점 없이 잘 지낸다니 퍽 다행스럽다

승리란 항상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 같다

3월 말에는 춘천 부근으로 약 1개월간

야전훈련을 간다

나는 가게 될지 안 가게 될지 모르겠는데

자세한 건 다음에 알려주고

평일에도 변화는 되는데 저녁에 나가서

아침 일찍 귀대해야 된다.

보내준 책은 잘 받아보았다.

그럼 다음에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      

                                                  3. 8  ㅇㅇㅇ (오빠)    


      

ㅇㅇ야

구월 이일 날 나 집에 간다

일주일 짜리 포상 휴가야

십구일 날 가기로 했었는데 연기됐어     

                                                이십 이일 오빠 씀   


 

    



남편과 내가 연애할 때,

군에 있던 오빠가 남편에게 쓴 편지.   

  

평생 내게 한 번도 화내거나 큰소리친 적 없는 나의 오빠.

나는 모든 오빠들이 다 우리 오빠 같은 줄 알았다.

지난 글 <흔들릴 때마다 한잔>에서 처럼,

내 동창이나 친구들의 오빠를 보고 우리 오빠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는 어딜 가나 날 데리고 다녔다.

고기 잡으러 갈 때도, 썰매 타러 갈 때도, 전쟁놀이하러 갈 때도...

오빠는 중학생이 되자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를 집에 와 내게 알려 주었다.

우리는 <성불사의 밤>을 좋아했다.

오빠는 내게 기타 코드도 알려주고, 호떡도 부쳐주고, 누룽지도 튀겨주고.... 그런 오빠였다.    

  

오빠가 결혼하면서 우리는 멀어졌다.

올케가 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다정한 것이 싫은 올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몇십 년 서로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남남보다 더 남남처럼 서로 안부도 묻지 않고 지냈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오빠는 퇴직하고 고향 내려가 엄마와 살고 있다.

    

구순이 넘은 엄마가 거동을 못 하게 되자,

가족들은 모두 요양원에 모시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빠는 “ 난 엄마 요양원에 못 보내”라고 말했다.


오빠는 엄마에게 매일 삼시 세끼를 해드렸다.

매끼마다 밥도 새로 짓고 국도 새로 끓였다.

요리책을 보며 영양사처럼 골고루 엄마에게 해 드렸다.

그러다가 오빠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거동도 못 하시던 엄마는 지금 기운을 차려 노치원에 다니신다.  

   

어려서부터 착했던 오빠.

엄마가 내게 연탄불 갈라고 시키면

나는 엄마한테 따졌다. “왜 아들은 안 시키고 나한테만 시켜? ”

그러고는 연탄집게를 오빠한테 던졌다.

“오빠가 해! 연탄가스는 여자에게 나빠”

나중에 커서 오빠가 말했다.

“그때 연탄불 갈면서 울었다고...”  


하, 이때 연애할 때 남편은 울오빠 이상 다정하고 나를 바라보는 것만도 아까워했었다.

결혼하면 당연히 남편도 오빠처럼 내게 그럴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것은 없었다.

   

지난가을 엄마랑 오빠랑 나랑 셋이 엄마의 고향을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엄마와 오빠와 셋이 떠난 하루 여행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엄마는 어릴 적 추억을 얘기하면서 참 좋아하셨다. 지금도 오빠는 엄마를 돌보며 엄마와 지내고 있다. 착한 오빠로 인해 온 집안이 평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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