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집 깡패
제가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달봉이의 하루(주말) 스케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8시 아빠 기상과 함께 같이 기상 (물론 새벽 몇 시에 잠들었는지는 본인만 앎)
1. 아빠가 샤워하고 나올 동안 화장실 앞에서 정자세로 앉아서 대기
2. 아빠가 샤워하고 나오면 아빠 정강이에 날다람쥐 어택 시전 후 발라당 누워 애교빔 발사
3. 간식서랍 열면 갑자기 거실 한복판에 누워서 관심 없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훔쳐보기
(이때 직접 달봉이를 들어서 밥그릇까지 배달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삐짐 (.....))
4. 간식 다 먹고 그루밍
5. 그루밍 끝나면 헤라어택 및 우다다
6. 우다다 끝나면 캣타워 지붕 위에 올라가서 낮잠
7. 낮잠 다자고 일어나서 헤라 어택 및 우다다
8. 점심 먹고 우다다
9. 우다다 다하고 헤라 어택
10. 그루밍하고 우다다
11. 잠들기 전까지 5번부터 10번 무한 반복
고양이도 한 살 넘으면 얌전하다는데 달봉이는 그런 거 없습니다. 특히 달봉이는 캣타워보다
빨래 건조대를 더 좋아하는데 이불빨래라도 널어놓는 날이면 아주 좋아 죽습니다.
빨래 건조대에서 나무늘보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저나 헤라가 지나가면 뛰어내리면서
날다람쥐 어택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야 뭐 업둥이 주워온 죄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헤라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천사표 노르웨이숲인 헤라는 달봉이가 얌전하면 수시로 그루밍해주면서
잘 보살펴 줍니다. 고양이가 이게 가능하다는 게 진짜 신기합니다.
그렇게 저희 집을 접수하신 지 1년 6개월 차에 접어든 달봉쓰덕에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들락거리는 기분입니다.
거의 달봉이만 보면 제 입에서 루틴처럼 나오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지 마라~
2. 안돼~
3. 야!
4. 어허!
5. 이리 와!
6. 나와!
..... 등등
주말에 집에 있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달봉이 저지하는데 소비하는 저지만 결코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낮잠 잘 때는 보통 이러고 자거든요
하루 종일 혼내고 구박만 하는데도 제가 집에 있으면 제 반경 1m를 안 벗어나는 진성 개냥이입니다.
토리는 포메중에서도 다리가 진짜 약해서 (치킨 닭다리보다 얇음) 달봉이가 심하게 장난이라도 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토리한테 장난을 치면 정말 엄하게 혼냅니다.
한 번은 토리한테 냥냥펀치 날리는 모습을 딱 걸려서 잽싸게 뛰어가서 응댕이를 서너 차례 때린 적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달봉이를 낚아채서 궁둥이팡팡 때리면서 혼냈더니 놀라서 얼른 뛰어가더니 옷장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옷장 안에서 어찌나 서럽게 끼잉 끼잉대면서 울어대는지 이라오라고 해도 오지도 않고
(보통 이름 부르면 뚱땅뚱땅 하면서 뛰어오는 편) 울기만 하길래 꺼내서 이쁘다 이쁘다 하고 쓰다듬어줬더니 그새 골골대면서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며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여럿이서 같이 사는 집에서 해도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은 분명히 가르쳐줘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훈육을 해서인지 장난기도 많고 사고도 많이 치지만 저를 비롯한 식구들한테 한 번도 발톱을 드러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미워할 수 없는 깡패가 저희 집 달봉이입니다.
6월의 어느 날, 퇴근길 올림픽대로 한복판에서
조막만 한 고양이를 줍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냥 지나가면 될 걸 왜 멈췄는지, 왜 내렸는지.
그리고 그 작디작은 생명체가 제 인생을 통째로
리모델링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순간의 선택이 너무 소중해졌습니다.
올림픽대로에서 냥줍한 썰은 여기까지 입니다.
긴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퇴근길에 뭔가 작고 울고 있는
생명체를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인생이 예상 못한 방향으로 귀엽게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