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영어공부 이야기 1
#26살에 영어공부 시작, 순수 국내파 used to be a private tutor의 생생한 영어정복기
토익 공부는 좀 일찍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나는 약간 정신 못 차리는, 땅에서 한 뼘 정도 붕 떠 있는, 대학생이었다.
무슨 기적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매달 토익 750점을 받으면서 시험은 또 꼬박꼬박 쳤고, 언제나 750점이었다.
비싼 그 시험을 매달 보면서 돈 아까운 줄 몰랐고,
내가 ETS 화장실 하나는 만들어 주었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 실력을 돌아보면,
am, are, is는 알지만 be동사를 몰랐다.
알파벳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말할 수 없었다.
자음과 모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파닉스가 뭔지 몰랐다.
I, my, me, mine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그게 어떻게 쓰이는지 몰랐다.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가혹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고등교육까지 영어를 배웠으나,
문법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상태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짜 점수다운 점수를 따야만 했다.
아무리 돈을 들여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연습을 해도 전혀 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실력에 맞지 않는 강의를 듣고 있었다. (당연히 늘지 않는다.))
그러다 중간에 좋은 선배를 만나 토익 스터디에 들어갔다.
철저한 한국식 찍기 실력과 엉덩이 힘으로 800점 후반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실력을 또 돌아보면,
LC에서는 어느 때에 어떤 단어가 나오면 그게 답이 다를 알고 있었다.
RC Part 5에서는 빈칸의 앞뒤를 보고 뭐가 나와야 한다를 어렴풋이 알았다.
RC Part 6은 답답하게 어려워서 반타작하기 일쑤였다.
RC Part 7은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답을 찾았다.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찍기에 물이 몰랐었다.
(당시에는 그게 찍기인 줄도 몰랐다.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를 푼다는 것을 찍기라고 생각한다.)
하면 하는 대로 점점 점수는 올라갔지만 900점은 못 받았다.
어찌 됐든,
난 여전히 영어를 못 했다. (여기서의 영어는 읽기와 말하기, 쓰기, 듣기.. 전부다..)
그런 나의 저질 영어실력과 상관없이 또 해외에는 가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대학교에서 해외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프로그램 합격의 우대사항으로 쓰여있던 ‘국내 인턴 경험’에 홀려 그 길로 한 사단법인에서 인턴으로 7개월간 일하게 됐다.
이 인턴생활은 내 삶을 전환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