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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Apr 21. 2021

당신의 영혼의 밥상 메뉴는?

저는 지난 주에 외식을 세 번 정도 했는데요. 사실 밥을 짓다 보면, 남이 지은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밥상 아이디어가 떨어지고 내 맛이 그냥 지겨울 때, 설거지 걱정 없이 그냥 한 끼 때우고 싶은 생각으로 아무 밥집이나 들어가서 한 끼 먹으면, 배는 부른데 마음이 더 허전해져 올 때가 있어요. 밥이 맛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뭐 어디 가서 식사 시키면 밥 나오고, 찌개나 뭐 고기반찬 같은 거 나오고, 작은 접시에 김치네 마요네즈 넣은 샐러드네, 감자 조림이네 그런 게 나오는데요. 정말 맛 없는 건 아니지만요. 내 마음 속에 있는 그게 아니라서 그런 생각이 드나봐요. 납작한 철 백반 그릇만 봐도 솔직히 화가 날 때가 있어요. 그릇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며칠 전이 음력 설이었잖아요? 차례를 지내면 조상님들이 오셔셔 음식 냄새를 맡고 배를 부르게 하고 가신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그래서 정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차례 전과 차례 후 음식의 무게를 재어봤는데요. 차례를 지낸 후의 음식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실험에 오차가 있었던 거 아냐? 라고 말씀하시려는 당신, 잠깐 기다려 보세요. 저도 어릴 땐 외식이 무조건 좋았거든요. 어른들이 같은 메뉴라도 집밥은 다르다고 말씀하실 때, 처음엔 아~ 혹시 식당에서는 조미료를 많이 써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어요. 에이 그럼 비싼 식당에 가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죠. 어른들이 정성이 들어가 있는 밥은 다르다고 말씀하시면 무슨 똑같은 재료로 요리하는데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외식하려 나가면 귀찮고, 비싸니까 지어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엄마가 하는 거보다 요리 공부 열심히 하고 요리 경력도 열심히 쌓은 프로가 하는 게 맛있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진짜 어느 순간부터 정성의 맛이라는 게 느껴지더라 이거죠. 얼마 전에 한국 텔레비전에서 내 영혼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는데요. 다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어릴 땐 새로운 것, 화려한 것을 먹고 싶지만, 나이가 들 수록 정성의 맛을 그리워 하게 된다는… 만약 나이가 정말 많이 들어서 세상을 떠나 영혼이 된다면, 1년에 한 두 번 식구들을 만나러 와서, 음식에 들어있는 정성, 그것만 맛보고 외로운 길을 다시 떠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 영혼의 밥상을 소개합니다. 사기 그릇에 담긴 질지도 되지도 않은 흰 밥 옆에, 정성 들여 끓인 사골 국, 동그란 파가 송송 떠 있고요. 딱 익은 사각사각한 김치는 가족들이 사나흘은 냉장고에 넣고 먹는 넉넉한 그릇에 담겨 있죠. 바삭한 멸치 볶음, 두부 조림이랑, 쌉쌀한 참나물과 향기 좋은 우엉 조림, 참기름 두 방울 떨어 트린 조개젓, 새큼한 파래 무침에다가 풋고추에 시골 된장 콤보! 밥상 가운데엔 껍질이 노릇노릇한 조기나 고등어가 반듯이 누워 있고... 시원하고 투박한 보리차가 유리컵에 담겨 있어요. 만약 이런 정성을 담은 밥상에 향을 피워 준다면, 사랑하는 얼굴들이 나를 기다린다면, 구천에서라도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요. 지쳐 누운 당신을 소환할 수 있는 영혼의 밥상- 거기엔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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