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니 Apr 27. 2021

남성 정장에 대하여

남자의 정장을 안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까? 겹겹이 몸을 감싸는 단정한 직물과 나란히 달린 단추들이 주는 스토익한 느낌, 그리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자신감, 이런 건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또 자켓을 벗고 커프스를 잘 접었을 때 그 밑으로 나온 팔뚝과 시계라던가 (시계는 고가가 아니라도 괜찮아요), 앉았을 때  동그란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섹시함이란 정말 남자 정장만의 아름다움인 것 같다. 브리짓 존스 1편에서 정장 멀쩡히 잘 입고 있던 남자들이 분수대에서 개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조차 정장은 멋지다. 정장을 입고 냉정한 척 하던 남자들이 에잇, 체면이 문제냐! 하면서 세상 유치한 싸움을 하는 거 말이다. 제임스 본드가 피 한 방울 안묻히고 뚜벅뚜벅뚜벅 탕탕, 이러는 거보다 멋있다. 킹스맨도 약간 머리가 흐트러진 콜린 퍼스가 멋지잖아. 쓰고 보니 내게 있어 남성 정장의 섹시함은 내면의 야성을 스토익하게 다스리는 듯한 느낌에서 오는 것이로군. (콜린 퍼스는 젊을 때 나는 반항아였고 상류 계급 정장 따위 개나 주란 생각이었는데 나이 들어 정장핏으로 한국에서 회자되는 것이 어색하단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포인트라고요.)


아는 여자 입장에서, 생활면으로 들어 가면 매일 아침 스스로 셔츠를 다려 입는 남자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자기 스타일과 거기에 따르는 노동을 충분히 스스로 감수하는 사람이라니 가슴을 치는 섹시함이다. 매일 남자 셔츠를 다리는 아내라면...... 그래. 막 근육질인 남자가 막 샤워를 한 온기와 좋은 냄새를 막 뿌리며 오면 입혀주는 맛은 있을 것 같다....만, 내가 막 점심 도시락 냄새가 밴 머리에 파자마를 입고 바닥에 기어다니는 애를 보면서, 아니면 빨리 옷을 입으라고 소리 지르면서 다리고 있다면 전혀 뭐 아무런 감동이 없겠지. 이 놈의 셔츠 다 찢어 발기고 싶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셔츠 따위 입지 않는 일을 하라고 아침마다 마구 화를 낼 지도.


서양인들은 허리가 짧고 어깨가 좀 둥근 느낌이라 비즈니스 중심가 쪽에 가면 현빈이나 정우성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정장을 잘 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색깔도 역시 한국보다는 더 과감한 색이 많은 것 같다. 디폴트는 푸른 계열에 그 끔찍한 은갈치 (이건 한국에서 회사 직원이 처음 입고 왔을 때 내가 바로 작명한 건데, 내가 지은 이름이 널리 퍼진 게 아닐까 나혼자 자부) 는 보이지 않음. 은갈치는 정말, 쳐마르고 팔다리가 긴 체형만 어울..... 아니야. 아무도 안 어울릴 거 같아. (설레설레)


아들을 데리고 가 정장을 맞춰 주는 건, 딸을 백화점에 데려가 검정색 스커트와 검정색 통굽 구두를 사주는 느낌일까. 누워 있는 거 말고 걸려 있는 걸로. 부모는 아이가 사회에서 온전히 제 몫을 하는 성인이 되길, 이 옷이 세파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큰맘 먹고 데려가겠지만, 막상 정장을 입은 아이를 보면 얼마나 뿌듯할런지. 어제도 멀쩡한 바지에 구멍 난 걸 발견해서 이제 개학 하면 뭘 입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는데, 아이는 "오늘 입기 전에 벌써 구멍이 나 있었어." 란다. 이 녀석은 체형이 특이해서 기장이 맞으면 허리가 안맞고 허리가 맞으면 기장이 안맞기 때문에 나는 바지를 살 때마다 매번, 팔자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느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구멍까지 기우려면 정말 화가 난다. 무조건 싼 바지를 사고, 바지가 작아지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아침의 화딱지와 부끄러움을 다스리는 엄마의 아침. 그래도 네가 크면 꼭 맞춤 정장을 사 줄 수 있도록 엄마는 오늘도 공부하마! 그 때도 바지에 구멍을 내 오..려나.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영혼의 밥상 메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