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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Apr 27. 2021

노래가 좋아

엄마와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인 '노래가 좋아'. 친구나 가족이 팀을 짜서 노래 실력을 겨루는, 흔한만큼 인기 있는 포맷이다. 한국은 보통 사람들도 어찌나 사연이 많고 거기에 노래까지들 잘하는지 볼 때마다 놀라는데 아마 사연의 고비고비마다 노래를 해서가 아닐까. 사연과 노래의 조합. 나에겐 가장 한국적인 티비 프로다.


이번주 2승째 우승하신 어머니와 장성한 세 자녀 팀. 어머니가 백발이 성성하신데 목소리가 살아 있으셔서 깜짝 놀랐다. 엄마의 설명에 의하면 이 어머니는 그 시절 KBS 머시기 가수(?) 셨고 아들딸도 가수가 되길 바랐는데 IMF로 집이 기울어 아들딸은 노래 선생님 등을 하고 있다 한다. 네 분은 모두 외모도 아름답고 개개인의 실력도 하모니도 프로급으로 과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우승자였다.


2승 확정 후 출연자들이 다 같이 나와 박수를 치며 맺는 말을 하는데 그 백발이 성성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부군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잘 가라는 말 한마디 못해주어 미안하다며 잘 있으시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박수와 꽃가루와 광광 울리는 음악 속 잔잔한 이별 인사에 성인인 아들딸 모두는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하늘을 봤고 딸은 손날로 눈물을 닦고 또 한 명은 고개를 떨궜다. 어머니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아마 얇은 피부 속, 눈에서 코로 목 뒤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슬픔을 참은 자들은 눈물의 길이 속으로도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다른 출전자 팀,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수술을 하고 그 해 남편이 큰 병 진단을 받아 4년후 돌아 가시고 이후에도 아들이 거듭 수술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온 그 엄마가 눈물을 닦지도 않고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니 당신도 충분히 힘들게 살았는데 어떻게 남이 힘든 이야기에까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거야. 아까 자기 얘기할 때는 좀 글썽이다 만 양반이, 하고 생각하다 알았다. 그렇구나. 자기의 슬픔의 깊이가 깊으니 남의 슬픔에도 금방 닿는구나. 사람이란, 슬퍼지면 슬픔의 저 밑바닥까지 다녀 오거든. 자주 슬픈 사람, 깊이 슬픈 사람은 그 왕복 속도가 점점 빨라질 수 밖에...


그러고보니 드라마에서 젊디 젊은 연인들이 헤어지는데도 그렇게 혼자 눈물 콧물을 훌쩍이는 우리 엄마. 우리가 놀리든 말든 지금도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 분 역시 혼자 깊은 슬픔의 동굴을 파고 있었던 것인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눈물을 흘리고 마는 인간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숭고한 생물인가. 그것이 비록 자신의 거울을 통해 이해한 것 뿐이라 해도. 심지어 남의 슬픔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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