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백일은 한 사람의 여자가 엄마로 변하는 백일이다.
옛날 옛날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고 싶어 신의 아들 환웅에게 찾아가 방법을 물었더니, 백일 간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지내라더라. 그런데 호랑이는 중간에 뛰쳐나가서 사람이 되지 못했고, 곰은 끝까지 버텨 사람이 됐다. 사람 중에서도 여자가 되어 환웅과 결혼했고…
라는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들어 본 이야기다. 나는 어릴 때 동화책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는데, 곰이 동굴 밖을 나가자 새들이 “짹짹, 아가씨 너무 예뻐요.”라고 했던 대사가 아직 기억난다. 검고 긴 머리의 여자가 웬 천으로 몸을 가리고 숲 속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당연히 ‘호랑이가 남자가 될 예정이었는데 뛰쳐나가는 바람에 환웅이 여자가 된 곰 하고 결혼해 줬구나. 이런 상남자 환웅.’이라고 생각했고, 최근까지 그 믿음에 변함이 없었다. 이 믿음에 변화가 생긴 건 아이를 갖고 나서다.
이 이야기에 대한 내 첫 번째 질문은 이거다. 왜 고행의 방법이 식이요법을 통해 서였는지? 고행의 종류는 많다. 단식도 있고, 노동도 있고, 셀프 채찍질 등 자학을 통한 고행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먹기를 통해, 그것도 특정한 음식을 먹는 것을 통해 고행을 했을까? 두 번째로는 왜 그 기간이 백일이었을까? 그것도 동굴에 처박혀서? 무언가 특별한 음식만을 먹으며 100일 동안 어디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이 상황, 뭔가 익숙한데…? 그렇다… 바로 아기 낳고 전통적으로 엄마들이 하는 일이다. 애를 낳으면 미역국 등 특정한 음식만 먹으며 집안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 약 백일 간!
그 백일은 한 사람의 여자가 아줌마 내지는 엄마로 변하는 백일이다. 남편은커녕 이 세상 누구와도 나눠 보지 못한 친밀감을 아기라는 존재와 나눈다. 생각해보면, 아기가 생후 몇 년간 기억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수유를 하고, 출산 후 산도에 생긴 상처를 회복하며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신체 부위들이 거의 만천하에 공개된다. (최악의 이야기는 회음 절개 수술을 한 의사가 알고 보니 남편 친구의 친구였다는 것.) 아기는 2시간에 한 번씩 울어대죠, 심지어는 별로 예쁘지도 않다. 처음 수유를 하면 젖꼭지를 사포로 빡빡 긁는 것처럼 아프고, 생각만큼 배는 들어가지 않고, 조심하라는 건 왜 이렇게 많고, 잠은 너무나 자고 싶고..... 아기 피부에 뭐라도 이상한 게 생기거나, 가끔 울음소리가 이상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애가 자는 시간에 육아서다 인터넷이다 찾아보며 전전긍긍.... 그렇게 자신의 원래 라이프 스타일을 벗어나 초긴장 대기 상태로 백일을 지내면, 개인, 여자로서의 자신은 없어지고 어느새 손에 똥 묻는 거 정돈 아무렇지 않은 엄마가 돼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서래마을 한 가정의 냉장고에서 아기 시체가 발견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더 충격적이었던 건, 범인이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던 그 아기의 엄마였다는 것이다. 그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남 일 같지 않다.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혼자 아기를 키우는 프랑스인 엄마. 엄마가 되면 뭔가 기적이 일어나 어떤 힘든 일도 사랑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도저히 뭔가 자연스럽다고 하기 어려운,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자꾸 일어난다. 출산 전의 멘탈로는 이겨낼 수 없기에 멀쩡한 여자들이 엄마 내지는 아줌마로 변하고, 어떤 여자들은 심지어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산모 네 명 중 한 명은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인 엄마가 대체 왜 이렇게 쉽지 못한 것일까?
여하튼 그래서 나의 결론- 동굴에서 백일 간 쑥과 마늘만 먹기 테스트는 엄마의 자질을 가리는 테스트가 아니었을지! 그렇다면 호랑이가 시험을 통과했대도 여자가 됐을 텐데? 괜찮다. 옛날엔 일부다처가 가능했으니까….
그러니까 환웅은 애초에 곰과 호랑이를 여자로 만들어서 자기 부인 삼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둘 다 되면 둘 다, 하나만 되면 하나만. 신의 아들과 결혼하고 싶은 인간 여자도 많았을 텐데 왜 굳이 동물을 인간으로 만들어서…. 취향이 독특한 신의 아들.... 여하튼 곰 하고 결혼하길 다행이지, 호랑이와 결혼했다면 타이거 맘이다. 소년 단군의 유년 시절은 밝지 못했을지도…
산후조리 때 먹는 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로 외국 병원에서는 산모에게 파스타, 토스트, 카레 이런 거 준다. 물론 샤워도 알아서 해야 한다. 나는 진통 시작부터 출산까지 거의 36시간 정도 걸렸는데, 당연히 그동안 제대로 먹질 못했다. 병실에 오니 시간은 새벽 2시. 너무 배가 고파서 남편한테 먹을 것 좀 찾아오라니까 한 40분쯤 후, 식당이고 뭐고 다 닫았다며 간호사 휴게실에서 베지마이트(별로 맛있지 않은 호주의 전통 페이스트) 바른 토스트 쪼가리를 훔쳐왔다. 아주 짜고 딱딱했던 그 빵. 아아아… 어찌 잊으랴. 산후 조리 때 먹은 것들 얘기는 나중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