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과 대학원 병행하기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코비드 19 시대의 육아란 박물관, 도서관이나 학원, 어떤 아이 돌봄 서비스의 혜택도 없이 부모랑 아이랑 집에 뙇 있는데 심지어 아이는 밖에도 못 나가고 친구도 못 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나의 일과는 기상-아침밥-설거지청소-애랑놀거나공부비슷한거-점심-설거지청소-애랑산책내지쇼핑-애랑놀거나공부비슷한거-저녁-설거지청소-애씻기고재우기 : 여기까지 하면서 내적 빡침- 내적 고요- 내적 즐거움을 어디까지나 내적으로 느낀다. 애한테 솔직히 막 화를 내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 표현형 인간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아이는 코비드19 때문에 못 만나는 친구들이 그리워서 1. 밖으로 못 나오는 친구 집 문 앞에 서서 이야기하기 2. 형제끼리 나온 친구들이 노는 모습 쳐다보기 3. 왠지도 모르고 스트레스받는지도 모르고 짜증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 앞에서 이상행동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나도 상황을 좀 하드 캐리 해보려다 결국 응수한다. “너도 힘들겠지만, 어른도 힘들다. 그만하자.” (라는 어른답지 못한 말) 그러면 요즘은 또 혼자 방으로 들어가서 혼자 레고랑 자동차에 대고 말하면서 좀 삭이고 올 때도 있다. (어른스럽다.) 나도 정 힘들면 딱 한 잔 반주한다…… 최근 술 끊었었는데. (…어른스럽다.) 이렇게 저장 숙성 중인 두 마리. (그나저나 맛김치에 화이트 와인 궁합 짱임.)
어른이 혼자서 새로운 루틴 만드는 것도 힘든데 애들은 얼마나 힘들지.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잠시 인사하고 헤어질 때면, “코로나 끝나면 만나!”라고 하는데 듣는 내가 아득하다. 요즘 아이가 좋아하는 게 뉴스 듣기가 됐는데, “엄마, 코로나 끝났는지 뉴스 들어보자.” 란다. 맨날 뉴스 시작하면 코비드 19 얘기하니까… 여튼 요즘 아이와의 생활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말 딱하지만 나도 힘들다’
심리적 고립감 외에도 (일단 나 역시 얼굴 보고 말하는 성인이 없다. 엄빠들은 같은 상황이니 역시 바쁘고. 요즘은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인간들도 인사 대신 고개를 돌리는데 원.) 일단 애가 잠들면 다음 날 뭐하지, 오늘 뭐시기는 왜 안됐지, 밥은 뭐하지 이런 고민이 들어 이것저것 찾아보고, 체력적으로 힘들고, 생활인으로서 세금도 내고 뉴스도 보고 연재만화도 한 두 개쯤은 봐야 정신 건강이 유지되는데, 최근엔 연단 과제 압박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냥 완두콩 깔고 누운 공주 마냥 어느 쪽으로 뒤척여도 뭐가 자꾸 걸리적거려. 알죠 이런 맘?
유학생들 알겠지만, 영어로 논문 보면서 과제하면서 혼자 그래머 체크하고 하는 과정이 영어 모국어인 학생들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잖아. 근데 애 없는 다른 친구들이 이 격리 시간을 활용하여 죽겠다 답답하다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걸 보면 아침부터 우노를 100번씩 강제 플레이 중인 난 본능적으로 좀 질투가 나는데, 그러면 40년의 경험을 자랑하는 초자아가 즉시 화내서 무엇하나 라는 자가 격려 모드를 발동한다. 근데 그게 잘 안되면 (피곤하면 잘 안된다) 막 서러워지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부터,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 졸업 후에 취업 못해서 망하면 어떡하지, 장기라도 팔아야 하나 어디다 팔아야 하나 이런 구체적 삽질을 하며 내적 울컥 내적 비장… (상상력 과잉인 인간)
이렇게 자존감이 자가 격리 중인 상태에서 과제 제출 기한 연장 신청을 하는데, 솔직히 신청도 부끄러웠다. 아쉬운 소리 하는 자체도 달갑잖은 데, 사회가 주는 육아 노동의 저평가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에 “애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리포트 기한 좀 늘려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좀 창피하다. “애 보느라 시간이 없으면 공부를 왜 하니?”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다. 나아가 “공부를 하려면 애 갖기 전에 해서 인생을 제대로 만들어 놨어야지 너도 힘들고 애도 힘들고 무책임하게 뭐 하는 거니?” 이런 말도 들을 것 같다. 그렇게 말은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제는 8시쯤 애 재우며 잠들었다가 11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과제를 하나 마치고(!) 너무 추워서 침대에 들어갔는데, 눈이 감겨서 애랑 같이 두 시간 정도 잤다. 곧 나팔꽃처럼 반짝 뚜따따다 하고 애는 일어나고 나는 부실 공사된 레고처럼 와르르 분해되려 하는 몸을 추스르려는데 "엄마 배고파" -> 한 단어임. (이 녀석도 배고프다고 하면 내가 일어날 걸 잘 안다.) “야, 넌 엄마 있어서 좋겠다.” 라며 애한테 투정을 부렸다. 근데 솔직히 눈물 날 거 같았다고!
여차저차, 이런 자괴감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너무 늦지 않게 (어른이니까) 신청 이메일을 보냈는데, 허가와 함께 교수님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다. “네 상황을 absolutely이해하며, 학생처럼 이런 시기를 활동적인 어린아이와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greatest admiration” 최고로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눈물이 찔끔. 지질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라도 계속 공부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어린이의 언어 발달 이야기를 하면서 손녀 이야기를 가끔 하시는 할머니이신 교수님, 당신 시대에는 애 있는 여자가 공부하기 더 힘들었겠지만, 박사까지 공부해서 지금까지 학생을 가르치며 나 같은 학생에게 상냥한 말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
덧- “교수님 말씀을 다른 부모인 학생들과 공유해도 되나요?”라고 하니, 교수님 왈, “직접 공유는 좀 거시기하니 요약해서 공유하라.” <-이거 너무 과제 안내 같잖아... ㅋㅋ 근데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신 말씀인 듯한 게 더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