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굉장한 웜뱃
다음 주는 크리스마스잖아요. 한국도 크리스마스는 ‘커플 천국 솔로 지옥’으로 다들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한 열기가, 또는 둘만의 이벤트 열기가 대단하지만, 서양의 크리스마스 열기는 진짜로 정말 대단합니다.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서양에선 한국의 추석이나 음력설 같은 전통 명절이에요. 추석처럼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가족들이 모이죠. 회사원들은 보통 2주 정도 휴가를 씁니다. (호주 연차는 보통 4주)
또 크리스마스는 산타 클로스를 비롯한 각종 선물 마케팅이 엄청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12월 1일에 서울각 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이 불을 밝히는데, 호주에서는 10월이 되면 마트에 핼러윈 상품과 크 리스마스 상품이 함께 진열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절이니까, 칠복이에게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책을 읽어 주려고 도서관을 찾았는데요. 많은 책들이 이미 대여중이더라고요. 몇 주를 허탕 치다가 오늘! 드디어 한 권을 찾았습니다. 호주의 대표 그림책 작가 Mem Fox의 <Wombat Divine>! 바로 칠복이의 독서 일기의 첫 타자되겠습니다.
1946년 멜버른에서 태어난 Mem Fox는 교육자와 언론인이 많은 가족의 딸이었습니다. 1946년은 2차 대전이 막 끝나고, 잉그리드 버그만이 은막을 주름잡았던 해군요. 밈은 좀 특이한 성장과정을 겪는데요. 부모님이 호프재단에서 교사로 발령받아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로 떠나 (당시 로디지아-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각나네요.) 그곳에서 자랍니다. 처음에는 현지 흑인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에는 백인 아이들과 흑인 아이가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법이라 나중에 전학을 해야 했습니다. 흑인 억양으로 말하던 밈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아 화장실에서 혼자 울곤 했다고 합니다.
이후 영국에서 드라마를 공부하고 호주로 돌아와 삼십 대에 아동 문학을 공부한 밈은, 숙제로 그녀의 첫 동화책 <포썸 매직>을 쓰는데요. 이 책이 호주 역사상 최대 베스트셀러 동화책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5년간 아홉 번이나 퇴짜를 받았지요. 그러나 출간 후 현재까지 오백만 부 이상이 팔렸고, 잦은 재판으로 오리지널 인쇄 필름의 색이 바래 질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 책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중에 소개하겠습니다만, 이 책의 내용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가 아니라, 뭐 그런 비슷한 내용입니다. (<-아니다) 밈 폭스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영국 조지 왕자가 태어났을 때, 호주 정부가 보낸 공식 선물이 그의 2008년 작, <Ten Little Fingers and Ten Little Toes>라니, 밈은 명실상부 호주를 대표하는 동화 작가라 할 수 있겠죠?
현재 고희를 바라보는 그는 애들레이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요. 그는 동화 작가일 뿐 아니라 대중 연설가로도 활동했고요. (청중 수를 모두 합치면 2천2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의 읽기 쓰기 능력 교육에 관심이 많아, 자신의 열정은 교육이 첫째요, 동화 창작은 둘째라고 할 정도랍니다. 자, 그럼 작가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호주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웜뱃이라는, 곰과 두더지의 중간처럼 생긴 동물이고요.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토끼같이 생긴 빌비 등 여러 동물이 나옵니다. 약간의 종교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네요.
크리스마스의 성탄 연극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을 사랑하는 어린 웜뱃은 드디어 올해부터 배우에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오디션장으로 뛰어간 웜뱃!
그러나 모든 역할에서 거절당합니다. 성모 마리아를 하기엔 너무 무겁고, 동방 박사를 하기엔 너무 작고, 여관 주인을 하려니 너무 덜렁대고….
실망한 웜뱃.... 웜뱃은 과연 연극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때 빌비가 외칩니다.
“너를 위한 배역이 있어! 바로 아기 예수님이야!”
성탄 연극의 주인공, 아기 예수를 맡은 웜뱃은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냅니다. 심지어는 진짜 아기 예수처럼 잠에 빠지기도 하죠. 그리고 뒤풀이에 모인 동물들은 이번 연극이 여태까지 중 최고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고 웜뱃을 칭찬하죠. “You were divine, Wombat!”
Divine은 ‘신성한’이란 의미도 있지만, ‘아주 훌륭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이 정말 맛있을 때, “The food was divine!”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는 중의적인 의미로 쓰였다고 하겠습니다. 제목 Wombat Divine은 바로 여기서 나온 거겠죠?
웜뱃이 기쁨에 빛나네요.
귀엽고 익살스럽게 그려진 호주의 동물들이 아기 예수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Wombat Divine>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굳이 가난한 마리아와 요셉 부부를 택해 태어난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기 위해서였다고 하죠. 요즘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한참인데, 저는 교회는 다니지 않습니다만, 이 격언이 인상적이었어요. One man can change the world. Jesus did. (한 사람의 힘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예수님처럼.) 모두들, 힘냅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밈 폭스에 대한 정보는 memfox.com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