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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05. 2022

2007년 비행 괴담

"좌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몇 년 만에 한국 가는 비행기를 끊고 나니 갑자기 생각나는 비행 괴담. 이건 사실 괴담이 아니라 2007년에 실제로 겪은 일이다. 장기간 해외에 살며 여러 가지 재미있고 얼척없는 비행 이야기를 들었지만- 1. 경유지 1박을 해야 하는데 항공사에서 준 숙소 주소에 갔더니 허허벌판이었다거나 2. 연예인을 만났다거나 3. 운이 좋아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됐더니 준재벌 후계자 대우를 받았다거나 - 여태까지 들은 것 중에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넘어선 게 없기에 소개한다.


때는 2007년. 업무차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유해서 프랑크푸르트-인천 직항을 타려고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아마 KLM-대한항공이었던 것 같다. 직원이 나와서 다음 비행기 탈 지원자를 모집했다. 마침 부활절 며칠 전이었는지 비행기가 오버부킹 된 것이다. 2시간 후에 출발하는 북경행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다시 인천으로 가란다. 마침 한국 도착일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몇 시간 늦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 직원한테 물었다.


나: 그거 타면 뭐 줄 건데

직원: 공항 레스토랑 상품권이랑 자사 항공권 마일리지...

나: 안 함

직원: +현금 600유로

나: 콜


이렇게 나는 잊지 못할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대체 항공사는 당시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던 중국 S 항공.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경유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체크인을 다시 시킨 것. 왠진 잘 모르겠음... 승무원들이 영어를 잘 못했다... 어쨌든 대충 기내 수화물을 체크인하고 보딩패스를 받아 기내로 들어갔다. 좌석은 중간 어드메였는데 내 좌석을 찾다 보니 아니 이럴 수가! 좌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좌석이 21H다, 하면 G에서 좌석 열이 끝나버린 것... 보딩 패스에 존재하지 않는 좌석명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승무원을 부르자 승무원이 어느 다른 관계없는 다른 좌석으로 나를 인도했다... 뭐, 시외버스도 아니고? 그래도 좌석이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 앉았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하고... 집에 그대로 잘 갔으면 좋았겠지만!


비행기에 다시 불이 켜졌다. 띵, 하는 소리가 나면 화장실 가는 사람 등등 원래 좀 약간 어수선해지기 마련이긴 하지만,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바닥에 앉던 사람들을... 중국 가는 중국 항공사니까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갑자기 비행기 바닥에 앉기 시작하는 것이다... 읭!? 신발 벗은 사람도 있었고. 진짜예요. 하지만... 내 일 아니니까 난 그냥 잤다.


긴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북경에 도착. 북경에 비행기를 타고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공항이 얼마나 넓은지 착륙 후에 제자리 찾아가는 데만 한참 걸렸다. 드디어 내려서 인천행 한국 비행기로 환승만 하면 이 여행은 끝! 그러나 아직 많은 고난이 남아 있었으니...


공항에 환승 표지가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비행기를 탄 한국 분이 4분인가 더 계셨는데, 우리는 물어 물어 환승하는 곳까지 갔다... 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게 환승이 아니라 재 체크인이었던 것... 다시 물어봐도 다시 체크인을 하란다. 결국 대기소로 나왔다.


그곳은 실로 시장 바닥이었다.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써야 하는 서류가 4-5개나 됐는데 그것들은 수납함에서 빠져나와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와중에 발치에 이태리에서 산 와인을 내려놓고 서류를 쓰던 일행 중 한 사람은 와인을 소매치기당했다... 공항에서. 서류를 다 쓰고 짐 체크를 하는데, 새치기는 또 왜 이리 심한지... 심지어는 애가 튀어나가자 애를 잡는 척 앞으로 가서는 그 자리에 은근슬쩍 끼어든 부친도 있었는데, 뒤에 그룹 관광인 듯한 사람들이 마구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 아버지의 약간 머쓱하고 뻔뻔한 얼굴 표정이라니.


마침내 내 차례. 나는 면세점에서 구입한 먹물 파스타 소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면세점 봉투로 밀봉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걸 버리라고 하길래, 아니 너네가 체크인을 다시 시켜서 이렇게 된 거고 이건 면세점에서 산 거라... 어쩌고 얘길 하는데, 갑자기 직원이 어디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나타난 것은... 제복을 입은 공안! 공안이 따라오라고 해서 나는 휑덩그레 넓은 베이징 공항 어딘가로 그를 따라가며 속으로 후회를 했다. 공안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고... 아, 엄마한테 늦는다고 전화도 안 했는데...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 되는 건가!? 벌벌 벌... 그리고 공안이 나를 데려간 곳은..... 다행히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 그 직원에게 상황을 말했더니 허무할 정도로 쉽게 오케이, 비행기 타러 가라고 해서 나는 그 먹물 파스타 소스를 소중히 들고 인천행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아까 엄마한테 전화를 안 했단 생각이 들어서,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지 하는데, 세상에, 내 지갑에는 원과 유로뿐이었는데 공항에 이걸 환전해 주는 곳이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다행히 그곳엔 무슨 기업 연수를 오신 분들이 계셔서 로밍폰을 빌려서 전화를 드렸다. 도착이 다섯 시간 정도 늦어진다고. 엄마 반응- 어, 그래. 알아서 와. 원래 해외 나가는 건 처음 한 두 번이나 애틋하지, 그다음엔 부모님도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이렇게 나의 하나부터 열까지 파란만장했던 프랑크푸르트-북경 간 여행은 끝. 한국 비행기를 타고 간 북경-인천은 짧고 편하고 좋더군요..


그리고 그 후로 7년쯤 후, 북경 공항에 갔던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됐다더군요. 심지어 그녀는 핸드폰을 어디에 놓고 갔는데 누가 찾아주기까지 했다고. 정말?


이제 해외여행이 좀 자유로워졌으니 또 갈 일이 있겠죠. 확인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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