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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04. 2022

편의적 운동러의 잡식 운동기

몰랐어 내 몸이 이리 다채로운지

11월부터 시작한 일기처럼 갑자기 

조깅을 시작했다. 예쁜 조깅복, 브랜드 조깅화, 무선 이어폰, 아무것도 없이. 조깅이라기 보단 그냥, '뛰어서 집에 오기'. 차로 5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아이와 걸어갔다가 오는 길에 뛰어 오는 것이 정확히, 내가 한 '조깅'의 실체였다. 네 살 어린이와 걸으면 삼십 분 정도 걸리는 1.5 킬로미터가 오는 길엔 뛰다 걷다 해서 10분이 됐다. 그렇게 시간 날 때마다 뛰길 5년쯤. 내가 조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난 조깅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쓰잘데기 없는 운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달리기의 역사는 국민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 가려면 산길을 내려와 슈퍼가 있는 주택가를 지나, 큰길을 따라 두 세 정거장을 걸어야 했는데, 그때도 아침보다 잠을 선택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거의 매일 그 길의 일부를 뛰어서 등교했다. 고등학교 땐 1 킬로 정도를 뛰어 가파른 언덕 위의 학교를 올랐고, 취업 후에도 1킬로 정도 거리의 지하철로 뛰었다. 이민 후에도 가까운 기차역까지 1 킬로를 뛰었는데, 배차가 20분에 한 대 뿐이라 정말 열심히 뛰었다. 뛰는 것은 지각을 면하기 위한 몸부림이고, 다리는 교통수단인데, 굳이 조깅 같은 걸 왜 한단 말인가... 세상 재미없는 사람들 같으니. 물론 체육 시간에 억지로 했던 운동장 n바퀴 (꼭 점심시간 다음이라 나중엔 아랫배가 살살 당긴다), 체력장 오래 달리기 (완주의 기쁨... 따위 없었고 토했다), 백 미터 달리기 (22초) 도 좋지 않은 기억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뛰다 보면 숨이 차서, 헉헉거리다 보면 목구멍이 쓰라리고 기침이 나왔다. 혹시 나 호흡기가 약한가? 체육 전공 친구에게 상담하자 그럴 땐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으라고 조언해줬다. 그리고 코로 한 번 마시고, 입으로 두 번 뱉거나 하는 식으로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라고. 아니, 그런 방법이? 그냥 막 땅을 빨리 차면 되는 거 아니었어?


날카로운 각 종목의 기억: 1. 요가

호흡에 신경 쓰며 달리기 시작하자 한국에서 띄엄띄엄했던 요가가 생각났다. 처음 요가를 경험한 건 직장인 시절 살을 좀 빼 볼까 하고 등록했던 헬스장이었다. 20분 정도 러닝 머신을 뛰고, 이러저러 기구를 돈 다음, 시간 맞는 강좌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하던 시절. 강사님의 탄탄한 엉덩이와 날렵한 등에 감탄하며 태권도의 킥과 복싱의 펀치를 날리고, 남들 왼쪽으로 갈 때 오른쪽으로 가며 에어로빅을 하고, 그러다가 요가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요가는 동작을 할 때 호흡에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부릴 땐 땐 숨을 내쉬고 올라올 땐 숨을 마시라는 식으로. 처음엔 오, 숨을 뱉으면 몸에 힘이 빠지는군? 정도를 깨닫고 신기해했는데,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시간, 명상 시간에 신비 체험 비슷한 걸 했다. 명상의 일종인 요가 니드라 시간엔 먼저 똑바로 누워, 몸의 긴장을 의식적으로 푼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새끼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손등, 손바닥, 손목, 윗 팔, 아랫 팔, 어깨, 왼쪽 가슴... 이렇게 몸의 작은 부분들을 의식하고 긴장을 '내려놓는다'. 그러자 어느 순간 몸의 어떤 기운 같은 게 호흡에 따라 구름처럼 옅어지고 짙어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왔다. 아, 이게 혹시 기라는 걸까? 그 다음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기 시작했는데, 뭐랄까... 안정감과 쾌감이 합쳐진 듯한 느낌? 후에 어느 스님이 명상에서 오는 쾌감 때문에 마음 수련을 등한시하는 수도자가 있다 쓴 걸 읽고 나니, 아는 거사 님이 명상을 하면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온단 말씀을 하신 것도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거란 짐작이 들었다.


1-a. 핫요가

이민을 오고 나니 집 근처에 쉽게 갈 수 있는 요가원도 없고, 비싸기도 해서 잠시 운동 소강상태에 빠졌는데 마침 쿠폰 사이트에 뜬 핫 요가 광고를 보고 옆 동네까지 진출할 짬을 냈다. 핫 요가란 무엇인가. 바로 사우나처럼 뜨끈뜨끈한 곳에서 하는 요가다. 찜질방이 그리운 내게 뜨끈한 곳에서 몸을 쭉쭉 늘인다는 생각은 도가니탕만큼이나 쫄깃한 유혹이었다. 영어로 운동해 본 적이 없다고 긴장할 필욘 없었다. 하던 운동인 데다, 강사님을 따라 하면 되는 거니까... 땀을 쫙 빼며 한 시간여 수련을 하면 단전에 따땃한 열기가 충전되듯,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좋아 쿠폰 기간 동안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해외에서 핫 요가를 하시고자 하시는 분은 참고하시길. 밀폐된 좁은 공간에 모여 많은 사람이 땀을 흘리면 어쩔 수 없이... 수련장에 암내가 쩔게 된다... 요가의 힘으로 극뽁!


2. 수영

큰맘 먹고 끊은 새벽 수영, 3번 가고 중단했다. 첫째로 물이 너무 차가웠고, 둘째로 내가 들은 강좌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하는 훈련인지 뭔진 몰라도 기차놀이하듯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레인을 걸어서 왔다 갔다 했는데 내 뒤에 섰던 남자분 입 냄새가 지독 해서였다. 맨 어깨에 모르는 사람이 손 올리는 것도 싫었고 건성인 피부가 수영장 다니면서 당기는 것도 싫었다.


수영을 다시 하게 된 건 더운 나라에 살게 된 후. 집에 풀이 있고도 몇 년 후. 예의 조깅을 시작한 후다. 처음엔 집에 오는 최단 경로를 뛰다 걷다 뛰다 했는데, 그러다 집에 오기 전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그러다 더워서 수영을 했다. 그때까진 수영하려면 수영복을 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다시 샤워하는 게 번거로웠는데, 어차피 선크림은 발랐고, 샤워도 할 거였으니 훨씬 쉬워졌다. 애가 오면 오후 물놀이를 했다. 조심만 한다면, 물가에 애를 내놓는 것은 상당히 쉽게 어른의 기력을 아끼며 애의 기운을 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 살던 곳에선 오후 5시쯤 되면 그림자가 길어지고 과일 박쥐 무리가 물기 가득 하늘을 가죽 날개로 살살 저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야행성인 녀석들이 북쪽, 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작은 박쥐들은 날다람쥐처럼 귀엽다. 녀석들의 한가로운 비행을 보며 미지근한 물에 둥둥 떠 있다 보면 가끔 비가 지나가기도 하는데, 바로 눈높이에서 빗방울이 수면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수천 개의 가느다란 유리 막대가 매끄러운 수면에 부서지며 십자와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 빛으로 만든 만화경 한가운데서 높고 낮은 빗소리가 나를 에워싼다. 흙의 열기는 상승하고 꽃과 잎의 냄새는 아래로 밀려온다. 땅보다 낮은 곳의 풍경. 멀리서 날카로운 새소리가 낮은 하늘에 부딪혀 뭉툭한 메아리를 남긴다. 비 맞는 것도 싫어하던 내가 비 오는 날 수영을 하다니. 이렇게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되다니.


3. 재즈 댄스

시작이란 허를 찌르는 고난들이 매복한 구불구불한 길이다. 핫 요가엔 암내가, 수영엔 건성 피부와 단내가 있었다면, 재즈 댄스의 고난은 전신 거울이었다. 첫 시간엔 아무 옷이나 입고 오면 된다 하셔서 그냥 츄리닝을 입고 갔는데 다른 분들은 나이나 몸매 상관없이 딱 달라붙는 형광 스판덱스를 입고 계셨다. 다양한 몸들이 저마다의 리듬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 그리고 헬스도 체조도 아니고 골반과 어깨를 움직이는 댄스란 걸 쫓아 하려는 내 모습이라니...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너무나 민망했다.


그 오글거림을 견디게 해 준 건 음악이었다. 몸에 흥이 배어 있는 50대쯤의 선생님은 재즈 외에도 차차차, 라틴 음악, 마무리는 김현정의 '멍'에 맞춘 공중 자전거까지 한 시간 내내 여러 음악을 틀어 주셨다. (분노의 뱃살 태우기!) 운동과 댄스는 달랐다. 운동의 관심은 몸 그 자체라 움직임과 내 근육 내부의 느낌에 에너지를 집중하지만, 댄스의 관심은 몸을 통해 뭔가를 드러내는 데 있다. 몸이 음악을 탄다. 여러 가지 형태가, 표정과 에너지가 생겨난다. 연예인 같은 몸이 아니라도 관능적일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엔 나도 스판덱스를 구입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대놓고 바라볼 수 있게 된 후였다. 뭐가 그리 창피했던 걸까? 거울을 보는 것은 허영처럼 느껴졌다. 맨날 교복만 입고, 체리 색 챕스틱만 발라도 잔소리를 들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백화점 메이크업 시연대에 앉은 것처럼, 다들 내 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댄스 시간에 우린 그저 독수리의 눈으로 내 몸의 움직임을 감독할 뿐. 때로는 오 멋진데,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예~ 렛츠 겟 라우드! 여길 한 번 봐봐. 엄청 신나지!

 

4. 다시 조깅

아무리 준비가 필요 없는 운동이라도 조깅엔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조깅 루트... 그래서 이사를 하면 새 조깅 루트를 찾는 것이 일이다. 그냥 나가서 발가는 대로 뛰다 오면 안되나? 산책은 그래도 괜찮은데 조깅은 생각 없이 같은 곳을 뛰는 게 좋다. 아니면 머리가 자꾸 하기 싫단 핑계를 만든다. 또 나는 이왕이면 집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절약되니까. 그래서 나는 조깅 루트에 큰길이 많지 않은 게 좋다. 길 건너려고 기다리다 보면 흐름이 깨지기 때문에.


한 번은 이사한 곳 근처에 럭비 경기장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오는 것으로 루트를 정했는데, 좋은 점은 경기장 잔디가...! 잔디가...! 시멘트나 부드러운 콘크리트와는 차원이 다른, 겹겹고른 잔디가 펼쳐진 평지, 달리기에 맞춤한 그 탄력, 그 느낌은 가히... 발르가즘? 갓 다듬은 고소한 잔디의 냄새를 맡으며 달리는 그 기분. 조깅을 거의 경멸하던 내가 좋은 잔디를 딛는 즐거움이란 것을 알게 될지 누가 알았으랴. 그러나 이 루트의 단점은 오고 가는 길의 경사. 땀을 뻘뻘 흘리며 경사를 오르다 보면 걷고 싶다... 안 뛰고 싶다는 생각뿐. 그러다 진짜 그냥 걷고 그러는데, 중간쯤 지점에 가까워지면 다시 무릎을 높인다. 그곳엔 우아한 잔다르크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잔다르크 동상에 안정환 키스 퍼포먼스를 하는 게 이 조깅 루트의 하이라이트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길에 사람이 없으니 가능한 뻘짓이었지만 그녀가 지켜봐 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못뛰었을 거다.


그리고 또 이사, 또 새로운 루트 찾기. 새로 이사를 온 곳은 조깅과 피크닉을 위해 조성된 공원이 근처였는데, 이 조깅로는 개들이 줄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온 동네 강아지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텔레토비에 나올 듯한 작은 언덕에 올라가면 시내가 다 보이고, 유서 깊은 곳의 종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곳. 그러나... 돌아오는 길 도로 한복판에서 나는 세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땀이 나서 안경을 안 쓴 것이 원인이었는지, 신나서 뛰다가 무리해서 다리가 풀린 것인지, 어쨌든 길 한복판에 엎어져 무릎을 세게 깼고, 한동안 절뚝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통이 없다면, 내 안에 있는 널 어떻게 느낄 수 있겠어

설상가상 어깨 통증도 시작됐다. 전에 살던 곳보다 추워서인지, 나이 때문인지, 스트레스인지, 자기 전엔 멀쩡했던 왼쪽 팔이 일어나니 잘 올라가지 않았다. 침을 맞으러 갔더니 한의사님이 오십견이 일찍 온 것일 수도 있단다. 아니 전 겨우 사십인데요... 침을 몇 번 맞았는데도 어깨의 불편한 한 점이 사라지지 않아 비싼 돈을 내고 물리치료도 받으러 갔다. 물리 치료사는 아령을 권했다. 왼쪽 어깨가 오른쪽보다 약하니 근육을 키워 뼈를 보조하라고. 통증이 느껴져서 움직임을 피했다고 하니 근육이 약해서 다친 건데 오히려 안 움직이면 어떡하냐, 네 몸은 생각보다 강하니 더 험하게 다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가 생긴 곳은 회전근개라는데,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고, 움직임을 느끼며 2킬로의 아령을 위로, 아래로... 반복하다 보니 똑같은 움직임이라도 오른쪽과 왼쪽의 근육을 다르게 쓰고 있단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생각하니 수능 끝나고 따라 했던 이소라의 다이어트 비디오에서도 제일 싫어하고 힘들어했던 동작이 바로 허리 숙이고 팔을 등 뒤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이었다. 그때도 등이며 삼두에 근육이 없었을 테니 힘들었겠지. 그때 없던 근육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없어서 아프게 됐다는 생각을 하니... 아, 그때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과, 예전에 노인 병원에서 지겹게 들은 Use it or lose it (쓰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는) 란 말이 생각났다. 양말을 신는 것이나 씻는 것도 남에게 의존해야 했던 노인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불안해졌다. 아픔, 두려움은 운동의 큰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사 간 곳에서 조깅을 다시 시작한  그때 기다리고 있던 수술이 꽤 체력을 소모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였다. 사실은 아주 처음, 집까지 뛰어오기를 시작한 것도...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살다간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방구석 운동러와 인터넷 구루들

6개월 여 바깥출입이 2시간 이하로 제한됐던 락다운 기간, 하루 종일 갇혀 좁은 집을 아이와 빙빙 돌다 보니, 구금형이란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형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과 인터넷, 영화가 무제한이라 해도, 화면을 보며 뇌가 반은 물에 잠겨 있는 기분. 그런데 딱 3분 안에 얼굴이 뻘게지고 가슴이 뛰고 심장의 쫄깃함과 비겁해짐과 간절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3분 플랭크. 어떤 글이나 영화도 3분 안에 이렇게 사람을 동요시키기가 쉽지 않다. 멍하니 있는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놀고 있지만 더 놀고 싶은 느낌은 때로 신체 자극의 부족에서 오는 것 같다.

 

루틴으로 유튜브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강사님들을 접하며 깨달은 것은 같은 동작이라도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가를 표현하는 방법이 강사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맨날 구부정해서 바르게 선다는 감각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한 요가 강사님은 어깨와 귀가 멀어지게 하라고 하셨다. 어떤 분은 정수리에 실을 달아 천장에서 당기는 것처럼 머리를 들라고 하셨고, 다른 분은 배꼽을 위로 당기라고 하셨다. 스쿼트를 할 때는 무릎을 쓰지 말고 힙을 접는 느낌으로 하란 말도 도움이 됐다. 어깨 운동을 할 때 본 삼두 운동 비디오에서는 허리를 숙이고 근육을 짜 주는 느낌으로 팔을 뒤로 올리라고 하셨는데, 허리를 숙일 때는 힙을 접는 느낌으로, 어깨는 귀와 멀어지게 하자 자세가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몸이란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게, 꼭 마음 같다. 같은 동작이라도 여러 강사님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 동작의 에센스가 무엇인지 아, 하는 느낌표가 올 때가 있다. 마치 선생님 설명이 이해가 안 되던 문제가 친구한테 들었을 때 이해가 되는 것처럼. 또는 좋은 시구를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사람의 몸의 느낌을 내 몸으로도 느낀다 생각하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말과 몸과 마음의 이어짐을 가장 크게 느낀 건 요가 니드라다. 한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땐 불면증과 약한 공황 증상이 오기도 했는데, 그때 요가 니드라가 많은 도움이 됐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요가 니드라는 의식적으로 몸의 긴장을 푸는 활동인데, 몸의 긴장을 푸는데 집중하면 마음의 긴장도 풀어진다. 그 상태에서 안내자가 인도하는 대로, 장작을 탁탁 태우며 타오르는 불꽃이라던가 보송한 봄의 새싹 같은 걸 떠올리고 있으면 마치 자각몽 같은 마음의 떨림이 느껴다. 그런 단순하고 집중된 감각이 과잉된 마음을 진정시킨다.


몰랐어 내 몸이 이리 다채로운지 

그렇게 나는 한 가지 운동을 소나무처럼 하는 아마추어 선수급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과 기분에 따라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있다. 정말 시간이 없는데 몸이 쑤시면 '땅끄 부부'의 3분 스트레칭 (뚜둑뚜둑), 조금 더 활기찬 기분이면 새천년 국민체조 ('국민' 들어간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국민체조는 체육계의 나무아미타불이 아닌가... 음악과 동작의 조화가 정말 최고다),  마음이 산란하고 힘들 때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됐던 '요가소년',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며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싶을 땐 '빅씨스' (40대 언니의 멋진 몸매를 마구 동경하면서). 답답할 땐 그냥 뜬금없는 시간에 뛰쳐나가 달리기도 하고. 마치 영화나 책을 골라 보듯,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할 수 있는 활동의 레퍼토리가 많아진 게 좋다. 최근엔 암벽 등반을 했는데, 어릴 때처럼 어딘가에 힘껏 매달리는 감각, 그리고 롤러코스터처럼 쭉 낙하하는 감각이 만족스러워서 계속하고 싶은 활동이다. 악력과 팔, 등 근육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즐거움의 구분이 세세해지는 것 역시 깊이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동은 힘들다. 특히 시작이 힘들다. 조깅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한 날, 근력 안 하다가 다시 한 날, 온몸의 근육이 격렬히 항의한다. 하기 전도 힘들다. 운동해야 할 것 같은데 하기 싫고... 비가 오거나 춥고 바쁘고...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나는 그 이후의 근육통은 좀 즐기는 편이다. 뭐랄까, 영어 단어를 하나 새로 외운다고 뇌의 한 세포가 쑤시진 않지만, 근육을 단련하면 그 부분이 확실히 아프다. 공부를 하면 내가 얼마나 나아진 건지 눈에 잘 안 보이는데, 매일 유연성 운동을 하면 일주일 만에도 확실히 달라져 있다. 고통만큼 성숙해진단 말, 믿진 않지만 어떤 고통은 나를 생생하게 해 준다. 손끝까지 핏줄이 고동치는 느낌, 대근육의 뭉근한 고통 같은 것들. 하면 된다는 정직함이 적용되는 취미와 즐거움의 세계.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즐거움을 얻으려, 나는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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