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탠덤 스카이다이빙 체험한 이야기
봄이 끝난 게 아니라 봄학기가 끝났을 뿐인데, West lafayette의 날씨는 어느새 최고기온 34도를 기록하는 쨍한 여름 날씨가 되어버렸다. 햇빛도 쨍하고 날씨도 다 좋은데, 막상 뭔가를 하려고 하니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엄두가 안나는 그런 날씨다. 그러다가 문득 랩에 앉아서 창문 밖 하늘을 보는데, 구름 한 점 없고 미세먼지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이곳의 날씨를 이대로 보내기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어떻게 하면 이 더위 속에서도 저 청명한 하늘을 만끽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수없이 되풀이하다가 엉뚱하게도 생각난 것은 바로 스카이다이빙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스스로가 어떠한 알고리즘에 의해 이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조차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의식의 흐름에 의존한 결과이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와는 별개로,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지갑을 열게 했던 몇 가지 이유를 뽑자면,
1.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
2. 한국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의 강하
3. 미세먼지 없는 너무나도 완벽한 날씨
4. 학생 할인 프로모션
이 정도가 되겠다. 혹시라도 결정장애가 있거나 구실이 필요하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운 좋게도 West lafayette에서 40분만 운전하면 Frankfort 인근에 위치한 Skydive Indianapolis 라는 이름의 스카이다이빙을 서비스하는 곳에 갈 수가 있었는데, Frankfort municipal airport 옆에 사무실을 하나 차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212달러에 이용이 가능하며, 여기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위해서는 170달러를 추가하면 된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촬영을 위해서는 내 등 뒤에 붙는 사람 외에도 촬영 담당자가 같이 뛰어내려야 하기 때문에, 내 스카이다이빙을 위해 전문가 2명이 뛰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이유 있는 가격 책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해볼 수가 없는 경험이라면 그 대가가 아무리 클지라도 지불하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에 한치의 후회도 없는 지출이었다.
운전해서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옛날에 공수훈련을 받아본 기억이 문득 떠올랐는데, 그때는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던 것 같다(그냥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조차 없었지) 그런데 그때는 CH-47 치누크 헬리콥터를 타고 지상 600m 고도에서 강하한 것이 전부였지만, 이번에 해볼 스카이다이빙은 13000피트, 즉 4000m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지의 영역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니 점원이 나를 안전영상 시청실로 데려간다. 사실 시작 전에도 책임한계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사측에서 만든 계약서에 한 20번 정도 내 이니셜을 작성했는데, 여기서 안전영상까지 시청시키니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이 정도까지 수를 쓰는 거야??'(근데 위험한 건 사실이잖소)
체크인이 끝나고 앉아서 기다리자 잠시 후에 Martie라는 이름의 멕시코인이 인사를 건네며 나에게 하네스를 입혀주었다. 2014년 여름 이후 8년 만에 차보는 하네스가 사지를 조이는 뻣뻣한 느낌이 PTSD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시설 내부에서는 스카이다이빙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고, 다들 다리를 멀쩡히 보존하기 위해 열심히 착지자세를 연습하고 있었다. Martie는 나에게 간단한 행동요령을 알려주었다. 뛸 때 고개를 뒤로 젖혀야 된다, 내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어깨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한다 등. 하지만 결론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거 다 까먹어도 돼 친구, 그저 카메라를 보고 웃는 것, 그것만 잘하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영상 촬영을 옵션으로 넣었던지라, 비행기 탑승 전부터 인터뷰를 하며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가 도착했고, 내가 속한 그룹의 차례가 되었다.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프로펠러를 회전시키고 있는 터보프롭 비행기 안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앉으니 비행기 안이 꽉 찼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뛰어내릴 줄 알았는데, 4000m의 고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구름을 훨씬 지나고 나서, 어느새 쌀쌀함이 느껴질 지경이 될 무렵 조종사가 비행기를 좌우로 살짝 흔들어서 신호를 보내니 다들 일제히 강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Martie는 내 하네스와 자신의 하네스를 연결하는 카라비너의 체결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고 우리는 어느새 비행기 문 앞에 도달했다. 구글맵에서나 보던 위성사진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One, two, Three와 함께 우린 비행기를 떠났다.
정말 모든 게 기대한 것 그 이상이었다. 낙하속도는 정말로 빨랐고, 공기가 귀를 스치는 소리가 요란해서 바로 뒤에서 하는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카메라맨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었고, 나는 열심히 쳐다보려 노력했지만 고글은 벗겨질 것 같았고, 고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얼굴은 이미 눈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순식간에 생기는 압력차로 인해 고막에 약간의 고통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빠르게 공기를 가르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40초 정도가 지났을까? 주 낙하산이 펼쳐졌고, 카메라맨은 우리를 떠나 먼저 Drop zone으로 이동했다. Martie는 나에게 Riser(한국에서는 공수훈련 때 이걸 "라이쟈"라고 부른다)를 쥐어주면서 낙하산 조종을 체험시켜주었다. 이 Riser를 당기면 당긴 쪽의 낙하산이 수축하면서 부분적인 공기저항을 줄임과 동시에 그쪽 방향으로의 회전을 유도할 수 있다. 재밌었던 건 단순히 회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강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라이자를 더 많이 당길수록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짜릿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더 당길수록 더 재밌어"라는 말을 듣고 최대한으로 당겨보았고, 급 선회하면서 생기는 내장이 쏠리는 느낌은 거의 멀미를 일으킬 정도였다.
어느새 Drop zone이 어딘지 보이기 시작했고, 다시 Martie에게 Riser를 넘겨준 후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카메라맨은 Dropzone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비디오와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수고해준 Martie와 짧은 인사를 건네며 인증샷을 남겼다.
스카이다이빙은 번지점프와 함께 많은 이들의 공통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에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못할 이유가 생기기 전에 꼭 해보길 바란다. 날씨마저 완벽하다면, 더 이상의 구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즐거운 경험과 멋진 사진을 선사해준 Skydive Indianapolis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날씨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Skydive Indianapolis: https://www.skydiveindianapolis.com/en/wel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