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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꼬마 Jul 23. 2021

돼지엄마, 그 이름의 서글픔

돌아보니 난 이미 "학"부모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를 찾는단다. 

-엄마, 내 옷 어딨어? 엄마, 밥은 언제 먹어요? 엄마, 엄마, 나 이거 다 했어요...

그런데 아빠를 찾을 때가 있으니, 그건 바로

-아빠, 엄마 어딨어?

란다. 


하하하.


지금 고 1인 아들이 있다.

진짜 위의 유머글처럼 엄마인 나에게 별걸 다 묻는다.

-엄마, 반찬은 뭐예요? 엄마, 나 오늘 농구슛 몇 개 쐈어~ 엄마, 나 똥이 안 나와(으윽~), 엄마, 나 이거 이렇게 했는데 괜찮아?.. 끝이 없다.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나빠도,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필요할 땐 엄마를 찾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그래도 난 꽤 괜찮은 엄마인가 보다 라고 스스로 으쓱하곤 했었다. 그리고 쭈욱 그런 엄마의 모습일 거라 착. 각. 했다.


아이의 첫 방학 몇 주 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방학 기간 동안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학원을 가야 하는지 등등등. 듣도 보도 못했던 학원명 들을 이야기하면서 학원별 비교를 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나 때문에 아이가 뒤쳐지면 어떡하지. 큰일 났네..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학원 설명회를 다녀왔고, 생전 처음 학부모 총회라는 곳도 참석하였다.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엄마 역할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가 인 그룹에 들어갈 거라고 여겨졌다.

그렇게 듣게 된 여러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전달해주었다.

-**아, 이거 이거 하는 게 좋단다. 안 그러면 2학기 때..(주절주절)

-**아, 이 학원은 저 학원보다 이런 게 좋고, 저런 게 별로고..(또 주절주절)


아이한테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어째 아이의 리액션이 영 시원치 않다. 어라,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가 아닌데..? 왜 이리 엄마 말에 기분이 별로인 듯 하지? 내가 뭐 잘못했나? 난 그저 알게 된 여러 가지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뒤처지지 않게 해주려고 한 건데?


-엄마, 나 아직 기말고사도 안 끝났어. 그런데 벌써부터 2학기 이야기하면 어쩌라고.


헉..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대체 어디에 관심이 있었던 거야?


모든 것은 나의 불안이었다. 못할까 봐, 뒤쳐질까 봐, 그래서 슬퍼질까 봐 아이를 믿지 못한 내 불안이 오히려 아이의 안위보다는 아이의 학업에만 눈을 뜨게 한 것이었다.


언젠가 공익광고에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었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하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난 당장 2학기의 학업만을 보라 하였고, 뒤처지지 말고 앞서가라 하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꿈을 이루게 될 거라 강요한.. 그런 학부모였던 것이다. 난 사려 깊고 진짜 괜찮은 엄마일 줄 알았는데, 결국 나도 매우 이기적인 그런 개인일 뿐이었다.


일명 돼지엄마라는 용어가 있다.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 어미 돼지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듯 학원가에서 다른 엄마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말한다. :: 출처 - 네이버 사전]

돼지엄마의 옆에 있는 새끼돼지가 나였던 것이다. 그 작은 젖이라도 빨아볼까 하고 쫓아다닌 그런 새끼돼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어땠는지, 원했던 고등학교 생활이었는지.

아이가 대답한다.

-응, 정말 좋았어요. 난 너무 즐거워. 뭐 성적은 잘 안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동아리도 재밌고 운동하는 것도 너무 좋고.


하.. 하.. 하.. 고등학생이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괜찮다며 다른 활동을 재밌게 하니까 즐겁다고 하다니..^^a


그래도 좋았다. 아이가 행복하다 하니까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이의 웃는 모습이 주름진 내 욕심을 펴주는 듯했다.

그래, 아이를 믿자. 이미 너무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 내 욕심을, 내 불안을 투사하진 말자.


Rogers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듯이,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그런 가능성을 꺾어버리고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환경이 아이들에게 강요를 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누구나 크게 될(크게 되는 방향이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지라도) 재목일 수 있는데, 환경이 그걸 꺾어버리는 것이라고..


믿고 지켜봐 주면서 기다리기. 그게 내가 할 역할이다.


언제까지 지금의 이 결심이 유효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미 흔들린 적이 있는 코끼리 귀의 팔랑귀 엄마이기에 또 갈대처럼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애써야겠다. 돼지엄마가 아닌 아이 엄마가 되자고, 아이를 지켜봐 주자고 말이다.


휘리릭, 돼지는 구워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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