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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꼬마 Aug 07. 2021

작지만 위대한 아기들, 그들은 참나무의 씨앗이다.

2005년 3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분주해졌다. 침대 위에서 끙끙대고 있던 내 주위를 순식간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둘러싸더니 웅성대기 시작한다.

"보호자분 어딨어요.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해요!! 지금 바로요!"

오호, 신기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병실에 이 많은 의료진들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순식간에 이렇게 많이 올 수도 있구나..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덜거덕 덜거덕. 침대 채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몇 분 뒤, 수술실을 미친 듯이 가로지르는 크나큰 아기 울음.


그랬다. 난 밤새 산통을 겪고 있었고, 아이가 어서 세상에 나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중에, 아이 목에 탯줄이 감겨 산소공급이 중단되었고 긴급으로 아이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 뒤, 담당의 선생님이 병실로 찾아오셨다. 내 안부를 묻고, 아이 안부를 이야기해주셨다.


"잠시 뇌에 산소 공급이 잘 안되긴 했지만 괜찮을 거 같아요. 한 이틀 정도 중환자실에서 보다가 일반 신생아실로 옮길 수 있을 것 같군요"

-저, 선생님.. 아이는요.. 괜찮은가요.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되었다면..

"바로 꺼냈기 때문에 괜찮아요. 산모분, 그런데 아이가 효자예요. 아이가 정말 잘 버텼어요. 그래도 살겠다고 잘 버텨준 덕분이에요. 보통 엄마들, 자기들 배만 아파서 낳은 줄 아는데 아니에요. 아이도 죽을 힘을 다해서 나오는 거예요. 엄마 이상으로 아이도 힘들고 두렵거든요. 아이가 강해서 잘 버틴 거니까 앞으로 아이한테 고마워하세요"


몰랐다. 아이가 죽을 힘을 다해 나오는지, 그렇게 힘들게 애쓰는지, 그저 엄마들이 힘주어 밀어내면 퐁~하고 나오는 줄로만 알았을 뿐.

아이는 쉽게 세상에 나와서 모험하고 즐기면서 주는 젖 먹고 그저 놀고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한마디로, 무식했던 거였다, 나란 사람은.


난 직업상 많은 학생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상담센터 문을 두드린다.

가정/학업/연인 문제 등.. 비슷한 듯 다른, 그 아픔의 깊이도 다르게 그렇게 찾아온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공통분모가 바로 "관계"라는 것이다. 그것도 결국은 부모님과의 관계.


"엄만 '네가 힘든 게 뭐가 있냐, 엄마 때는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그렇게 지냈는데, 넌 공부만 하면 되는거 뭐가 힘드냐'고"

"아빤 내가 나약해 빠졌데요. 내가 나약하고 할 일 없이 건들거리니까 우울한 거라고. 핑계 대는 거라고"

"부모님이 나 때문에 많이 싸우세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탓이라는 등. 결국 난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였나요"


끝없는 자기 비하와 자책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린다.

그들도 참 많이 애써왔는데,

그들도 참 많이 노력해왔는데,

그들도 참 많이 인정받고 싶었었는데..


2005년 3월,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학생들한테 종종 건네곤 한다.


"부모님이 키워주신 거 너무 감사하지. 배 아파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나도 그만큼 노력해온 거 있잖아. 두려운 이 세상에 나오려고 목숨 거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나오자마자 숨도 잘 안 쉬어지는데 얻어맞고 숨쉬기도 했고, 먹는 건 또 어떻고. 엄마가 젖 몸살 나면서까지 나를 먹여주신 거 알지만, 나도, 나 역시도 온 힘을 다해서 젖을 빤 거거든. 나도 힘들고, 나도 애쓴 게 있어. 그렇게 노력해온 내 모습을 같이 좀 봐주면 좋겠어."


엄마, 아빠들은 육아하며 힘든 걸 말로 토로하니 위안도 받고 도움도 받지만, 아기들은 어떤가.

그들은 우는 거 말곤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도 온갖 힘을 다해 살아낸다, 이 삶을.


엄마, 아빠들은 힘들면 쉬고 누군가에게 육아를 맡기기도 하지만, 아기들은 어떤가.

그들은 끼니때마다 온 힘으로 먹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나를 돌봐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


돌이켜보니 우리 아이도 그랬다.

아이는 태어나서 꽤 긴 시간 동안 심한 아토피에 시달렸다. 아이가 간지러워 자꾸 긁어 피가나다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이를 안고 잠들곤 했던 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안고자면 아이는 그나마 덜 긁고, 그나마 더 잠을 자곤 했으니까..

지금은 깨끗해진 아이를 보며 주위에서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신다. "네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니.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부터 입히는 것까지 온 신경이 다 너한테 가있었어~"


그런데 아이는 어땠을까. 사실 제일 괴로운 건 아이가 아니었을까. 간지럽고 아프고, 피가 날 때까지 긁어도 시원찮고,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죄다 고름이 나올 정도였으니..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태어났을 때 중환자실에서의 고통도, 어렸을 때 아토피의 아픔도, 커가면서의 크고 작은 상처들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 왔다. 그리고 지금 해맑고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다.


아기들은 위대하다.

태어나려 애쓰고,

목을 가누려고 애쓰고,

기어가 보려고 애쓰고,

걸으려고 애쓰고,

혼자 먹어보려고 애쓰고,

그리고.. 다 해낸다.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 잘 해낸다.

EBS 다큐멘터리, 아기 성장 보고서 5부작 중 2부인 "아기는 과학자로 태어난다"편을 시청하다 보면 아기들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능력은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다.


뛰어난 아기들, 애쓰는 아기들, 그리고 해내는 아기들, 그들은 경이롭다.

그들의 노력을 다독여주자.

그들은 참나무로 크려고 하는 똘망똘망 도토리인 것이다.

(이 멋진 말을 내가 했다면 참 좋겠는데, 심리학자 Rogers아저씨가 선점해버리셨다. 하하! 난 그저 흉내내기^^)


토닥토닥, 너무 잘하고 있어! 아기들, 넌 지금도 충분히 근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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