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겨울 여기저기 떨어진 낙엽이 바람을 따라 거리를 메우던 날,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대구 미술관, 전남 도립미술관의 기증 컬렉션 중 60점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영원한 유산"으로 명명하여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도립 미술관을 찾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알리고 위로하며 일본의 반인권성을 알리기 위한 전시회와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전위 예술가인 고 백남준 선생님의 TV로 만든 퍼포먼스를 관람하고 나서 가끔 굵직한 전시회가 열릴 때면미술관을 다녀가곤 하였는데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한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을 연다는 소식을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날씨가 쌀쌀하여 차를 가지고 미술관을 찾은 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였다. 전시회가 열리는 3층에 이르자 사람들이 드문드문 작품을 관람 중이었고 함께 온듯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가끔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나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작가의 혼이 서려있는 작품을 보며 고요함을 깨트리기 싫어 조용히 하나씩 응시하며 둘러보기로 하였다.
김기창 <투우>
입구에서 들어서니 김기창 화백의 투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소를 많이 보고 자라서인지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채색을 하지 않고 종이에 먹만으로 강한 생명력의 소를 그릴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였다.
오지호 <항구풍경>
박대성 <향원정 설경>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장욱진 <원두막 풍경, 가족, 마을>
천천히 걷다 보니 눈에 익은 이름과 그림이 들어왔다. 최종태 작가님이 쓴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에서그가 주로 그린 가족, 나무, 새는 집을 떠나 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서 자연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서울대 교수가 되었지만 6년 만에 사직하였는데 생업은 부인에게 맡기고 집을 떠나 그림을 그렸고휴식을 할 때면 술로 채웠으며 가족이 그리울 때면 먼 길을 걸어서 갔다고 하였다. 밝고 개구쟁이 같은 그의 추상화가 나는 좋았다.
이중섭 <가족>
'소'의 작가로 유명한 이중섭은 평안남도에서 평원군에서 태어나 일본의 제국미술학교와 도쿄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을 피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나서 1956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홀로 제주도, 통영, 대구, 서울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과의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재회의 소망을 예술로 승화하여 '한국의 고흐'라고 불리게 되었지만역사의 소용돌이속에 일생을 가난과 고통으로 보내야 했다.
김중현 <농악>
박수근 <농악>
박수근 <나무 아래, 절구질 하는 여인>
마석 박수근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밀레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 한 그는 절구질하는 여인, 노인과 소녀, 모자 등 서민의 삶을 진실하고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고 세상을 뜬 후에야 가장 사랑받았으며 그림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가 되었는데 박완서선생님은 젊은 시절 미군 PX에서 일할 당시에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화백님을 실제로 만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보고 '나목'에 묘사하기도 하였다.
천경자 <킨샤사 공항>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한 천경자 화백은 꽃과 여인으로 많은 그림을 표현하였다. 박경리 선생님의 "천경자를 노래함"에서 '이십 년 넘게 못 만나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았고 대담한 의상에서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끼며 나른해 보이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가 없는 아찔하고 감각적이다'라고 표현하였는데 "킨샤사 공항"의 세 여인을 보면서 화가의 세련된 화풍과 자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유영국<산>
유영국 <작품>
권순우<순아,말>
문학진 <달, 산, 여인>
전시회를 보고 나서 1층 카페에 앉아 차가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다. 작품을 선별함에 있어서 탁월한 추진력과 집요함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수집하여 후세대가 그 열매를 누릴 수 있게 되어 행복하였는데이 회장님의 예리하신 안목이 세삼 돋보였다.
"과거에 우리가 무엇 무엇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느니, 서양보다 몇 백 년이나 앞섰다느니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바로 오늘 우리 문화의 색깔이 있는가, 세계에 내세울만한 우리의 문화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화적 특성이 강한 나라의 기업은 든든한 부모를 가진 아이와 같다. 기업 활동이 세계화할수록 오히려 문화적 차이와 색깔은 점점 더 중요한 차별화 요소화 된다."는 이건희 회장님의 에세이에서 처럼 한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데는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남편은 내게 소프라노 조수미 콘서트 초대장을 내밀었다. 힘든 치료를 견디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다. 그날 우리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공연장에 들어갔고 이후에도 가끔 남편은 유명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였는데 지방에서도 뮤지컬과 전시회 같은 문화생활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