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by 박 혜리


오래전에 상영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1989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이덕화, 최수지, 이미연, 김보성 등 그 당시에 인기 있는 배우들의 조합인 데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묵직하여 보게 되었는데 고등학생 2학년 생인 부잣집 딸인 은주가 주인공이다. 이쁜 데다 공부 또한 잘하여 전교생을 통틀어 학교 성적이 여섯 번째인 주인공은 성적에 집착하는 부모님으로 인하여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같은 반 친구인 봉구의 순수한 열정에 끌려 집을 나와 함께 지내며 전에 알지 못했던 생소한 삶의 기쁨을 알게 되는데 집을 떠난 지 얼마 후에 다시 돌아온 그녀는 성적이 한 단계 떨어져 7등을 하게 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엄마는 문밖을 지키게 되고 방문 앞을 지키는 어머니로 인하여 화장실을 가지 못한 채 은주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고 만다.




신도시에 살던 나는 몇 년 후에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이사를 오기 전 집에 손을 볼 곳이 있어서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는데 공사를 하는 동안 소음이 발생하고 자재를 옮기는 등 약간의 불편을 주게 된 점을 공지하기 위하여 공사기간과 시공업체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나는 엘리베이터벽에 붙였다.


공사가 끝나자 그동안 입주민에게 약간의 불편을 준 점과 주위사람도 알 겸 해서 방앗간에 떡을 주문하여 돌렸다. 우리가 사는 동 아파트 두 라인을 돌았는데 그중의 한 사람인 예전에 내가 언니라고 불렀던 그녀는 낮에 집을 비웠는지 아무도 없어 나는 저녁에 다시 방문하여 떡을 전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다정한 얼굴로 감 한 봉지를 건네기 위하여 우리 집 문을 노크하였다.


이사를 오고 나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우리는 차츰 친해졌다. 서울사람인 그녀는 여기로 내려온 배경이며 남편의 직업 그리고 시댁에서 일어 난 일을 털어놓아 나중에 나는 그 집 대부분의 일을 알게 되었는데 예쁜 드레스를 입히며 공주처럼 키운 어머니와 서울의 유명 여고를 나온 시어머니를 둔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왔으며 남편은 연구소로 출근을 하였다.


내가 이사를 오고 나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집 천장에 물 자국이 생기며 그녀의 집에 누수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나는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8층에 사는 그녀가 바로 윗집 대신 우리 집으로 찾아와 내게 일주일정도 화장실을 사용마라고 하였는데 '우리 집 보다 언니 바로 위층부터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떠냐'며 나는 차분히 말하였다.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걱정에 그렇게 말하였지만 다섯 층이나 위인 우리 집에 찾아온 그녀가 나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하늘이 맑은 어느 날, 나는 외출을 하고 돌아온 그녀와 아파트 현관 앞 입구애서 다시 마주쳤다. 그날 그녀의 밝지 못한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하였는데 놀이터 앞 의자에 앉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니, 명절에 고향에 가시겠네요. 언제 출발하세요?"


하고 나는 물었다.


"이번에 서울은 안 갈 거야. 남편과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


"그럼 이번에도 시어머니께서 음식을 준비하시고 추도식도 혼자 지내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잠깐 그녀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여든을 넘기신 그녀의 시어머니는 해마다 김장을 해서 그녀의 집에 택배로 부쳤다. 부부가 명절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갈 때면 교회의 권사인 시어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을 향해 주방의 물건들을 꺼내며 닦아서 새로 정리하라고 말하였는데 가족이 먹을 음식과 돌아가신 조상님을 위한 추도식 준비는 시어머니 혼자 다하시고 그녀는 딸들과 함께 그 시간에 목욕탕을 갔다.


남편이 학회 참석 차 출국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분주해 보였다. 아직 두 딸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유럽으로 가는 한 달의 연수기간을 그녀는 남편과 동행한다 하였다. 그리고 한 달 후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곳에 지내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귀국길 공항에서 신혼여행에서 싸우고 돌아온 부부처럼 데면데면하였는데 남편이 워크숍을 가든 어디를 가든 남편을 따라 그녀는 늘 함께 다녔다.


햇살이 따뜻한 늦가을의 어느 날, 산책을 나가던 길에 나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녀와 함께 걸었다.


"언니 나는 그 스님이 한 말이 모두 옳다 생각해요."


"그렇구나. 나는 교회에 다니지만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애는 학교 잘 다니고 있죠?"


"응, 잘 다니고 있어. 적응을 잘하는 것 같아."


대학에 다니는 큰 딸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를 쉰 적이 있었고 작은 딸은 대안학교에 다녔다. 막내딸이 주말에 다니러 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면 그녀는 차에 태워서 바래다주었는데 항간에 우수한 유전자는 대물림된다는 설을 일축하듯 두 딸은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왔다.


두 딸이 성장을 하여 집을 떠나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신혼으로 둘 아가고 싶다고 남자에게 말하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 교회에 나가며 자주 집을 비운 그녀가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남편을 두고 왜 저녁상을 내가 준비해야 하느나며 항의했듯이 남자는 아내에게 더 이상 제 몸이 아니라 말하였다. 하루는 직장 동료들 앞에서 전도를 하여 남편이 제발 그만하라 하였다는데 늘 얼굴에 그늘이 진 남자가 네모난 가방을 어깨에 메고 퇴근을 하면 우리 집 남편은 지금껏 만나 본 사람 중에 제일 재미없는 얼굴이라 말하였다.




어머니를 뵈러 시골에 갈 때마다 운전석 너머로 마주친 동창이 있었다. 교직에 계신 아버지를 둔 친구는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발표를 하는 수업시간에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말하여 나는 유식하다 생각하였는데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시로 유학을 간 친구는 목표로 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자 상심을 하였다. 아버지의 반대로 재수를 수 없게 된 친구는 할 수 없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는데 졸업 후 고시 공부를 하다 시험에 낙방하여 여러 번 고배를 마신 후에 회사에 들어갔다. 동창들과 오래전 모임을 하였을 때 친구는 횡설수설 세상 탓을 하며 우울해하였는데 가끔 고향에 갈 때마다 도로공사를 하는 곳에 삽을 들고 있던 친구는 직장을 옮겨 다니며 적응을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으며 오래도록 학교를 다녔지만 만날 친구가 없어 주말에 교회에 나가는 일 말고 모임하나 없다는 남자와 시어머니 혼자 사는 시댁을 거의 가지 않는 그녀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시어머니를 고등교육을 받은 당신이 자청한 일이라며 님의 일 대하듯이 말하였다. 남편 포함 연구소 직원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불행한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다 말한 그녀는 가까운 사람들을 '카테고리가 맞는 바운더리 속 사람들'이라 하며 부부가 함께 대인관계가 별로 없었는데 네임벨류 있는 학원을 보내지 않아 자녀들이 학별이 낮은 데에는 일부러 그녀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가끔 나는 생각하였다.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친구가 평범한 꿈을 꾸었더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필요할 때는 학벌을 내세우고 그렇지 않을 때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중성과 고학력 중산층의 민낯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삶의 지혜가 별개이듯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후 나는 그 집을 벗어나 이사를 나왔다. 어는 날 백화점에 볼 일이 있어 외출한 날, 일을 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아래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걸음을 재며 앞서 걸어가던 그녀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늘 그렇듯 재미없다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남자는 성큼성큼 여자를 따라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