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갓 스무 살이 지났을 무렵에 방영했던
mbc 드라마 "아들과 딸" 이 덮어두고자 하였던 불쾌한 기억을 소환하며 나로 하여금 요즘 자주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에 60%라는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던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귀남, 이후남으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남존여비를 보여 주었다.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는 생일잔치를 열어주었지만 딸은 주방에서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돕게 하였다.
전교 1등을 할 수 있을 만큼 후남은 공부를 잘하는 재원이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는 '너 때문에 귀남이가 떨어졌다''며 아들이 공부 못한 이유를 딸에게 화풀이하여 폭언을 하여 후남은 결국 집을 나와 서울로 상경하여 갖은 고생을 하게 되었다.
몰락한 집안의 7대 독자로 어르신들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끼며 귀남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여러 번 고배를 마시고 은행원이 되었는데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딸에게 모질게 대하였음을 시간이 흐른 나중에야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는 참회를 하였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시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잘 표현하였기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많은 부분 공감을 하였다.
후남이 처럼 우리 집도 모든 것이 남동생 위주였다.
식사를 할 때면 남동생은 아버지와 겸상하며 매일 흰쌀밥을 먹었다. 대신에 여동생과 나는 그 옆의 방바닥에서 보리쌀이 섞인 밥을 어머니와 함께 먹었다.
남동생이 잠을 자고 있는 머리 위로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엄마는 손바닥으로 내 종아리를 후려치며 귀남이 엄마처럼 동생의 앞길을 막는다고 크게 호통을 치셨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것 따위 믿지 않는다는 듯 엄마가 없을 때면 보란 듯이 휙 하고 지나다녔다,
6.25 동란을 겪고 보릿고개를 겪으며 마을에는 있는 집 없는 집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딸은 중학교를 마치면 타지로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 하였다.
더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였지만 일부분이었고 의식 있고 깨어있는 몇 어른들만이 딸을 대학교에 보내며 동등한 대우를 해주었다.
딸은 살림 밑천을 삼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집을 가기 전에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하였고 동생들 공부를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검은 쌀밥 먹을 때 흰쌀밥 먹으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머리 좋은 동생은 늘 눈알을 굴리며 한눈을 딴 데 팔았다.
결혼하여 박 씨 집안에서 호적이 분리된 지도 오래되었건만 무슨 억한 심정인지 무슨 일만 생기면 앞뒤 잘라먹고 오만불손한 태도로 큰소리를 내며 내게 호적을 파라고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수십 번 의절하고 싶은 것을 연로한 어른이 계서 참고 있을 뿐인데 가진 것도 없는 데다 건강마저 잃으면 안 된다 노래 불렀지만 내 말을 듣지 않다 오래전부터 병원을 들락거리는 엄마를 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는다.
다른 집들은 나중에 보면 효도하는 자식은 아들이라 말하는데 집안 일으키는 일에 골몰하다 정작 내 건강을 챙기지 못하여 나는 후회막급이다.
마치 특정집단이 감성팔이에 호소하여 권력을 잡 듯 툭하면 엄마 핑계를 대는 동생이 병원비 낼 때마다 무례한 말투로 전화하는 것을 보며 옛날 그 잘난 아들은 어디로 가고 나는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