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어르신

by 박 혜리


그제 여동생의 시모님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혼인 전까지 함께 살던 막내아들이 여동생과 결혼을 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자 사돈 어르신은 동생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하였다는데 차마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드셨을까 마음 여린 그분은 그때부터 줄곧 신경안정제를 드셨다.


입안이 마르고 입맛이 없고 때로는 토하기까지 하며 차츰 기억력이 감퇴되는 하얀 알약.


십 년 전쯤 바깥사돈이 세상을 등졌을 때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사돈어르신은 그사이에 볼이 파이고 피부는 검었으며 초점 잃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약을 끊기 전까지의 내 기억처럼 그렇게 사돈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고 말년은 치매요양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내 어머니와 동갑인 사돈 어르신을 처음 본 건 혼인하기 전 동생의 상견례 자리에서였다.


먼저 결혼을 한 나는 남편과 함께 한 음식점에서 사돈이 될 분들을 뵈었는데 연세에 비하여 피부가 탱글하고 고우셨던 사돈어르신은 3남 2녀 중 맏이인 바깥사돈이 부모님을 모실 수 있냐는 제안을 수락하여 혼인을 하였다.


일본에서 결혼한 부인과 사별하여 재혼한 아버지의 여식으로 형제라고는 이복형제뿐인 사돈 어르신은 결혼 후 병든 시부모님과 아직 미혼인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돌보았다.


매 끼니마다 식사를 준비하고 편찮으신 시부모님 봉양하며 두 아들을 두었는데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면 당신이 죽을 것 같아서 제 발로 병원을 찾아 세 번째 아이는 유산을 하였다.


시누이 두 명과 시동생들이 성인이 되어 분가할 때까지 데리고 살았는데 학비를 대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업을 시작한 막내 시동생은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다 큰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때까지 담보로 빌려준 집의 명의를 돌려주지 않아 머리를 조아리고 겨우 돌려받았다 하였다.


시집을 간 동생이 아이를 낳자 내게 조카를 키워줄 것을 부탁하였을 때 미운 일곱 살을 앞둔 큰아이와 뱃속의 아이까지 난 키워 줄 자신이 없어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 하였다.


두 손자를 이미 키운 사돈어르신은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시기에 다시 손녀 돌보기와 마주하였는데 누가 키운 공은 없다 하였던가. 손녀를 초등학교 입학시기까지 키워 놓았더니 자주 아이를 먹이지 않는다며 며느리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시어머니를 비난하며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막내아들이 결혼할 때 사돈어르신은 남편 몰래 기천만원을 손에 쥐어주며 살림에 보태라 하였고 매해 명절 때마다 동생손에 흰 봉투를 들려 어머니께 전하라 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출가한 시누이와 시동생을 맞이하며 치킨까지 뚝딱 만들어 내셨다는 손끝이 야무진 사돈어르신은 꽃 같은 젊은 시절은 시댁에 헌신하였고 편하게 보낼 노년은 손녀를 돌보는데 희생하였는데 약 먹을 시간을 잊는다는 경증의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은 살던 집에서 맞이하길 희망한다.


아프더라도 익숙한 곳이 어쩌면 제일 편한 곳일 텐데 처음 발병할 때부터 연고도 없는 낯선 시골의 요양병원에 보내졌고 도시의 다른 병원으로 옮기길 두 차례, 마지막 병원이 돌아가실 때까지 머무른 곳인데 처음 요양병원으로 보내질 때 당신은 자신이 어디로 보내질지 이미 알고 계셨든 듯 동생네에게 "너희들이 나를 어디로 보낼지 다 안다"라며 말씀하신 사돈어르신의 명복을 빈다.


사돈어르신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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