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by 박 혜리


어제 날짜 글을 재수정하였습니다.


남편의 다섯 형제자매 중 셋째인 그녀는 가족 중 유일한 여성이면서 내게는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이다.


그녀는 나이가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손위의 형님인데 삼 년 전에 시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녀에게 고생하셨다며 두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 작년 봄 삼월이 지난 사월초순의 어느 날에 그녀가 대장암이 발병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임신을 하면서 배가 불러오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 은행원인 남편을 둔 그녀는 우리 집으로 돈을 빌려달라며 틈틈이 전화를 하였다.


나는 그때 보증금 일천오백만원에 월세 십만원을 내며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염치가 없는 시누이는 자기 남편이 명퇴를 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면서 가게를 알아보려 한다며 계속 전화를 하였다.


남편이 나중에 말하여 안 사실은 결혼 전 총각 때 시누이집에 몇 개월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하였다.


그 집을 나온 후에 남편은 감사의 뜻으로 회사에서 나오는 사은품이나 자전거등을 조카에게 모두 가져다주었다 한다.


신혼집을 월세에서 시작하여 월급을 모아 반전세로 그리고 은행에 빚을 내어 몇 년 만에 첫 집을 사게 되었을 때 나는 남편 명의로 된 집이 한채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누이는 집을 마련하면서 남편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는데 스무 살 갓 넘어 명의를 빌려준 남편은 자기 이름을 빌려 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 남편은 그제야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하면서 시누이에게 누나 앞으로 집 명의를 이전해 가라는 전화를 하였다.


그러겠다는 시누이에게서는 소식이 없었고 얼마 후에 은행으로부터 남편의 월급을 차압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는 IMF시절을 보낸 지 오래되지 않은 때로 신상 부적격자나 남편처럼 은행에서 월급에 차압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는 놔둘 수 없어 예금 든 것을 모두 해지하여 이름뿐인 시누이가 사는 집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었다.


우리 집을 사기 위하여 저축한 것을 시누이의 빚을 갚는데 써버려 나는 모은 예금만큼 대출을 더 내어 은행에 빚만 남게 되었다.


그때 나는 주말마다 친정에 가서 농사를 거들어 푸성귀를 얻어오며 몇 년 동안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시누이가 낸 대출금을 모두 갚아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빚을 대신 갚아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그녀는 또 돈이 필요하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더는 해 줄 수 없다며 거절을 하자 그녀는 전화를 걸어 " 내가 너희 돈 떼먹고 도망갈 줄 아느냐." 하며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가게를 하겠다는 시누이는 얼마 후에 남편과 살기 싫다며 가출을 하였고 그녀의 전 남편은 시부모가 편찮으신 상황에서 집을 나간 나쁜 여자라며 실종신고를 하여 이혼을 하게 되었다.


돈을 떼먹지 않겠다는 그녀는 내게 진 빚을 갚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가정을 깬 그녀는 재혼을 절대 하지 않겠다 하였지만 몇 년 후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자를 만나 다시 재혼을 하였다.


시누이는 재혼 후에도 친정에 간섭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였을 때 이미 칠십을 맞이하신 연로한 시부모님을 위하여 형제들이 다달이 용돈을 드리기로 하였는데 모두 중간에 잘라먹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약속을 지킨 이는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녀는 내게 조금 유해졌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시누이는 신혼 초부터 우리 집에 전화를 하기 시작하여 일이 생길 때마다 전화를 하였다.


그녀가 대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우리는 병문안을 다녀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시누이를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용서란 상대방보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그녀의 지난 과거를 용서하면서 나쁜 짓을 하는 것 자체가 형벌이라던 목사님 말씀처럼 이제 몸마저 아픈 그녀가 무리 없이 건강을 잘 회복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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