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by 박 혜리


콩의 원산지와 로스팅 후 싱글오리진의 가벼움이나 무게감 있는 블렌딩의 산미보다


깊은 우물처럼 고독한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단발머리 곱게 빗어 귀뒤로 넘긴

고등학생이었다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커피 한잔


검은 먹물에 하얀 물방울 같은 거품을

한 입 가득 머금으면


달큼한 배를 삼킨

나른한 몸이 시계처럼 깨어났다


여유가 있을 때는 누룽지처럼 다정하지만

마음이 급할 때는 변심한 연인처럼 차갑게

돌아서는


맵고 쓰고 달고 짠 인생과 닮은 너를

처음으로 마셨을 땐 비밀을 가진 어른 같았는데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유혹하는 너는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