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by 박 혜리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머리에 하얀 서리가 앉은 노인


보통키에 몸이 마른 편인 그는

내 자리에 앉으시라 권하여도

손을 내저으며 한사코 사양을 하였다


대롱대롱 어둠을 매단 지하철은

서걱서걱하였는데


꽉 다문 입술 곧은 어깨

검버섯이 핀 부드러운 손등


금방 내릴 것 같은 그는

한참을 지나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그

기개가 소나무처럼 청청한데


한때는 빛이 반짝반짝 나는 구두를 신고

전장을 누볐을 것이다


드라큘라처럼 긴 손가락

부지런히 내 앞을 오르내리자


목적지에 도착한 노인은

무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