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머리에 하얀 서리가 앉은 노인
보통키에 몸이 마른 편인 그는
내 자리에 앉으시라 권하여도
손을 내저으며 한사코 사양을 하였다
대롱대롱 어둠을 매단 지하철은
서걱서걱하였는데
꽉 다문 입술 곧은 어깨
검버섯이 핀 부드러운 손등
금방 내릴 것 같은 그는
한참을 지나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그
기개가 소나무처럼 청청한데
한때는 빛이 반짝반짝 나는 구두를 신고
전장을 누볐을 것이다
드라큘라처럼 긴 손가락
부지런히 내 앞을 오르내리자
목적지에 도착한 그 노인은
무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