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엄마는 여든두 살을 맞으셨다. 첫 수술 이후 허리병이 도지자 일부러 몸관리를 안 한 사람처럼 엄마는 드러누울 기세였는데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입버릇처럼 엄마는 환갑에 이르자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고향에 갈 때마다 엄마가 드실 밑반찬을 해서 가거나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드렸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는 엄마는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내가 질병을 얻게 되어 한쪽 팔이 부자연스러운 나는 장을 보며 음식을 만들고 엄마는 채소를 다듬으며 함께 살자 제안하였지만 엄마는 고향으로 내려가셨는데 어릴 때 구멍 난 양말을 티 안 나게 깁던 바느질 솜씨가 좋은 엄마는 환갑은 청춘이라는 말을 잊은 듯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엄마 연세 마흔 후반이 되셨을 때 직장을 다니며 여동생과 자취 중인 나는 다리를 저는 것이 신경이 쓰여 수술할 것을 말씀드렸다. 수술을 하게 되면 허리를 쓰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는 우리의 결정을 못 미더워하신 엄마는 수술을 미루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 년 후에 걷기가 더 불편해진 엄마를 보면서 나는 수소문을 하여 척추 전문 병원을 찾아다녔다. 대학병원 여러 곳을 알아본 결과 수술을 하면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침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기 발령 중인 여동생이 병원에 있기로 하고 차를 여러 번 갈아타며 나는 한 손에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음식을 해서 날랐는데 엄마가 아픈데 없이 편안한 노년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술을 시켜드렸다.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밭고랑에 엎드리고 있는 엄마를 찾아 나는 밭으로 갔다. 집을 떠나기 전, 고개 넘어 빨래터에 갈 때면 나는 엄마와 동행을 하였는데 학교에 다녀와서 밭일을 하거나 소를 먹이고 풀을 베는 생활로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오비 (하얀 천에 점이 박힌 것처럼 횡렬로 이어진 것을 틀에 앉아서 실로 홀치는 일)를 하고 계신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생각을 하는 것보다 행동이 앞선 결과로 큰 결실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엄마는 부지런하였는데 아이를 키우며 가진 재산을 잃고 서울에서 내려온 동생들 뒷바라지로 정신이 없는 내게 부모는 열 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살지만 자식은 부모 한 명을 모시지 않는다는 말로 신경질을 내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이라는 양가의 힘을 지녔으며 고정시키는 동시에 변화시킨다고 말하였는데 마치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반복된 행위를 거듭한 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승리를 거두듯이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반복하는 것은 어제 만난 친구를 다시 재회하는 일처럼 제자리를 두 번 지나가지 않는 행위로써 기쁨의 원천이 된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본 황혼의 나이에 이른 노인들의 삶을 조명하여 만든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젊은 날의 열정을 지나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병을 얻거나 치매에 걸렸지만 성당에서 봉사를 하거나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재미 삼아 찍으며 저승 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해야 할 밭일은 해야 한다는 내 할머니'라는 작가 완이의 내레이션처럼 시한부인생인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붙일 때마다 의향을 물어보면 엄마는 말끝마다 나는 모르겠다 하였다. 더 이상 키울 자식도 무엇을 해달라는 사람도 없는 가장 자유로운 때에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음식 만들기 같은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였다면 엄마의 노년이 훨씬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수술과 약물의 후유증으로 어깨가 아프고 몸의 에너지마저 약해졌지만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고 머리를 쓰지 않으면 녹이 쓴다는 말처럼 지금까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어왔듯이 나는 즐거운 설렘과도 같은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며 자유롭게 배우고 도전하면서 길 위에 사는 삶을 나는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엄마를 위하여 십 년여 전부터 집으로 사람을 불러 엄마는 소원대로 해놓은 음식만 챙겨 드시면서 시간만 죽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