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한 자락

by 박 혜리


동창들이 많이 온다는 총무의 말에 모일 장소에 나를 픽업하여 배웅한 남편이 멀어지며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차장 밖에 펼쳐진 하늘은 청명하였고 나무는 알록달록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달려간 여수에서 잔을 부딪히며 나는 친구들과 함께 회를 먹었는데 유람선을 타고 오동도를 돌 때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지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바라보는 내게 등산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든 친구는 그것을 내밀며 'ㅇㅇ이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네 얘기를 여기저기 많이 하고 다니더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음으로 대답하였는데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향일암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유하는 침전물처럼 불현듯 삼십 년 전 그 일이 떠올랐다.



동생들을 보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간 날,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은 듯 마을은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리를 뻗기도 비좁은 집에 도착하였을 때 엄마는 내게 뒷집에 있는 K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말씀하셨다.


해가지는 저녁 무렵 땅거미가 마을에 내려앉으면 산그림자가 마을을 감쌌는데 마을 뒤편 포도밭이 있는 과수원을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햇볕 아래 푸르스름한 복숭아가 빨갛게 여물고 포도가 와인보다 붉게 익어갈 때면 흰 저고리 한복을 입고 머리마저 하얀 K의 할머니가 평상에서 과수원을 지키고 계셨는데 철조망 너머로 달콤한 향기가 마을로 퍼지면 아이들은 가끔 서리를 하곤 하였다. 하루는 동네언니들의 꼬드김에 철조망에 난 구멍을 통과하여 나는 망을 보았는데 그날 하얀 비닐에 가려진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포도를 따다가 낫을 들고 쫓아오는 할머니를 피하여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 과수원 주인인 머리가 반쯤 벗어진 K의 아버지는 밭에 파종한 작물이 수확기에 이르기 전에 미리 값을 지불하고 수확기에 이르면 다시 되파는 사업을 하셨는데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며 자식 넷을 둔 대가족의 장남인 그는 어느 해에 미리 치른 값보다 폭락한 가격으로 그동안 번 것으로 사들인 논밭과 큰 과수원을 다 처분하고도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마을 회관 앞 가마니를 덮은 남자 옆에서 그의 젊은 아내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우리 집 맞은편 마구간 뒤의 대나무가 울창한 마당이 좁은 집 안주인인 K의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위하여 살림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버스로 삼십 분 거리의 식당으로 일을 나가셨다. 그녀와 나는 가끔 편지로 안부를 물었는데 내 결혼식에도 와준 그녀와 전화를 할 때면 단짝 친구의 가족사부터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병원에 다닐 때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놔둘 수 없어 나는 시골에 계신 엄마를 오시게 하였다. 표준치료가 끝나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신 어머니께 옆집아주머니는 몇 달 동안 집을 비운 근황을 물어보았다 하였다.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하루는 내게 전화를 하셨는데 'ㅇㅇ와 네가 동갑인데 아파서 어쩌냐'는 전화를 받은 얼마 후에 나는 K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몸은 괜찮으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괜찮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온 어느 날 내게 전화하여 병기가 몇 기냐며 물어보는 사람, 콘서트를 다녀온다고 말한 후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해하던 친구 등 몇몇 달라진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는 K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 L.


동창회에 참석하였을 때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L은 잘 지내느냐고.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그녀들에게 정 궁금하면 직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물어보라며 나는 모른다 대답하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점심을 먹고 나면 집 앞에서 학교에 가자며 부르던 친구. 담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때는 사소한 얘기를 주고받던 막역한 사이였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장난을 걸어오는 오빠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는데 생일이 늦은 나와 일 년 차이로 언니처럼 따른 그녀에게 친구의 부탁으로 편지를 전할 때는 또래보다 성숙한 그녀가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백화점 식품코너 앞 카트에 태운 아이를 혼내는 중인 L과 마주친 후 우리는 백화점 또는 상가에서 만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직장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K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들불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한동안 마을을 뒤덮었다. 친구와 다툰 후 화를 삭이지 못해서, 자식이 속을 썩여서, 먼저 떠난 아내가 그리워서 등의 이유로.


부치지 못하는 봉인된 편지지처럼 L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이는데 언젠가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진 L을 만난다면 그동안 잘 지냈냐며 나는 따뜻한 두 손을 잡아보고 싶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산 K의 어머니는 너희들은 장남에게 시집가지 마라 딸들에게 말하였다 하였다. 막내에게 시집을 간 K는 몇 년 전 큰 형님이 병으로 돌아가시고 둘째 형님네는 이혼을 하여 제사를 모시며 맏이 노릇을 한다 하였다. 운전을 하지 않으면서 먼 거리에도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하는 K를 보며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녀가 오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를 나는 바라는 중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집안의 가장이 되어 안 하던 일을 하면서 허리수술을 하고 얼마 전 병을 얻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