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박 혜리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세상이 어둠에 잠기면 고양이가 집을 나가 듯 나는 살며시 산책을 나간다. 오늘도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호숫가 한편에는 갈대가 바람결에 잎새를 나부끼며 춤을 추고 봉오리를 맺은 연꽃이 꽃을 피우려는 듯 둥실둥실 물 위에 떠 있었다. 집 뒤에 있는 나의 산책길에 어두운 밤이 찾아들면 단풍잎처럼 빨갛고 노란 잉어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헤엄을 치고 다른 한쪽으로는 몇 쌍의 오리 떼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물 위를 걷는 모습도 보이는데 기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면 가로등불이 주위를 밝힌다. 걷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이웃도 보이고 더위를 식히려는 커플과 운동을 하며 뛰어다니는 사람 등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공원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작고 이쁜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


어제 아침에 눈을 일찍 나는 저 멀리에 연기를 피운 듯 자욱한 안개가 산허리를 감은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잠을 깨우기 위하여 차 한잔을 마시려는 내 귀에 새벽의 정적을 깨는 매미소리로 사방은 시끄러웠는데 아파트 앞마당의 정원수와 뒷동산에서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매미들이 목청껏 합창을 하는 중이었다. 사랑을 구애하는 수컷 매미의 우렁찬 목소리에 암컷 매미는 울음으로 화답하며 심포니를 이룬 듯한데 매미는 사랑을 하여 암 매미가 나무껍질 안에 산란을 하면 사람처럼 열 달이 지나야 여름에 부화하여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유충 상태인 매미는 나무 수액을 먹으며 열다섯 번의 탈피를 하는데 육 년의 시간이 지나 칠 년째 되는 해에 땅 위로 올라와 입었던 껍질을 벗고 우화 하며 비로소 매미가 된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도 성충이 되어 한 달을 못 사는 매미는 빨리 짝을 만나서 사랑을 한 후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이기에 이토록 애절하게 연인을 부르는 것인데 매미의 안타까운 일생을 생각하니 나는 그 울음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산책은 하루 일과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과정이자 나를 비우기 위한 의식과도 같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영어강의를 듣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자아가 이탈하듯 무심한 마음으로 걷기만 하는데 중복을 지나 말복이 다가오니 자연의 섭리처럼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이제 제법 시원하기까지 하다. 여름이 왔음을 미리 알리며 우렁차게 울던 매미소리는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잠한데 계절 밖에 살지 못하는 여름의 매미가 열심히 우는 까닭을 생각하며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논과 밭에서 알곡이 익어가는 들판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면 매미소리는 점점 옅어질 것이기에 끝을 스치는 바람은 가을이 머지않음을 알리는 듯하다.


서울을 비롯한 윗 지방은 많이 내린 비로 물난리가 나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많은 비구름이 몰려오지 않아 나뭇잎을 적시는 가랑비만이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는데 더 이상 인명 피해가 없기 바라며 오늘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는 다시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