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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핀 Aug 13. 2020

시간은 열다섯에서 정지할 거야

 


 나는 변덕이 심하다. 제2의 요조가 되겠다며 30만 원을 주고 호기롭게 구매한 기타는 한 달 만에 산울림을 좋아하는 친구의 손에 넘겼고, 3일간 밤을 지새우며 보던 <베이츠 모텔>은 시즌 2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런 내가 10년간 변함없이 지켜온 습관이 있다. 힘든 순간에는 'Antifreeze', 늦은 새벽잠에 들지 못할 때는 'Everything'을 반복 재생하는 것.


  

 내 검정치마 애호는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어른들의 고개를 젓게 한 또래 친구들과 달리 당시의 나는 늘 반대의 이유로 절망했다. 외모도, 공부도, 좋아하는 글쓰기도 모두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한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내 열등감은 C의 등장과 함께 극대화되었다.


 C 아무런 노력 없이도 온갖 시선을  끌어모으는 아이였다. 세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시니컬했지만 친절한 나보다 인기가 많았고, 창밖을 바라보다 툭툭  내려간   백일장에서 1등을 했다. 내가 폭설이 오는 겨울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기 위해 챙긴 장갑을 챙긴 스스로의 재치에 뿌듯해하고 있을 , C 스키를 타고 등교를  전교생의 시선을 모으며 나를 허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눈에 띄게 특별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나는 도움을 청하는 심정으로 C에게 다가갔다. 처음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 날 C가 내게 내밀었던 이어폰에서는 검정치마의 '좋아해줘'가 흘러나왔다. 오락실에서나 들어본 듯한 알 수 없는 기계음, 좋아하지 않으면 큰일 날 듯이 다그쳐대는 가사, 방금 잠에서 깬 듯 나른한 목소리. 이론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아야 할 요소들은 알 수 없는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정의 내릴 틈도 없이 빠져들어 버렸다.

 

 그 날 나는 집에 오자마자 검정치마의 1집, 2집 수록곡들을 MP3에 다운로드하여 매일 반복해서 들었다. 검정치마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내가 특별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느덧 검정치마의 음악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3집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오지 않았지만 잊을만할 때쯤 올라오는 그의 블로그 포스트와 싱글 음원들이 내 꾸준한 애호를 가능하게 했다.

 


 해가 지날수록 더 넓어지는 세상 안에서 나는 이리저리 넘어지고 부딪혔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모두가 기다리던 3집이 나왔을 때, '평범함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가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그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더라도 나는 그의 음악을 듣는, 적어도 7.5만 명(그의 인스타 팔로워 수다)의 리스너 중 한명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검정치마의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스스로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누구보다도 대중이 좋아할 음악들을 잘 알고 있지만, 틀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냉소를 보내려 심판대에 기꺼이 오르는 대담함. 대중도, 팬들도, 성공도 안중에도 없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만 만들어내는(심지어 3집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4집부터 내겠다는) 조휴일의 자유로움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아마 이 이유들은 내가 앞으로의 10년도 조휴일의 음악을 좋아할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플레이리스트 한 켠 만은 계속해서 열다섯에서 정지할 것이다. 서른다섯의 나는 아이리버를 쓰던 열다섯의 나와도, 아이폰을 쓰는 나와도 같을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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