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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핀 Aug 10. 2020

불시착; 우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버텨내는 법

<마카담스토리>(2015)

 

 나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강렬한 자극도, 한국영화와 같은 감칠맛도 없지만 오래 음미할수록 스며드는 매력이 있다. 한 입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디저트와 달리,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한 풍미가 느껴지는 바게트처럼 말이다. 무심하고 지루한 듯하지만 깊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프랑스 영화를 보다 보면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이런 나의 프랑스 영화 애호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이자벨 위페르다.


<레이스 짜는 여인>의 이자벨 위페르


 한 잡지에서 이자벨 위페르를 ‘여자의 역사’로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데뷔이래 48년간 쉴 새 없이 연기하며 약 110여 개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녀가 연기해온 역할들을 모으면 말 그대로 ‘프랑스 여성의 역사’가 펼쳐진다. 작은 체구와 강인한 눈빛, 냉담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얼굴은 그녀가 사랑에 빠진 소녀부터 노동자 계급의 여성, 살인마까지 다양한 여성의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게 만들어왔다.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는 그녀를 프랑스 영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했다. 40여 년간 흔들림 없이 단단한 연기를 보여온 그녀는 프랑스 영화 밖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는다. 미국 영화에 출연할 때도 할리우드 스타가 되겠다는 욕심이나, 화제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도 없이 <엘르>나 <마담 사이코> 등 자신의 결에 맞는 영화를 찾아 온전히 소화하는 데에 집중한다. 40여 년간 흔들림 없이 단단한 중심을 가진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배우’ 역할로 출연한 ‘마카담 스토리’를 놓칠 수 없었다.



 내가 <마카담 스토리>를 만나게 된 이유는 온전히 이자벨 위페르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영화에서 ‘전성기가 지나간 옛날 배우’라는 자신의 위치를 부정하며 전성기 때의 자신에 얽매여있다가 이웃집 소년 샬리와 함께 현재의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는 배우 잔 메이어를 연기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마치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고백하듯 담담하고 솔직하다. 잔 메이어로서의 이자벨 위페르와 <마카담 스토리>가 가진 ‘인간관계’에 대한 따뜻한 통찰은 이 영화를 나의 인생작으로 만들었다.


프랑스 피카소 단지의 낡은 아파트, 마카담

 

 영화는 ‘마카담 아파트’라는 파리의 허름한 공공주택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는 모두 그들이 사는 아파트처럼 조금은 부족하고, 위태로운 이들이 산다. 그들은 어떤 만남을 통해 삶의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 가지 옴니버스로 풀어낸다.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수리비를 내지 않은 스테른 코비츠. 연대와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무관심하며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는 다리를 다치게 되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밤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자판기를 이용한다. 그러다 환자들이 깨어있지 않은 새벽에 외롭게 일하는 나이트 간호사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간호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진작가라고 거짓말한다. 하지만 그녀를 찍기로 한 날, 셔터를 누르며 자신의 정체와 외로움을 이실직고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엄마와 함께 살지만 늘 외로운 소년 샬리. 그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옆집에 한 중년 여성 잔 메이어(이자벨 위페르)가 새로 이사를 온다. 그녀는 왕년에 유명한 여배우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들을 만날 수 없는 그녀는 엄마의 빈자리가 익숙한 샬리와 자신이 젊은 시절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를 보며 더욱 가까워진다. (여기서 메타 영화로 이자벨 위페르에게 아카데미 신인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레이스 뜨는 여자>가 사용된다. 덕분에 실제로 이자벨 위페르가 배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녀는 다시 연극무대에 서려고 하지만 젊은 시절 맡았던 역할은 더 이상 자신에게 열려 있지 않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하지만 샬리는 그녀가 맡을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제안하고, 다시 연기에 대한 열정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 매켄지는 아파트에 사는 하미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미다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둘은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짧은 시간 동안 가족과 같이 생활한다. 쿠스쿠스를 먹으며 우주와 삶에 대해 나누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은 두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된다.



 세 에피소드는 맞닿는 부분 없이 평행하게 진행된다. 심지어 주인공들이 모두 한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과 단 한 번도 마주치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이는 세 에피소드에 여러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딘가로부터 ‘추락’한다. 우주에서, 명예와 동경의 대상에서, 그리고 휠체어로부터. 하지만 그들이 불시착하는 곳은 모두 ‘아파트’이라는 하나의 공간이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공간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현대사회의 단절된 소통을 상징하는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마카담 스토리>는 아파트를 연대와 치유의 장소로 사용한다. 아파트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수많은 이웃과 일부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공간을 조금씩 허락한다. 처음에는 샬리와의 인사조차 불편해하던 잔 메이어는 샬리를 집으로 초대해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본다. 언어와 국적이 달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던 하미다와 매켄지는 함께 식탁에서 하미다가 살던 알제리의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를 먹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또, 스테른 코비츠와 자신의 휴식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불편해하던 간호사는 그곳에서 그가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게 모두는 서로의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무언가를 공유함으로써 관계를 발전시켜나간다. 이 과정은 아파트를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차가운 아스팔트 벽으로 받아들이던 관객들이 아파트를 통해 따뜻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영화 속 모든 추락과 인연의 시작은 정밀하게 짜인 인과관계없이, 우연함으로 시작된다. 특히 나사의 우주비행사가 아파트 옥상으로 떨어진다는 다소 코미디적인 설정은 우연성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추락한 자신을 일으킬 구원자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지만 우연히 서로의 구원자가 될 인연을 만나는 세 에피소드의 스토리는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자기 계발로 자신을 더욱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좋은 인간관계는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라 믿는 요즘의 통념을 뒤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따르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우연히 만난 상대와 서로의 상처를 고백하고 가만히 맞물리는 과정을 통해 구원과도 같은 관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세 관계는 여전히 하나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관계에서 느끼는 인물들의 감정도 모두 조금씩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는, 세 관계의 본질이 모두 ‘사랑’으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는 내내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주인공들은 각자 그 소리를 아이의 울음소리, 유령의 소리, 호랑이 소리로 추론한다. 하지만 이 소리는 모두 철문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였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랑은 관계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모성애든, 우정이든,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떠한 미묘한 형태이든 결국엔 모두 사랑인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그저 우연에서 시작될 뿐이고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메마른 우리의 행성에도 누군가 불시착할 것이라고. 그러니 당신은 노력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고, 그를 일으킬 수 있는 구원자도 될 수 있다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겨울의 아스팔트 벽처럼 차갑고,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만연한 요즘. 이렇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또 있을까. 사람에게 상처 받거나, 외로움의 이유가 스스로에게 있을 것이라는 자책이 들어 잠들기 힘든 새벽마다 이 영화를 보자. 그러면 내일은 지난 새벽에서 건너온 우연한 사랑에 대한 희망으로 기분 좋게 아파트 현관을 나설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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