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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Jan 08. 2022

브런치 작가가 되다.

나를 글 쓰게 만드는 사람


어릴 땐 그맘때 쓰지 않는 어른스러운 문장만 구사하면 멋있는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온갖 어려운 말들로 세상을 통달한 듯한 어쭙잖은 글들만 써대며 '나 이렇게 글 잘 쓴다' 과시하고 싶어 했다. 그때의 내 글은 글이 아니라 그저 과시용 허세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었는지 알게 되면서부턴 다듬는 게 아니라 아예 손을 놔버렸다. 드라마 인간실격의 전도연 님처럼 무엇도 되지 못한 내가, 자만만 가득했던 나의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 후론 부끄러워서, 자신이 없어서 손도 대지 않았고 읽지도 않았다.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 맘 때쯤 나는 결혼과 출산을 했다. 나 스스로에겐 좋은 핑곗거리였다.

그렇게 10년을 읽지도, 쓰지도 않던 내가 이제와 무엇이 되어보리란 기대로 신청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전히 나의 글을 기대하고 있는 20년 된 친구의 제안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그 맘 때의 또래들이 구사하지 않는 어른스러운 단어와 문장 몇 개로 어설프게 쓴 글을 읽어주었던 내 친구는 여전히 내가 멋진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의 제안이 처음도 아니었다. 큰 아이를 키우던 7년 전에도, 작은 아이를 낳은 직후인 4년 전에도 친구는 늘 나에게 다시 글쓰기를 제안하며 온갖 공모전들을 찍어 보내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육아를 핑계로,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그래도 친구는 지칠 줄을 몰랐다.

1년 전, 내게 다시 같은 제안을 했을 때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멋지게 보이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고, 이제 와선 도저히 그럴 자신도, 재주도 없노라고.


그리고 엊그제 친구는 내게 또다시 브런치 앱의 작가 신청 배너를 보여주며 제안했다.

그만해줘도 되는데, 나는 이제 나 스스로의 깜냥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싶었다. 블로그에 간혹 올리는 글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끄적이던 잡념 노트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는 그래도 해보자고 했다. 나는 너를 믿는다며.

내 어디를? 겨우 열다섯, 열여섯에 쓰던 글들로 20년 가까이 지난 나의 어떤 것을 믿고.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것을 20년 동안 믿어주는 친구의 제안을 계속해서 거절하기도 미안스러웠다.

3일 오후, 떨어질 거란 걸 알면서도 너의 기대에, 너의 제안에 부응한다 라는 의미로 가지고 있는 2편의 단편으로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잊었다.

생각보다 답은 빨리 돌아왔다.

1월 6일 아침, 첫 신청에 겨우 2편의 글로 나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그렇게 기를 쓰고 얻고 싶어 했던 그 호칭이, 겨우 이 공간 안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얼떨떨했다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브런치 작가, 신청만 하면 다 되는 거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작가가 되고, 몇 안 되는 사람일지라도 구독자가 생긴다는 건 내게 아주 기쁜 일이었다.


이제 겨우 작가님이란 호칭만 얻었을 뿐. 나는 이제 구독자의 눈에, 마음에 담길만한 글을 써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도 그 부담을 이겨내고 해야 하는 일,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랬던 일. 그 일을 해내게 만들어 준, 꾸준히 나를 지지해준 나의 오랜 친구이자 나의 가장 첫 번째 독자, 나의 유일한 독자인 그 친구에게 제일 먼저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반응을 얻던 너는 나의 가장 첫 번째 독자일 것이다.

고마워, 하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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