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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지나 Sep 04. 2022

바다를 달리는 초록색 동해 3번 마을버스

첫 포항여행이자 첫 혼여행중..

3일간 언니와 경주를 여행하다 언니는 출근을 위해 올라가고 

39년만에 첫 혼여행으로 포항을 갔다. 

처음 온 포항에는 핫플이 즐비해서,
처음 한 혼여행이 심심하기보다 하루를 꽉채워 즐기기에 바빴다.
너무 신나서 영일대쪽 카페 하나, 그리고 간절곶으로 넘어가 카페 2군데 를 찍고
버스시간 전에 영일대에서 여유롭게 물회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


아찔아찔한 포항 간절곶쯔음에서 출발하여 오는듯한 3번 마을 버스,  

그 마을버스를 타려 가까운 정류장을 찾아갔는데 그 정류장의 어귀가 공사중이여서 길목이 막힌것이다.
이런.. 버스가 어떻게 들어오나 싶어 안절부절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마을분들에게 물으니 역시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좀 더 나가서 버스를 타야한다고 했다. 

삼거리쪽으로 나가고 있는데 저 앞에 초록색 버스가 돌고 있는게 보여
회식하고 막차타는 사람마냥 헐레벌떡 뛰쳐갔다..

버스 정류장에 표지판 하나 겨우 덩그러니 있고, 언제올지 기약이 없는 버스를

땡볕에서 기다렸던 아까의 상황을 생각하니 몸이 반응한 것이다. 


이번 정류장이 차고지였는지 버스기사님은 항구쪽에 차를 대시더니,  

좀 이따가 출발할거니 타있으라고 하신다.  

나는 버스카드를 찍고 들어와서 잠시 담배한대를 태우고 다시 들어와 앉았는데 

버스카드를 찍었는지 헷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카드를 한번 더 찍어버렸다.. 

승차하자마자 하차처리가 되어 난감해 하고 있었는데 그 후에 버스기사님이 타셨다. 

어디가냐고 물으시길래 전대리까지 간다고 했더니 종착지가 어디냐고 물으시더니 

갈아탈 버스까지 안내해주셨다.. 

대체적으로 경주,포항분들은 억센말에 비해 엄청 친절하셔서 깜짝 놀랬다. 

정말 츤데레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버스기사님께 타자마자 버스카드를 하차로 찍어버렸다고 자진납세를 했다. 

음음. 지금 생각해도 뭐 어쩌라고 저 이야기를 했을까 싶다. 

기사님은 툴툴거리는 어투로 두번찍었는데 요금 또 나갔어요? 요금 또 안나갔을텐데. 

그냥 찍히고 말았을텐데 하시는 것이였다. 

아뇨 요금은 또 안나갔는데 하차처리가 되어가지구여  약간 위축되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더니

아 이따 환승도 될거에요 환승 되. 생각도 못했던 배려폭탄들이 터지는 것이였다. 

그 한마디에 기분이 너무 좋아짐과 동시에 버스안의 공기가 달콤해지고 

나는 수줍은듯 몸을 비비꼬며 소녀가 되었고 입꼬리는 상승했다. 

그 말투와 대비되는 배려심과 친절함이 3배의 부스터샷으로 처참하게 심장이 폭격당했다. 


그 뒤는 걷잡을 수 없이 기사님과 나의 단둘의 드라이브였다. 

웬지 모를 달달한 버스안에서 마음이 따뜻해져서 가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바다가 얼핏얼핏 보여서 미어캣이 되어 어떻게든 내 눈에 담으려고 

고개를 쳐들수있을대로 쳐들고 수풀사이로 내비치는 바다를 바삐 보고있는데 

이내 시야가 뚫려 해안도로를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옥색의 바다와 옅은색의 하늘의 경계가 없어져 마치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보였다.  

이 옥색의 바다를 표현하자면 차갑게 스며들어 심장까지 얼어붙게 할 샤베트의 파랑색이다.

차가운 샤베트의 바다는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 오른쪽 끝엔 포스코가 걸려있어 마치 바다위에 지어진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를 보는 아이처럼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다시 수풀속을 내달리다가 이내 또 바다를 보여주고 마을속으로 또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또 다시 해안도로를 내달리고, 이렇게 바다와 밀당하는 3번버스를 타고 가는길은 환상 그 자체였다.  

이런 기분좋은 꿈은 100만원을 내고라도 꾸겠다.  

첨엔 이런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기사님이 너무 극한직업이라는 생각에

너무 힘드실 것 같다며 걱정을 하는 오지랖까지 부렸는데, 

아름다운 해안도로에서 매일 다른 하늘을 만날 기사님이 한편으로 너무 부러워졌다. 

마을버스 타자마자 하차해버린 양아치인 나는,
요금을 더 지불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내 꿈은 3번 마을버스 기사거나 3번 마을버스 기사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내 꿈이 바뀔 지경으로 잊지못할 경험이였다.  

생각만해도 몽골몽골해지는 기분좋은 꿈을 꾸는 듯한
동화의 한장면으로 내딛게 해준 초록색 작은 3번 마을버스는

나의의 추억 베이커리에 추가된 메인메뉴 촉촉하고 포슬포슬한 핫케이크다.
내 베이커리에 저장해두고 조금씩 조금씩 꺼내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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