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육아 후기] 당신에게 나의 시간을 준다는 것

아이고 삭신이야...

by 미솔랭가이드
미솔랭 게시물 (9).png 우리 애기 손발 귀여운 것 좀 보세요...


당신에게 나의 시간을 준다는 것


어릴 때는 시간의 값이 제일 쌌다. 상대적으로 많았으니까. 나이가 들었다고 시간이 갑자기 확 비싸지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할 게 별로 없어 남는 게 시간이었고,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훨씬 더 많다고 느껴지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았다. 주어진 역할도 적었다.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니까 나에게 주어진 그 모든 시간의 주인이 나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시간을 주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잘 몰랐다. 그것도 그렇고 또래들의 시간은 비슷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서로가 체감을 못했던 것도 있다. 나만큼 너도 많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 시간이 제일 비싸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모두에게 짤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또 있을까? 물론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다르게 적용되는 시간도 있지만 물리적으로 똑같다는 것만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급격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갑작스레 소중한 것이 나타나면 내 시간을 채우는 우선순위 랭킹이 급격하게 변한다. 덜 중요했던 것이 올라오기도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밀려나면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가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괜찮은 듯하다. 인생을 좀 솎아주는 느낌이 든다.


요즘의 나는 중요한 것이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나의 시간을 주는 것에 애를 먹고 있다. 모든 것이 하찮아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고 좋은 감정인데 소중한 존재 하나가 너무 치명적이라 진짜 너무 곤란하다. 지금 연휴 3일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할머니집에 들이닥친 조카를 돌봤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프리랜서에게 이런 연휴는 나름 호흡을 고르고 밀린 일을 하는 시간인데. 너 때문에 고모 큰일났다.


귀여움도 귀여움인데 노년의 부모님이 손자의 귀여움에 그만 정신을 잃고 젊은이들처럼 갈아넣는 것을 외면할 수도 없다. 예쁜 손자를 보는 노부부의 시간은 얼마나 더 빠를까. 결국 고모의 시간 한 조각을 또 헐어서 쓰는 수밖에. 멋쟁이 이모들이랑 한남동에 커피 마시러 가기로 한 약속을 머리를 조아려 다음으로 미뤘고, 이제부터 밀린 일을 해야한다. 인생 140일차, 내 시간의 왕, 시간의 지배자가 나타났다. 아오…�


미솔랭가이드 260303 : [3일 육아 후기] 당신에게 나의 시간을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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